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존 로크(1632-1704)
- 생활정보
- 2007. 7. 11. 03:40
로크는 브리스톨의 링톤에서 태어났고, 청교도적 정신으로 채색된 소위 부르주아지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1652년부터 옥스포드에서 우선 철학을 공부했으나, 의학과 자연과학으로 돌아섰고, 1667년부터 샤프츠베리 백작 집안의 의사로 일했고(비록 그가 의학에서 학위를 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작의 아들과, 후에는 손자의 가정교사로도 일했다.
런던에서는 저명한 학자들(예컨대 보일과 시든햄)과 관계를 가졌고, 1668년에는 왕립협회에 선출되었다.
나는 그의 철학에 대한 설명을 윤리학으로 시작하고 싶다. 그가 윤리학에 관한 고유하고 방대한 논문을 쓰지는 않았다 해도, 윤리학과 관련된(그리고 함축적으로는 종교와도 관련된) 그의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굳이 본유관념에 대한 이론을 내세우지 않고도 그는 보편타당한 원리에 도달했다. "인간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중요하고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도덕 규범이다." 그러나 그 동기에 대한 물음에 있어서는 그가 받은 교육과 그의 종교에 따라 다양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함은, 선천적 원리들을 본래 가지고 있으며 신의 손이 우리의 정신에 그 원리들을 새겨준 것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인간 오성론, 1권) 여기서 명백히 표현된 본유관념에 대한 거부는 종종 오해되는데, 사람들은 로크가 모든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며, 모든 인식과 태도는 삶의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고 생각했다고 보았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해석은 너무 멀리 나아간 것이다. 로크가 거부한 것은 다만 (플라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미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견해와 인식이 있다는 가정이었을 따름이다. 언어를 습득하거나 도덕을 배울 수 있는 소질은 로크에게서도 충분히 인정되는 바다. 요약하자면, 인식의 내용은 불특정하며 각각의 시대와 문화에 따라 고착되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소질은-"인간의 조건"이라 부를 수 있을- 이미 주어져 있다.
로크의 추론은 논리정연하다. 본유관념이나 도덕적 관점과 관련된 선천적 원리들이 존재한다면, 모든 규범체계가 동일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플라톤적) 관점이 잘못된 것으로 증명된다면-로크가 다양한 문화들로부터 수집한 풍부한 예들이 뒷받침해주듯이-, 가치와 규범에 대한 소질이 있다는 가정은 타당하다. 그러나 체계들의 다양성은 그것들이 하나의 메타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기에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이고 선천적인 도덕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로크에게 분명한 것이긴 했으나, 그도 윤리학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신의 법, 시민의 법, 그리고 공적인 의견으로 구분했다. 물론 그는 이 구분과 관련된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로크가 공적인 의견의 법이 결정적이라고 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이 자신의 계명을 어긴 것에 대해 공포한 형벌은 전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국가가 강제하려는 형벌은 쉽게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에 반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도덕을 어길 경우 비난과 경멸의 벌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동기로써 신의 형벌이 지상의 도덕을 근거 지우는 데 있어 강조되는 자리를 보게 된다. "우리가 영원을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 먹고 마시며 쾌락을 만끽해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가 성서의 도덕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 또한 중요하다. 그는 철학자들이 내린 모든 윤리적 규정들은 성서의 도덕에 훨씬 못 미친다고 보았다. 성서의 도덕은, 모든 사람이 그 규정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인류의 행복과 보편적인 번영을 보장하는 도덕성의 완전한 규범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윤리학에 대한 논문을 쓰기를 거절했다.
일반적으로 로크는 인식론자로 알려져 있으며, 의심할 바 없이 인식론은 그의 전 저작들 가운데 다른 어떤 철학분야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표상은 어디서 유래하는가라는, 언제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물음에 대해서는 우선 소극적으로 다루어진다. 본유관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논리적 법칙에 따라 모든 인간의 사유는 서로 일치한다는, 본유관념에 대한 강력한 논변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적극적인 대답은, 표상이란 감각에서 얻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크는 두 가지 종류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 외부 대상에 대한 지각은 "감각"이라 하고, 내적 과정은 "반성"이라 한다. 이러한 외적이고 내적인 지각은 표상의 빛이 오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입구와 같은 것이다. 로크는 계속해서 두 종류의 지각을 다시 두 종류로 나누고, 그래서 4개의 기본표상을 가진 체계를 구성한다. 1) 하나의 외부 지각에 의해 발생한 표상: 색깔, 소리, 냄새. 2) 여러 개의 지각에 의해 생겨난 표상: 형태, 운동. 3) 자신의 활동들에 대한 반성이 사유, 표상, 의지 혹은 욕망의 관념들을 발생시킨다. 4) 내적이고 외적인 지각의 모든 방법들에 있어서 쾌와 불쾌, 정재와 힘의 표상들이 영혼에 도달한다.
