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drich Schlegel-geschrieben von Ernst Behler

야콥 미노르는 말했다. <낭만파에 의해서 우리 독일 문학은 비로소 사회적 성격을 획득했다. 또 피히테의 원칙, <자아는 존재해야 한다>를 확대해서 <자아는 자기를 전달해야 한다>라는 새로운 원칙을 분명히 한 사람도 다름아닌 프리드리히 슐레겔이었다. ... 낭만파 운동이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 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무엇보다도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공적이다.>

슐레겔의 평론은 대상의 <개성Individualitaet>을 취해서 복잡한 의식의 관련을 지적하기 위한 <발생적 해명genetisches Erklaeren>으로 대상을 세부까지 추구하려 했다. 슐레겔은 이 새로운 평론 양식을 <특성묘사Charakteristik>의 비평이라 명명했는데 이것은 분명히 피히테의 영향이었다. 정신 현상을 그 생성 과정에서 설명하는 피히테의 방식은 쉘링에 의해서 자연의 영역으로 전용되었고, 헤겔에 의해서 역사의 분야에 적용되었으며 슐레겔은 이를 예술 현상의 특성 묘사에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55)

슐레겔에게는 애정이나 사랑에서 생기는 결혼의 본질은 그 일회성에 있다. 그가 요구하는 사랑은 보편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도달하는 사랑이다. 그것은 개개인의 모든 특성에 파고드는 사랑, 관능의 기쁨을 정신화하고 동시에 정신적 열락을 관능화하여 일종의 낭만적 혼란을 일으키는 사랑이다. 그가 사랑하는 상대에게서 요구하는 것은 상호감수성이다. 아니, 그 이상의 것, 상호 신앙이다. 사람은 겸허하게 상대편의 신성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아름다운 신비의 교제> 속에서 서로의 개성이 융화하여 훌륭한 조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상대편에게서 공동화된 전 인격의 일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호의 사랑에 의해서만 인간의 본성은 또다시 그 본래의 신성으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66f)

소설은 <시대의 백과사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전 세계의 거울>이어야 하는 것이다.

낭만적인 문학은 <묘사되는 사건과 묘사하는 작가의 중간에 위치하고 온갖 현실적 관심이나 공상적 관심에 사로잡힘이 없이 시적 반성의 날개를 타고 그 중간으로 떠돌며, 이 반성을 끊임없이 누승하여 무한한 이련의 거울을 보듯이 반성을 배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리체움>>단편에서 슐레겔은 이러한 시적 반성의 정신 태도를 아이러니라고 부렀는데, <<아테네움>> 제 1권에서 실제로 아이러니는 그의 미학의 중심이 되어있다. 그에 의하면 아이러니는 종합을 추구하는 작가를 날카롭게 대립하는 양극의 중간에서 떠돌게 한다. 아이러니는 <자기 창조와 자기 부정의 부단한 교환>, 열광과 회의의 부단한 교대, 즉 예술 창작 과정의 변증법 중에서 두 분극을 일체화시키는 근본 원리인 것이다. 슐레겔은 <<리체움>> 단편 108번에서 말했다. 아이러니란 <제약된 것과 제약되지 않은 것 사이의 해소하기 어려운 대립 의식이나 양자의 완전한 자기 전달은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필연적이라는 예감을 느끼게 하며, 또 이러한 감정을 촉발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것은 모든 특권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특권이다. 왜냐하면 이에 의해서만 시인은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75)

그는 이미 예나 시대에 체계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고 <<아테네움>> 단장53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체계를 갖는 것도 또 갖지 않는 것도 똑같이 정신을 위해서는 치명적인 것이다. 따라서 양자를 겸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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