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근대이후 번역 2절-1
- 생활정보
- 2008. 1. 17. 00:20
2. 페미니즘과 생태페미니즘의 비판
페미니즘의 출발점이 사회학적 시대진단에 잇대어 있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이 바우만, 투렌, 베크, 기든스가 다루었던 주제들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학자들처럼 자연 지배, 합리주의, 계몽주의 따위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산업사회 혹은 계급사회나 역사적 이성으로부터 결별하기를 주저하는 대개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이 변별되는 지점이다. 이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지배구조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페미니스트들(바우만 류의 사회학자도 포함하여)에 반대하며 역사적 목적론과 보편타당한 이성에 대한 요구를 옹호한다는 점을 보도록 하겠다.
페미니스트와 마르크스주의자가 이따금 동질적 집단으로 비칠 만한 논지를 펼치기는 하지만, 그들의 입장 사이에 점점 이질성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의 주도적 입장들을 마르크스주의나 사회학적 이론과 구별지어주는 거센 특수화경향이 강조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대성을 향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과 이에 상응하는 사회비판의 보편화가능성에 대한 이들의 집념을 그려보일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경향-한쪽의 특수화 경향과 다른 쪽의 비판의 보편화가능성-이 페미니즘 이론의 내부에서 모순과 긴장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많은 페미니즘 담론에 공통된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이 계몽의 변증법의 자장 속에서 사회-, 문명 비판을 도모하고 있다는 점과, 동시에 이러한 비판의 화살을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에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지배의 원리로 향하도록 해야한다는 그들의 후근대적 테제라 할 수 있다. 가령, 프랑수와 도본느의 페미니즘이냐 죽음이냐에서 그 자체 문명 비판이던 것이 나중에는 남성지배에 대한 것으로 넘어가 버린다: "제일 큰 책임은 초도시적이고 초산업적인 기술 문명에 있다. 마치 갈리아인들이 언덕 위에서 굴려보내는 불타는 바퀴처럼, 저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듯이 질주하는 가운데 이익을 사냥하는 기술 문명. 그러나 갈리아인들이 불꽃과 연기로 전장의 열기를 고무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의 기술 문화는 삶의 지반을 그 불타는 바퀴로 침몰시키고 있다."1) 이러한 혼란이 코앞에 닥친 까닭은 이윤이나 시장법칙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남성의 지배이다: "환경 파괴와 인구 과밀의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점들이 심각하게 충돌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자본주의의 틀을 벗어나 있는 것이고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디서나 남성우월주의는 지배적인 힘이기 때문이다."2)
이렇게 탐스러운 메타포를 지닌 담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면, 그것이 "기술 문명"이나 "남성우월주의"와 같은 신화적 행위체에3) 의해 지배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속에는 보편적 타당성을 얻고자 하는 역사적 태도도 들어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저지할 수 없는 진보 속에서 자연과 인간성을 파괴하는 기술 문명을 몰아가는 힘은 지배적인 남성우월주의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베버나 뒤르켐이 연구한 합리화와 노동 분화의 과정,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Marxens?)의 계급 지배의 원리도 이러한 신화적 행위체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의 주제로 삼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이데올로기-, 담론비판적인 인식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만든 원인은 오직 남성우월주의뿐이라는 주장을 보편적인 양 관철시키려는 이러한 수사학이 제기하는 합리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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