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 만- 두 번째

마지막으로 역사철학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가장 신뢰할 만한 의미일 것이다). 전인류의 역사, 그것의 비밀스런 의미, 연관, 그 속에서 작동하는 힘과 법칙, 리듬에 대한 사변적이고 창조적인 관점들. 그래서 역사철학은 전적으로 철학으로서, 즉 인간이 자신의 시간 속에서의 존재와 생성과 역사를 무엇인가 자기에게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쉴러가 말한 바 세계사를 세계심판으로 간주하는 사변적인 사유로서 이해되었다. 이러한 포괄적 의미에서의 역사철학은 대부분 비판적이며 시끄럽고 요란한 시대에 탄생했다. 역사가 책임진, 혹은 책임지지 못한 목표는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고, 아마도 또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며, 가장 최근의 체험에 있어 혼란스러운 것들을 질서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를 이해하려면 모든 과거가 동원되어야 하고, 그것이 현재를 향하여 질서지워져야 한다. 그래서 아마도 가장 깊고 풍부한 역사철학을 가진 이인 헤겔은 자신의 시대, 즉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시대를 비할 데 없는 위기의 시대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모든 과거에로 소급했다. 그로써 역사철학은 아주 본래적인 의미에서 위기의 철학인 것이다. 이는 칼 마르크스와 야콥 부르크하르트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두 사상가는 서로 너무나도 확연히 구분되지만, 두 사람 모두 위기의  사상가였던 점에서는 같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얘기할 수 있는데, 그에게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체험이 헤겔에 있어서 나폴레옹 전쟁이 가졌던 것과 대체로 비슷한 의미로 비쳐졌다. 또 한 명의 저술가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는 이 일련의 강연회의 강연자 중 한 명인 아놀드 토인비이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철학자로 규정하기에 안성맞춤인 1,500년 전 아프리카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이러한 생각이 적용된다. 그 또한 자신이 극히 비판적이고 혼란스럽고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바로] 이러한 느낌, 이러한 의식으로부터 신곡이라는 그의 저작이 나왔던 것이다.

역사철학이 존재하는 상이한 형식들-내가 지금 차례차례 떠올리고 있는-은 실천에 있어서는 서로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선명함을 위해서는 그것들을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 모든 역사가는, 그가 그것을 의식하든 하지 못하든 간에, 또한 역사철학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그가 지적인 사람이고 자신의 지성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하다. 모든 역사가는 왕왕 본래적으로 역사철학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몇 몇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학문을 의문시함으로써 역사철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대한 역사철학적 저작, 사변들이 있고, 우리가 역사의 형이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러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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