단순한 관념을 받아들이는 오성의 능력 이외에 인간은 외부루부터 들어오는 원천적 표상들을 결합시키는 더 큰 능력도 소유하고 있다. 단순한 표상들을 자의적으로 조합함으로써 복합관념이 생겨난다. 그는 수많은 조합들을 세 묶음으로 나눈다. 양태, 실체, 관계.
로크에 따르면 양태는 그 자체로는 존립할 수 없고 담지자를 필요로 하는 속성들이다. 그것들은 따라서 사물의 특성이라 하겠다. 같은 종류의 요소들로 구성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두 종류의 양태로 나뉜다. 실체 개념(아리스토텔레스의 8개 범주 가운데 하나인)은, 로크에 따르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낼 뿐이다. 즉 그 개념은 사물에 부착되어 있는 여러 개의 단순한 표상들의 결합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 것이다.
관계는 오성의 내재적이고 자유로운 산물이다. 그것은 실재적인 사물의 모사가 아닌데, 정신은 2개의 사물을 나란히 두고 비교함으로써 관계의 표상을 얻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대한 정치철학에 있어서 그는 홉스적인 방식으로 계약의 원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에게는 또한 정치적 권력의 원천에 대한 물음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그가 법질서의 구속력에 대한 물음은 정치 권력의 원천에 대한 물음과 함께 대답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크도 자연상태가 개인의 상호계약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는 홉스처럼 인간의 자연상태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때에도 각 개인의 조야하고 무절제한 자유를 제한하는 자연스러운 법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살인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을 것이다. 후에 자연상태를 대신하게 될 공동체(국가)는 규범을 세우고(입법권), 분쟁을 조정할 권리(사법권)를 갖는다. 이외에도 국가는 전쟁을 선포하고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두 권력의 분리가 핵심적이다. 이러한 분리는 더 이상 절대군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로크는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민중의 권력은 항상 통치권력보다 상위에 있다. 시민의 안전과 재산, 자유를 보장하려는 분명한 목적에 종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민중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양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가 사유재산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는 심지어 사유재산은 신이 원하는 바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시적인 공산사회에서 사유재산으로 이행해 가는 것을 사회계약의 본질적인 지점이라고 보았다.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로크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종교적인 신념은 정당한 규범에 속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가 태어난 종교공동체에 머물러야 할 의무가 없다. 다시 말해 교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중요한 <<관용에 대한 서한>>에서 로크는 "나는 시민의 관심은 생명, 자유, 건강, 신체가 고통을 겪지 않을 것, 돈이나 땅, 집이나 가구 따위의 외적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라 본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의 관용에의 요청은 자의적인 세계관의 표명이 아니라 기독교적 신앙고백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이 제한적으로 덧붙여져야 한다. 그에게는 "Summe des Glaubens"를 복음서에서 끌어올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교리는 두 가지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이 확실했다. 메시아 예수에 대한 믿음과, 예수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자연법과 같은 일련의 도덕적 원리들에 대한 믿음. 그는 항상 이성적으로 근거지을 수 있는 믿음을 지지하고, 신에 대한 인식과 그를 경외해야 하는 의무가 이러한 믿음에 포함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계시에 대한 믿음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은 이성적으로 근거지울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의심할 바 없이 그에게는 이신론이 중요했다. 신앙은 이성적 기준들을 충족시켜야 하며, 종교가 도덕과 자연법으로 환원될 때 특히 무엇이 옳은가가 문제된다.
로크는 중요하 인식론적 저작(<<인간 오성론>>)의 3장을 언어철학적-언어비판적인 숙고에 할애했다. 그가 스스로 인식론적 물음에 있어서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결코 소홀히 생각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이 숙고는 중요성을 갖는다. 전형적인 경험론적 방식으로 그는 인식은 사물 자체에 놓여 있지만, 말은 모든 보편적 인식에서 분리될 수 없는 매개자로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의도는 모든 화자가 지배받고 있는 언어의 오도하는 힘에 대해 의식하게 함으로써 위험을 경고하려는 것이었다. 개별 학문에 대한 이른바 현안들을 분석함에 있어서 그에게는 본래적인 문제는 언어의 층위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그 현안들은 간접적으로만(전적으로 언어의 지반 위에서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따라서 그의 사유는 완전히 근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언어내재적인 고찰 뿐 아니라 sprachtranseunt한 고찰까지 수행했다면, 우리는 그를 가장 위대한 언어철학자로 칭송해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철학이란 우리 이성의 요술에 대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싸우는 것이라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로크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논쟁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언어정화"에 열심을 다한다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통찰이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게 된다.
