<스무 살> 김연수

공야장 도서관 음모 사건

전선 너머는 지극히 정상적인 푸른 하늘이고 전선 아래는 검은 야구모자가 등장한 일요일 아침이다. 나는 그와는 달리 전선 너머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멍청한 질문을 했다. (11)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단 말이죠. 그러니 규칙이 다르죠. 규칙이 다르면 대화할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22)

"A라는 책에 실린 이야기의 출처는 B에 있고 B에 실린 이야기의 출처는 C에 있습니다. 이런 일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할 때, 당신이 과연 그 원전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므로 책에 대한 책은 끝없이 순환할 따름입니다. 하이퍼텍스트죠. 오직 현실에 대한 책만이 순환하지 않습니다." (34)

"책은 백일몽이 아니라, 연결입니다. 현실과 연결되거나 혹은 다른 책과 연결됩니다. 다른 책과 연결된다 하더라도 원전을 찾을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책이 됩니다. 결코 낮잠 자다가 꾼 꿈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35)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일은 한없이 세월을 보내는 일이야. 누구나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얼마만큼의 세월을 보내면 저절로 위대해지지. 하지만 그 입구에 서서 반대편 끝을 보는 사람에게 그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야. 그만큼 고생해서 완전한 사서가 된다면 누가 고생하지 않겠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인간은 위대함이 눈에 보이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아주 긴 시간이라면 쉽게 포기하고 말아. 슬픈 일이지." (45)

뒈져버린 도플갱어

사진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대체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79)

하나를 제외하고는 더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게, 바로 그게 삶이다. 살아가면서 단 하나 기대하는 것은, 바로 불길 터널에 휩싸이는 것과 같이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일 뿐이다. (85)

어떤 사진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사진 속, 자신의 시선은 이미 죽어 있기 때문이다. 그 죽어있는 자신의 또다른 자아를 살아 있는 자신이 보게 된다. 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92)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

그 그림에 관한 기사에서 재식은 다음과 같은, 미셸 푸코에게 보내는 마그리트의 편지에 줄을 쳐놓았다.
"닮음과 비슷함이라는 단어들을 통하여 당신은 세계와 우리 자신들이 전혀 새롭게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15)

시간이 서서히 사라지다가 결국 정지하고 마는 그 세계. 모든 논리가 사라지고 결국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존재하는 공간. (128)

카르타필루스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바벨탑 이후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드러났죠. 심판은 이미 바벨탑이 무너질 때 일어난 거죠. 그 이후로 인간들은 이런 지옥에 떨어져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예요. (164)

기억의 어두운 방

누구나 잘 아는 어떤 단어에 대해서는 저마다 일정한 경험들이 있다. 그 경험들이 형성하는 추상적인 영역이 바로 그 단어의 영역이다. (189)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된다는 것은 불멸의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소설 속에서의 탄생은 현실에 조응하는 그대상의 죽음을 뜻한다. 그리고 한번 죽어서  소설 속에서 재탄생된 등장인물은 이제 다시는 죽지 않는다. 그 불멸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서연'만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204-5)

그렇다면 불멸의 존재는 누구인가? 이 세 개의 소설을 쓰는 동안,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서연'이라는 존재인가? 지금 이 시점에 나는 깨닫게 됐다. 이미 죽어서 이제 나의 소설 속에서 절대로 죽지 않게 되어버린 그 불행한 존재란 바로 소설을 쓰고 그 소설 안에서 부활하고 영원히 죽지 않는 운명이 되어, 마치 납골당에 걸린 사진 속의 운명이 되어 소설 속에서 영원히 스스로 지나왔던 동굴 저편 멀리에서 장관을 이루며 서로 얽히고 설켜 들어가는 현실의 모습을 동경하면서 '나'는 중음신의 몸으로 소설이라는 공간 속을 떠돌게 된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한, 아버지도 죽고 J형도 죽을 수 있지만, 결코 나만은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괴롭고 슬퍼도 나만은 죽을 수가 없다. 운명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 운명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내가 죽은 뒤에도 이제 나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점이다. (205)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