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1)
- 생활정보
- 2007. 5. 2. 13:36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와 근대의 자연과학의 선구자이다. 기원전 384년 칼키디키 반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다. 17세 되던 해에 그는 플라톤에게 배우기 위해 아테네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스승이 죽기까지 20여년을 지냈다. 그후에는 아소스와 뮈틸리니에 잠깐씩 살았고, 그런 다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그는 2~3년간 알렉산더 왕자-후에는 온대륙을 호령하는 왕이 된-의 선생으로 일했다. 그후에는 다시 아테네로 가서 Lykeion이라는 학당을 세우고 철학을 가르쳤다. 63세의 나이로 아테네 외곽 에우뵈아에서 죽었다.
그의 생전에 출간된 저작 19개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06권의 책Corpus Aristotelicum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출간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학의 방법에 관한 저작Organon, 범주론, 해석론, die Topic,소피스트적 논박, 자연학, 천문학, 영혼론, die Bewegung der Lebewesen, 그리고 정치학 및 윤리학에 대한 3권의 대저작이 포함된다. Somit lehrte Aristoteles die Logik, die Erkenntnislehre, die Metaphysik, die Naturphilosophie, die Politik und die Ethik.
철학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대상에 대한 사념(생각Meinung)의 수용Bestandaufnahme이 일어난다. 그 다음, 이러한 사념이 문제시되고, 세 번째로는 그 문제의 해결이 시도된다. 실재에 대한 추론에 있어서 근본개념에 속하는 것으로는 본질ousia, 형상eidos, 질료hyle, 기체hypokeimenon, 현실태energeia와 잠재태dynamis 등이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 근본개념들은 객관적 구조에 대한 파악Erschliessung을 위한 도구로서 이해된다. 이 개념들의 의미에 실재적 소여가 상응하는 것이다.
사물은 우리의 의식에 상관없이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이른바 의미분류Bedeutungsklasse로서의 범주를 도입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범주에 속하는 것들로는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운동Tun, Erleiden, 위치Lage, 그리고 소유Haben가 있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자연적 분류에 언어의 표현이 맞서 있다(대응한다). 모든 실체는 규정된 그 무엇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학설은 이러한 범주질서를 결여한 이론의 소치이다.
자립성(독립성)과 실체는 본질Wesenhetien과 실재로 이해되는 (저) 사물의 속성이다. 형이상학에서는 질료와 형상이 구별된다.
최고의 현실은 신(성)이다. 신은 순수한 형식이요, 순수한 사유이며, 부동의 동자이며 완전한 자기반영Selbstreflexion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인과 근거가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만 지식과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원인은 내용, 형식, 시초, 그리고 목적의 측면에서 기술될 수 있다. (4원인?)
우주와 세계 속에서의 생성은 가능적인 존재에서 현실적인 존재에로의 이행으로 이해된다. 현실성과 가능성Potenz은 사물의 다양한 상태로 간주된다.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에서 운동이 있는 것이다. "제일"철학에서는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데, 이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는 신적인 실체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제일철학은 신적이며 신성하다. 그것은 신적인 지知에 가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그것은 신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의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에 대한 고찰을 하는 것이 형이상학의 과제이다. 이로써 보편적 존재학은 신적인 것에 관한 언급(신학)과 서로 얽히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윤리학이 철학의 고유한 분과가 된다. 윤리학은 다른 모든 지식의 영여과 구별된다. 윤리학은, 그 원인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인간의 결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에 관계한다. 사물들은 영원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실천적인 학문으로서 인식이 아니라 행위에 초점을 둔다. 윤리학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묻는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이성sophia과 실천이성phronesis을 분명하게 분리시킨다. 이론철학으로부터 삶의 실천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인간 행위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eudaimonia을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성상 건강과 좋음(선)을 얻기 위해 애쓴다. 그러므로 그러한 모든 노력에는 그 각각이 목표로 하는 어떤 좋음ein Gutes이 있다. 덕에 근거하여 우리는 우리 행위의 올바른 목표를 설정한다. 또한 지혜Klugheit를 근거로 해서 우리는 이러한 목표에로 이끄는 올바른 길을 인식하게 된다.
성숙하고 통찰력있는 인간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의 도덕적 훌륭함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올바른 규범을 세운다.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위한 기준과 규칙을 정하는 것은 올바른 이성logos이다. 우리는 [단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욕망하지만, 사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올바른 노력과 올바른 사유가 일치하면 우리는 선한 행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더 나은 지식에 반하여 행동하는, 의지가 약한 인간이 있다. 그는 언제나 강렬한 욕망의 영향에 쉽쓸린다. 정신으로 관조하는 삶과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두 가지 목표이다. 관조하는 자는 초시간적 진리들을 고찰하며 이로써 자신의 유한함을 극복한다. 그러나 학은 언제나 제대로 정초된 지식을 추구한다.우리의 오성이 규정된 대상을 파악하면 그것은 동시에 또한 자기자신도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의 자연연구를 촉발하는 위대한 선학Anreger이 되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자신의 시대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가 보기에 우리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었고,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한다. 국가는 이성적이고 가능한 한 좋은(선한) 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정치상태는 우리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생전에 출간된 저작 19개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06권의 책Corpus Aristotelicum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출간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학의 방법에 관한 저작Organon, 범주론, 해석론, die Topic,소피스트적 논박, 자연학, 천문학, 영혼론, die Bewegung der Lebewesen, 그리고 정치학 및 윤리학에 대한 3권의 대저작이 포함된다. Somit lehrte Aristoteles die Logik, die Erkenntnislehre, die Metaphysik, die Naturphilosophie, die Politik und die Ethik.