런던에서는 저명한 학자들(예컨대 보일과 시든햄)과 관계를 가졌고, 1668년에는 왕립협회에 선출되었다.
나는 그의 철학에 대한 설명을 윤리학으로 시작하고 싶다. 그가 윤리학에 관한 고유하고 방대한 논문을 쓰지는 않았다 해도, 윤리학과 관련된(그리고 함축적으로는 종교와도 관련된) 그의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굳이 본유관념에 대한 이론을 내세우지 않고도 그는 보편타당한 원리에 도달했다. "인간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중요하고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도덕 규범이다." 그러나 그 동기에 대한 물음에 있어서는 그가 받은 교육과 그의 종교에 따라 다양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함은, 선천적 원리들을 본래 가지고 있으며 신의 손이 우리의 정신에 그 원리들을 새겨준 것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인간 오성론, 1권) 여기서 명백히 표현된 본유관념에 대한 거부는 종종 오해되는데, 사람들은 로크가 모든 인간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며, 모든 인식과 태도는 삶의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고 생각했다고 보았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해석은 너무 멀리 나아간 것이다. 로크가 거부한 것은 다만 (플라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미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견해와 인식이 있다는 가정이었을 따름이다. 언어를 습득하거나 도덕을 배울 수 있는 소질은 로크에게서도 충분히 인정되는 바다. 요약하자면, 인식의 내용은 불특정하며 각각의 시대와 문화에 따라 고착되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소질은-"인간의 조건"이라 부를 수 있을- 이미 주어져 있다.
로크의 추론은 논리정연하다. 본유관념이나 도덕적 관점과 관련된 선천적 원리들이 존재한다면, 모든 규범체계가 동일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플라톤적) 관점이 잘못된 것으로 증명된다면-로크가 다양한 문화들로부터 수집한 풍부한 예들이 뒷받침해주듯이-, 가치와 규범에 대한 소질이 있다는 가정은 타당하다. 그러나 체계들의 다양성은 그것들이 하나의 메타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기에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절대적이고 선천적인 도덕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로크에게 분명한 것이긴 했으나, 그도 윤리학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신의 법, 시민의 법, 그리고 공적인 의견으로 구분했다. 물론 그는 이 구분과 관련된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로크가 공적인 의견의 법이 결정적이라고 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이 자신의 계명을 어긴 것에 대해 공포한 형벌은 전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많은 사람들은 국가가 강제하려는 형벌은 쉽게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이에 반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도덕을 어길 경우 비난과 경멸의 벌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동기로써 신의 형벌이 지상의 도덕을 근거 지우는 데 있어 강조되는 자리를 보게 된다. "우리가 영원을 생각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 먹고 마시며 쾌락을 만끽해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그가 성서의 도덕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 것 또한 중요하다. 그는 철학자들이 내린 모든 윤리적 규정들은 성서의 도덕에 훨씬 못 미친다고 보았다. 성서의 도덕은, 모든 사람이 그 규정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인류의 행복과 보편적인 번영을 보장하는 도덕성의 완전한 규범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윤리학에 대한 논문을 쓰기를 거절했다.
일반적으로 로크는 인식론자로 알려져 있으며, 의심할 바 없이 인식론은 그의 전 저작들 가운데 다른 어떤 철학분야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표상은 어디서 유래하는가라는, 언제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물음에 대해서는 우선 소극적으로 다루어진다. 본유관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논리적 법칙에 따라 모든 인간의 사유는 서로 일치한다는, 본유관념에 대한 강력한 논변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적극적인 대답은, 표상이란 감각에서 얻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로크는 두 가지 종류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외적 경험과 내적 경험. 외부 대상에 대한 지각은 "감각"이라 하고, 내적 과정은 "반성"이라 한다. 이러한 외적이고 내적인 지각은 표상의 빛이 오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입구와 같은 것이다. 로크는 계속해서 두 종류의 지각을 다시 두 종류로 나누고, 그래서 4개의 기본표상을 가진 체계를 구성한다. 1) 하나의 외부 지각에 의해 발생한 표상: 색깔, 소리, 냄새. 2) 여러 개의 지각에 의해 생겨난 표상: 형태, 운동. 3) 자신의 활동들에 대한 반성이 사유, 표상, 의지 혹은 욕망의 관념들을 발생시킨다. 4) 내적이고 외적인 지각의 모든 방법들에 있어서 쾌와 불쾌, 정재와 힘의 표상들이 영혼에 도달한다.
단순한 관념을 받아들이는 오성의 능력 이외에 인간은 외부루부터 들어오는 원천적 표상들을 결합시키는 더 큰 능력도 소유하고 있다. 단순한 표상들을 자의적으로 조합함으로써 복합관념이 생겨난다. 그는 수많은 조합들을 세 묶음으로 나눈다. 양태, 실체, 관계.
