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공인회계사
- 생활정보
- 2008. 1. 29. 11:20
공인회계사
우리 시대는 르네상스 일반과, 특히 서적 인쇄술이 발명되었을 때의 상황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즉 우연이든 그렇지 않든 독일에 인쇄술이 출현한 것은 가장 탁월한 의미에서의 책, 책 중의 책[성서]이 루터의 번역에 의해 민중의 재산이 되었던 때였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종래 형태의 책이 종언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증거로 미루어 볼 때 아주 분명해 보인다. 분명히 전통주의적인 글의 결정(結晶) 구조 속에서 미래에 도래할 것의 진정한 이미지를 간파한 말라르메가 「주사위 던지기」에서 처음으로 광고의 그래픽적인 긴장을 인쇄된 페이지(Schrift-bild[문자이미지])로 가공한 바 있다. 이후 다다이스트들이 시도한 타이포 실험들은 구성 원리들이 아니라 이들 문인들의 정확한 신경 반응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본인의 문체의 내적인 성격 자체에서부터 자라 나오는 말라르메의 실험보다 훨씬 더 단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을 통해 말라르메가 마치 모나드처럼 완전히 닫힌 방 안에 머물면서 경제, 기술, 공적 생활에 있어 우리 시대에 일어난 모든 결정적인 사건들과의 예정 조화 속에서 발견한 것의 당대적 적합성을 인식할 수 있었다. 즉 인쇄된 책 속에서 자율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하나의 피난처를 발견했던 문자는 지금은 광고에 의해 인정사정없이 거리로 내쫓겨나 경제적 혼돈에 의한 잔혹한 타율성에 복종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문자의 새로운 형식에 주어진 엄격한 교육 과정이다. 수세기 전에 문자가 몸을 누이기 시작해 수직으로 서 있는 비문에서 경사진 책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원고가 되고 결국에는 인쇄된 책이라는 침대에 눕게 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문자는 전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다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신문은 수평으로 높고 읽는다기보다는 똑바로 세운 상태로 읽혀지며, 영화와 광고는 문자에게 완전히 독재적인 수직 상태로 있을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책이라도 한번 펼쳐볼라 치면 벌써 활자들의 눈보라가 어찌나 자유자재로 변화하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서로 다투며 눈앞을 가리는지 책이 가진 태곳적부터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아주 희박해진다. 메뚜기 떼 같은 문자가 오늘날 대도시 사람들이 지식인들이라고 오인하고 있는 태양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해가 갈수록 짙어져갈 것이다. 직업 생활에 따른 그밖의 다른 요구들이 사태를 한층 더 진전시키고 있다. 카드식 색인은 삼차원적 글쓰기에 대한 정복을 획劃하는 것으로, 따라서 [고대 게르만의] 룬 문자 또는 [고대 잉카인들의] 결승結繩 문자라는 근원적 형태로 문자가 갖고 있던 삼차원성에 대해 놀라운 대조를 보여주고 있다(그리고 오늘날 이미 책은 현재의 학문 생산 방식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두 개의 상이한 색인 분류 시스템을 낡아빠진 방식으로 매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모든 본질적인 것은 책을 저술하는 연구자의 카드 박스에 들어 있으며,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는 그것을 자기의 카드 파일에 넣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자의 발전이 향후 무한대로 카오스적인 학문 활동과 경제 활동을 위한 세력 확대 요구와 결합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양이 질로 전화하고, 점점 더 새롭고 기괴한 이미지성[조형성]이라는 그래픽적 영역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 가던 문자가 일거에 적절한 사상의 내실(Gehalt)을 거머쥐는 순간이 도래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때 원시 시대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문자에 정통한 사람이 되어 있을 시인들이 이러한 이미지 문자(Bilder-schrift[그림문자, 상형문자])에 가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이 (전혀 주제넘지 않게) 이 이미지 문자가 구성되는 영역들을 개척하는 경우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역들이란 통계적ㆍ공학적 다이어그램의 영역들을 가리킨다. 국제적인 변전變轉 문자를 창시함으로써 시인들은 민족들의 삶에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권위를 새롭게 하고, 수사법의 혁신에 대한 열망들은 모두 시대에 뒤쳐진 몽상이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방통행로, 조형준 역, 57-60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