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자크 데리다(1930-2004)

이 유태계 사상가이자 철학자는 1930년 알제리의 엘 비아르에서 태어났고, 이 곳에서 프랑스계 김나지움을 다녔다. 유태인으로서 배척당하는 체험을 했지만, 가정에서는 피상적으로나마 히브리어와 몇 몇 유태적 제의에 대해 배웠다. 그가 교육받은 언어는 프랑스어였고, 그는 이 언어를 놀이하듯 익혔다. 그는 두 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자란 것이다. 그렇지만 1942년에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비쉬정권이 나치에 협력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척은 그에게 결정적인 체험이었고, 1949년 그의 가족은 프랑스로 이주한다.

이때부터 그는 파리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이후부터 1960년 소르본에서 교수 제안을 받을 때까지 여러 김나지움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소르본에서는 1964년까지 강의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알튀세, 부르디외, 소레스, 블랑쇼, 낭시 등과 친분을 쌓았다.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행한 강연으로 훨씬 더 큰 대중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1964년부터는 미국의 볼티모어와 예일대학에서 2004년 숨을 거둘 때까지 철학을 가르쳤다.

데리다는 나중에 자신의 유태적 가족사를 교양의 여하한 형식에 대해서 맹목적 장소이자 진공이라 보았다. 그는 자신이 수많은 학문적이고 춤을 즐기는 운동을 상술하려 했던 프랑스 문화와 언어에서 이것을 가져왔다. 이때 그는 자신의 고유한 무의식적 문법을 배회했다는 점을 의식했다. 어린 시절 유태인으로서의 인격의 고유성과 동일성에 대한 모든 철학적 사변에 대한 깊은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섬세한 신중함으로써 구획과 배척의 흔적을 추적하고자 했다. 그는 일생에 걸쳐 소속없음에 대한 근본감정과 사웠다.

이러한 경험에 근거하여 그는 소속되지 않은 주체성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즉 어떤 집단에 완전히 소속될 수 없는 무능력은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정체성의 이름하에서의 말하기의 불가능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된 동일성은 항상 망명과 정착 간의, 제한성과 무한성, 지배와 종속 간의 긴장을 경험한다. 변증법적으로 해석된 모순의 와해는 그에게 근원적 역설의 능숙한 은폐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이는 최초의 차이를 표현하는 근원적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말하기의 근원적 사건은 나중에 기호체계로서의 글쓰기 속에서 표현된다. 우리의 현존의 질서 속에서 확실한 우위에 있는 것은 차후적인 글쓰기이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우리는 항상 차이와 소속없음을 표현한다. 유태인들에게 할례라는 고대적 의식은 이방인과의 분명한 구별을 표시해주고, 고통스런 경계를 긋는다. 이 의식은 동일성을 구성하며, 여기에는 율법과 형상금지가 결합되어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시의 언어 속에서 마찬가지로 소속없음을 나타내는 "잘려진 말"을 만나게 된다. 유태인들에게 있어서 성서는 상실된 영토적 정체성과 조국을 대신하는 것이다. 문자의 우선성은 계속해서 탈무드 텍스트 속에서 표현되어 있는 세계해석을 규정한다. 문자의 신성함은 언어의 근원적 사건은 이미 상실되어 버렸다는 점을 암시해야 한다. 거룩한 법이 새겨진 첫 번째 석판은 깨어져 버렸고, 인간 실존의 사건은 더 이상 언어 속에서 완전히 재현되거나 파악될 수 없다. 그 결과로 문자 텍스트의 행렬과 함께 이제까지의 내용에 대한 필연적인 "해체"와 "변용"의 과정이 일어난다. 옛 텍스트를 항상 새롭게 해석하는 유태의 카발라가 이러한 변형의 모델을 제공한다.

인간 실존의 표현으로서 언어와 문자는 추론가능한 단위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진술은 오직 다른 진술들과 관계맺지만, 결코 체험 자체와 관계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 텍스트 속에서 여러 목소리들 및 "언어 유희"의 다수성과 담론양식들과 관계를 갖게 된다. 한 텍스트의 근원적인 의도는 후대의 독자들에게 결코 파악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후대의 독자는 언어적 수용의 역사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의 목소리들은 우리에게 변화된 삶의 상황을 늘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해 준다. 이 점에서 유태 랍비의 성서해석학은 오래된 텍스트에 대한 "해체"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

낡은 내용을 풀어헤치는 것은 우리에게 언어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때 우해의 독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애초의 언어의도와 결별한다. 포스트모던적 문화 속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상이한 "언어게임"(비트겐슈타인)의 다양성과 우리 생활세계에 대한 해석틀과 함께 살아간다. 바벨탑 건설의 오래된 이미지 속에서 담론과 세계해석의 다양한 형식들이 서로 충돌한다. 현존재 해석의 상실된 통일성을 한탄하는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더 의미있는 것은 언어유희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이 안에서 움직이며 이 다양성을 서로 투과시키며 유지하는 것이다.

유태인들이 신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근본적인 선택을 모든 민족과 문화로 확대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선택되지 않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의 구조적 메시아니즘은 오늘날 세계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 모든 민족들은 그들의 언어모형 속에서 성공적인 삶과 평화를 향한 깊은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원리적으로 완결될 수 없는, 고정된 언어내용의 해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른 더 크고 넓은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렇게 더 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침묵으로 남게 되는데, 저것은 언어적 점유를 피해가기 때문이다. 유태인들은 이를 신의 말씀 속에서 형상 금지로 표현하고 있다.

더 큰 현실에 대한 형상 금지를 무신론의 조건들 하에서 관철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종교의 언어게임도 후기 근대적 삶의 조건 하에서 담론화될 수 있는 것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의 텍스트들은 해체와 변용의 과정에서 지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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