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

헤라클레이토스의 생몰연대에 대한 확실한 측정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철학적 전성기가 대략 기원전 500년에서 490년의 기간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뿐이다. 그의 철학적 전성기가 기원전 500-490년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크세노파네스보다는 젊은 세대이고(헤라클레이토스는 크세노파네스를 언급한다), 아마도 그의 가장 강력한 비판가로 간주될 수 있을 파르메니데스보다는 앞선 세대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귀족 출신이며(그의 가계는 아테네의 코드로스 왕의 혈통에서 이어져 내려온다), 일생 동안 철저한 귀족적 성향을 충실히 지켰다. 그때문에 그로서는 견딜 수 없는 민주적인-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우적인- 법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고향을 등지고 살았다. 그가 고향을 등진 공식적인 동기는 그의 친구인 헤르모도로스가 에페소스에는 평균 이상으로 뛰어난 시민(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국외추방을 당한 사건이다. 그래서 그는 산중에 은거하면서 곡식과 풀로만 연명해야 했다. 이런 생활방식으로 인해 그는 수종을 앓게 되었으며, 이때문에 그는 에페소스로 돌아가서 의사들에게 홍수로부터 가뭄을 만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의사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쇠똥 속에 자기 몸을 담갔다. 똥의 온기가 수종을 마르게 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의 질문이 에페소스의 의사들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그리고 그에게 '어두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준 후대의 해석가들에게 그가 어떤 모습으로 비쳤는지는 수수께끼다. 마찬가지로 어째서 그가 동시대인들과 후대의 해석가들에게 인간혐오자(염세주의자)로 보였는지도 수수께끼다. 그가 쇠똥더미에 몸을 담가서 치료가 되기를 바랬다는 사실은 그를 조롱거리로 만들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의 의도를 이해한다면, 그것에는 어떤 더 깊은 의미가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즉 그가 보기에 물이 된다는 것은 영혼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러 관점에서 철학적 사유의 전환을 가져왔던 이 위대한 사상가가 학파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그래서 크라튈로스(주지하다시피 플라톤은 대화편 하나를 그의 이름에 헌정했다)를 제외하고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제자 중에는 이름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나는 이미 헤라클레이토스가 당시 고대인들에게 '어두운 사람'으로 통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실제로 그가 했던 말 가운데 많은 부분이 비의적이었고, 따라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겼고 또 의도적인 곡해도 가능했던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물론 이들은 헤라클레이토스를 거의 인용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들을 철저히 배격했고(이를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엄밀한 논리학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헤라클레이토스를 올려놓고 재단했다, womit er Heraklit Gewalt antat), 파르메니데스의 추종자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역동적인 세계이해를 가지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한 구절을 인용해 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모순이라 생각했던 대립쌍들을 다르게 이해했음을 알 수 있다. "결합: 전체와 허무keine Ganzheit, 일치하는 것과 분리되는 것,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즉 모든 것으로부터 일자가 나오고, 일자로부터 모든 것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모순 대신에 적절하게 서로 보충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해석에 있어서 논쟁이 되는 두 단편은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과 관련이 있다. " 전쟁은 보편적인 것이고 법이며 투쟁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과 필연성이라는 기준에 따라서 발생한다."(단편 80) 그리고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왕이다. denn die einen erwies er als Goetter, die anderen als Menschen, die einen machte er zu Sklaven, die anderen zu Freien."(단편 53) 그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면 우리는 전쟁에 대해서(그 말의 원래 의미대로), 그의 단편 53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처럼 전쟁의 결과로서 승리자의 사실과 패배자의 그것이 새로운 권력배치와 함께 발생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단순히 전쟁과 힘의 옹호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르게 접근해 보면, '전쟁'이라는 개념은 변화에 대한 비유일 뿐이고, 상호보충의 원리이며, 작용과 반작용이라느 것이 대립하고 있으며 하나 혹은 또 다른 어떤 힘의 강력한 작용에 근거해서 상태가 변화한다는 물리학적 모델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로써 아낙시만드로스의 해석하기 어려운 격언을 이어가려 했는지 모른다. 아낙시만드로스에 따르면 사물들은 서로간의 간섭이라는 부당함을 보복해야만 한다.

특히 그의 이른바 Fluss-Gleichnis가 중대한 해석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같은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다른 것, 그리고 언제나 다른 물이 흐른다. 강물은 흩어지고 또 ... 합쳐진다. 모였다가 흘러가고 ... 가까워지고 또 멀어진다." (단편12) 그리고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만물유전의 원리panta rhei-Prinzip"라 알려져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만물유전"이라는 사유를 이해하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연에 있어서 역동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다시금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하여 후대의 그리스 철학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는 정적인 사유의  노선Ausrichtung을 취했던 (그리고 무엇보다 감각은 기만적인 것이라는 논증은 유명한) 파르메니데스가 되었다.

만물유전의 사상을 엄격한 의미로sensu strictu 보지 않고, 즉 모든 것이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로 실체와 속성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항상 똑같은 것으로 머무르는 실체(기체)에 붙어있는 속성들이 변화한다고 하는 사실은 모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가 여러가지 중요한 사항들에 있어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이 된다는 것은 영혼에게는 죽음이다. 그리고 땅이 된다는 것은 물에게는 죽음이다. " 또 "당신이 모든 길을 다 가보았다 해도 영혼의 한계를 발견해 갈 수는 없다. 그 한계를 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깊이있는 것이다."

그의 자연학적 의도에 적합하게 세계는 영원히 살아있는 불꽃이다. 그리고 물론 이 불꽃에 의해 부분들은 더 넓은 요소들, 즉 바다와 땅이 나타나게 하기 위해 항상 소멸된다. 현명한 영혼은 불이며, 약하고 파멸된 영혼은  물이다. 그가 영혼을 한계가 없는 것으로 특징지우는 것이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정자apeiron의 사유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하기가 어렵다. 어쨌든 그는 분명히 영혼은 그 본성상 우주의 한계 끝까지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의 개념을 매우 강조한 첫 번째 그리스 철학자라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보통 죽을 운명에 처해 있는 것들에 대한 그의 폄하가 특히 강하게 표출되는데, 이를테면 다음의 인용구를 보자. "영원한 세계법칙logos를 인간들은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것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또 들어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이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데도, 그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느끼는 것이다."(단편 50) 여기서 그의 엘리트적 사고가 분명히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에게만 있는 특권적인 인식방식이 Usurpation인 것이다. 그의 로고스logos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해내기가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왜냐하면 우리는 대략 2000년 동안이나 이 개념을 순전히 기독교적인 맥락에서 해석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로고스logos개념은 세계법칙과 도덕법칙을 의미하는 신성과 동일한 것이라는 주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그의 로고스logos개념은 근대의 자연법 사상에 있어서도 구성적인 역할을 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그러한 연관을 지니는 것이다. 그가 어떤 일반적인 것, 즉 모두가 거기에 따라야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에 공통된 것인데도 많은 이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것이 로고스logos개념의 동의어로 간주될 수 있다고 적법하게 가정할 수 있겠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마도 그렇게 '어두운 사람'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오늘날까지도 위대한 정신의 프로메테우스라고 일컬어져야 할 것이다.

작품: 약 130여편의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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