로크에 따르면 양태는 그 자체로는 존립할 수 없고 담지자를 필요로 하는 속성들이다. 그것들은 따라서 사물의 특성이라 하겠다. 같은 종류의 요소들로 구성되었는가 아닌가에 따라서 두 종류의 양태로 나뉜다. 실체 개념(아리스토텔레스의 8개 범주 가운데 하나인)은, 로크에 따르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드러낼 뿐이다. 즉 그 개념은 사물에 부착되어 있는 여러 개의 단순한 표상들의 결합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 것이다.
관계는 오성의 내재적이고 자유로운 산물이다. 그것은 실재적인 사물의 모사가 아닌데, 정신은 2개의 사물을 나란히 두고 비교함으로써 관계의 표상을 얻기 때문이다.
자신의 방대한 정치철학에 있어서 그는 홉스적인 방식으로 계약의 원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에게는 또한 정치적 권력의 원천에 대한 물음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것은 그가 법질서의 구속력에 대한 물음은 정치 권력의 원천에 대한 물음과 함께 대답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로크도 자연상태가 개인의 상호계약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는 홉스처럼 인간의 자연상태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그때에도 각 개인의 조야하고 무절제한 자유를 제한하는 자연스러운 법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살인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을 것이다. 후에 자연상태를 대신하게 될 공동체(국가)는 규범을 세우고(입법권), 분쟁을 조정할 권리(사법권)를 갖는다. 이외에도 국가는 전쟁을 선포하고 평화조약을 맺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두 권력의 분리가 핵심적이다. 이러한 분리는 더 이상 절대군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로크는 이를 강하게 거부했다. 민중의 권력은 항상 통치권력보다 상위에 있다. 시민의 안전과 재산, 자유를 보장하려는 분명한 목적에 종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민중은 자신들의 권력을 이양하기 때문이다. 이때 그가 사유재산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는데, 그는 심지어 사유재산은 신이 원하는 바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시적인 공산사회에서 사유재산으로 이행해 가는 것을 사회계약의 본질적인 지점이라고 보았다.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로크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종교적인 신념은 정당한 규범에 속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가 태어난 종교공동체에 머물러야 할 의무가 없다. 다시 말해 교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중요한 <<관용에 대한 서한>>에서 로크는 "나는 시민의 관심은 생명, 자유, 건강, 신체가 고통을 겪지 않을 것, 돈이나 땅, 집이나 가구 따위의 외적 사물을 소유하는 것이라 본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의 관용에의 요청은 자의적인 세계관의 표명이 아니라 기독교적 신앙고백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이 제한적으로 덧붙여져야 한다. 그에게는 "Summe des Glaubens"를 복음서에서 끌어올 수 있으며, 이에 대한 교리는 두 가지 요소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점이 확실했다. 메시아 예수에 대한 믿음과, 예수가 구원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자연법과 같은 일련의 도덕적 원리들에 대한 믿음. 그는 항상 이성적으로 근거지을 수 있는 믿음을 지지하고, 신에 대한 인식과 그를 경외해야 하는 의무가 이러한 믿음에 포함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계시에 대한 믿음과 메시아에 대한 믿음은 이성적으로 근거지울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의심할 바 없이 그에게는 이신론이 중요했다. 신앙은 이성적 기준들을 충족시켜야 하며, 종교가 도덕과 자연법으로 환원될 때 특히 무엇이 옳은가가 문제된다.
로크는 중요하 인식론적 저작(<<인간 오성론>>)의 3장을 언어철학적-언어비판적인 숙고에 할애했다. 그가 스스로 인식론적 물음에 있어서 언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결코 소홀히 생각한 적이 없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이 숙고는 중요성을 갖는다. 전형적인 경험론적 방식으로 그는 인식은 사물 자체에 놓여 있지만, 말은 모든 보편적 인식에서 분리될 수 없는 매개자로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의도는 모든 화자가 지배받고 있는 언어의 오도하는 힘에 대해 의식하게 함으로써 위험을 경고하려는 것이었다. 개별 학문에 대한 이른바 현안들을 분석함에 있어서 그에게는 본래적인 문제는 언어의 층위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그 현안들은 간접적으로만(전적으로 언어의 지반 위에서만)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따라서 그의 사유는 완전히 근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언어내재적인 고찰 뿐 아니라 sprachtranseunt한 고찰까지 수행했다면, 우리는 그를 가장 위대한 언어철학자로 칭송해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철학이란 우리 이성의 요술에 대해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싸우는 것이라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로크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논쟁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언어정화"에 열심을 다한다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통찰이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게 된다.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