철학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우선 대상에 대한 사념(생각Meinung)의 수용Bestandaufnahme이 일어난다. 그 다음, 이러한 사념이 문제시되고, 세 번째로는 그 문제의 해결이 시도된다. 실재에 대한 추론에 있어서 근본개념에 속하는 것으로는 본질ousia, 형상eidos, 질료hyle, 기체hypokeimenon, 현실태energeia와 잠재태dynamis 등이 있다. 이러한 존재론적 근본개념들은 객관적 구조에 대한 파악Erschliessung을 위한 도구로서 이해된다. 이 개념들의 의미에 실재적 소여가 상응하는 것이다.
사물은 우리의 의식에 상관없이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이른바 의미분류Bedeutungsklasse로서의 범주를 도입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범주에 속하는 것들로는 실체, 양, 질, 관계, 장소, 시간, 운동Tun, Erleiden, 위치Lage, 그리고 소유Haben가 있다. 사물에 대한 이러한 자연적 분류에 언어의 표현이 맞서 있다(대응한다). 모든 실체는 규정된 그 무엇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학설은 이러한 범주질서를 결여한 이론의 소치이다.
자립성(독립성)과 실체는 본질Wesenhetien과 실재로 이해되는 (저) 사물의 속성이다. 형이상학에서는 질료와 형상이 구별된다.
최고의 현실은 신(성)이다. 신은 순수한 형식이요, 순수한 사유이며, 부동의 동자이며 완전한 자기반영Selbstreflexion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인과 근거가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만 지식과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원인은 내용, 형식, 시초, 그리고 목적의 측면에서 기술될 수 있다. (4원인?)
우주와 세계 속에서의 생성은 가능적인 존재에서 현실적인 존재에로의 이행으로 이해된다. 현실성과 가능성Potenz은 사물의 다양한 상태로 간주된다.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에서 운동이 있는 것이다. "제일"철학에서는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는데, 이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는 신적인 실체와 동일시되는 것이다. 제일철학은 신적이며 신성하다. 그것은 신적인 지知에 가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 그것은 신적인 것에 관한 지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의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존재자에 대한 고찰을 하는 것이 형이상학의 과제이다. 이로써 보편적 존재학은 신적인 것에 관한 언급(신학)과 서로 얽히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윤리학이 철학의 고유한 분과가 된다. 윤리학은 다른 모든 지식의 영여과 구별된다. 윤리학은, 그 원인을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인간의 결단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사물에 관계한다. 사물들은 영원하지 않은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실천적인 학문으로서 인식이 아니라 행위에 초점을 둔다. 윤리학은 우리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묻는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이성sophia과 실천이성phronesis을 분명하게 분리시킨다. 이론철학으로부터 삶의 실천에 관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인간 행위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eudaimonia을 체험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본성상 건강과 좋음(선)을 얻기 위해 애쓴다. 그러므로 그러한 모든 노력에는 그 각각이 목표로 하는 어떤 좋음ein Gutes이 있다. 덕에 근거하여 우리는 우리 행위의 올바른 목표를 설정한다. 또한 지혜Klugheit를 근거로 해서 우리는 이러한 목표에로 이끄는 올바른 길을 인식하게 된다.
성숙하고 통찰력있는 인간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의 도덕적 훌륭함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 올바른 규범을 세운다.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를 위한 기준과 규칙을 정하는 것은 올바른 이성logos이다. 우리는 [단지]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욕망하지만, 사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올바른 노력과 올바른 사유가 일치하면 우리는 선한 행위를 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행위는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더 나은 지식에 반하여 행동하는, 의지가 약한 인간이 있다. 그는 언제나 강렬한 욕망의 영향에 쉽쓸린다. 정신으로 관조하는 삶과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은 행복하게 살기 위한 두 가지 목표이다. 관조하는 자는 초시간적 진리들을 고찰하며 이로써 자신의 유한함을 극복한다. 그러나 학은 언제나 제대로 정초된 지식을 추구한다.우리의 오성이 규정된 대상을 파악하면 그것은 동시에 또한 자기자신도 파악하게 된다.
이러한 개념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의 자연연구를 촉발하는 위대한 선학Anreger이 되었다. 그는 자연에 대한 자신의 시대의 지식을 총망라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그가 보기에 우리 인간은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었고,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한다. 국가는 이성적이고 가능한 한 좋은(선한) 법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상적인 정치상태는 우리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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