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사, 관계 대명사 그리고 마침표-김남시님 글

·         전치사[1]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서로 관계맺어 준다. 그건 우리 über “ 에 있는 하늘과 우리 자신을, 하늘 아래 unter “에 있는 집과 하늘을, in “에 있는 사람들과 집을, neben “에 있는 책상과 나를, 책상 auf ’에 놓인 책과 책상을, unter ’에 깔린 노트와 책을 연결시켜 준다. 나아가 그것은 우리집 바깥 außer’에 있는 나무와 집이, 그 나무 hinter ’에 있는 병원과 나무가, 병원 내부 innerhalb ’에 있는 사람들과 병원이, 또한 그 사람들의 외부 außerhalb’와 그들의 내부 inner’가 서로 관계맺을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공간적 관계 맺음을 넘어 전치사는 내가 경험할 수 있는 한 사건이 일어나기 bevor’과 그것이 일어난 nach 를 관련지어 줄 뿐 아니라, 내가 경험할 수 없는 나의 탄생 이전과 나의 죽음 이후도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런 점에서 미셸 세르[2]는 공간, 시간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맺도록 해주는 전치사를 우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적 흐름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천사 Angelus에 비유한다. 스스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우주의 모든 것들을 서로 관계 맺어주고 또 그를통해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변화시키도록 해 주는 천사는, 모든 명사들이 성을 가지고 있고 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유럽어에서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그를통해 연결되는 명사들은 변화시키는 전치사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         전치사가 명사로 표현되는 우주의 모든 것들을 그것의 개별성 속에서 서로 관계맺게 해준다면 관계대명사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사태들을 연결시켜 주는 언어적 장치다. 세계가 사물들Dinge이 아니라 사태들Tatsachen의 총체라는 비트겐스타인의 확신[3]을 받아들인다면 관계대명사는 문장으로 표현되는 세계의 사태들을 서로 관계맺게 해주는 사태들의 세계를 주재하는 천사. 이 관계대명사는 사태들의 내부에 존재하면서 사태가 지닌 다양한 (본질적으로는 무한한) 속성과 양태들의 서술을 서로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마침표로 종결된 문장들을 연결시켜 주는 접속사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그러므로...)와는 구별된다. 이 관계대명사를 통해 우리는 한 사태가 지니고 있는, 서로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측면들을 그 관련성 속에서 언어화시킬 수 있다.


 

·         „Vor mir liegt ein Buch, dessen Decke schwarz ist, was mich an einen Winterabend erinnert, den ich mit der schmerzhaft hohen Fieber erlebt hatte.“ 라는 문장은 하나의 사태 - „내 앞에 놓여있는 책“ - 과 관련된 다양한 속성들을 관계대명사를 통해 그것의 연관성 속에서 언어화시키고 있다. 관계대명사가 없는 언어를 통해서라면 우리는 이를, „내 앞에 책이 있다. 그 책 표지는 검정색이다. 그 검정은 겨울밤을 상기시킨다. 내가 고열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경험했던.“이라는 서로 종결된 문장의 병렬 Nebeneinander로 말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네 문장의 병렬은 그들 사이의 본질적 관련성을 언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         나아가 관계대명사는 특정한 사태가 우리 의식에 현상하는 다양한 모습들을 그것의 순서에 따라 서술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 앞에 놓여있는 책을 발견하고, 그 책 표지가 검정색임을 인지하며, 그 검정색이 주는 인상으로부터 자신의 기억 속에 있던 겨울밤을 떠올리고, 나아가 그 겨울밤에 겪었던 구체적 체험을 상기하는 주체의 변화하는 의식은  하나의 종결된 사태에서 다른 사태로의 이행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 속에서 서로 관련되어 일어나는 변화들이며, 따라서 이는 문장을 종결시키지 않으면서 연결시켜 주는 관계대명사를 통해 가장 잘 언어화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신 현상학>은 관계대명사가 존재하는 언어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던 저작이다.)

 

·         관계대명사를 통해 서술된 문장을 관계대명사가 없는 언어, 예를들어 한국어로 번역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이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관계대명사를 통해 표현된 저 의식의 이행순서를 한국어의 문장구조에 맞추어 임의로 전도시키거나 – „검은 표지를 한 내 앞에 놓여있는 책은 내게 고열을 앓으며 고통스럽게 경험했던 겨울밤을 상기시킨다.“ – 아니면, 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현상학적 과정들을 인위적으로 종결시키고 이를 마침표로 끊어진 문장들의 재배열을 통해 말해야만 한다. – „ 내 앞엔 검은 색 표지를 한 책이 있다. 그 검은색은 내게 고열을 앓으며 고통스럽게 경험했던 겨울밤을 상기시킨다.“    

 

·        관계 대명사를 통해 어떻게 사태에 대한 지각과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가 서술될 있는지를 우리는 카프카의 단편 <변신> 문장을 통해서도 확인할 있다.  벌레로 변한 잠자가 자신의 방을 둘러보는 모습을 서술한 카프카의 아래 문장은 잠자의 시선의 이동과 그의 의식에 떠오른 현상, 나아가 그에의해 촉발된 기억의 순서를 관계 대명사를 통해 언어화하고 있다. „Über dem Tisch, auf dem eine auseinandergepackte Musterkollektion von Tuchwaren ausgebreitet war – Samsa war Reisender -, hing das Bild, das er vor kurzem aus einer illustrierten Zeitschrift ausgeschnitten und in einem hübschen, vergoldeten Rahmen untergebracht hatte. Es stellte eine Dame dar, die mit einem Pelzhut und Pelzboa versehen, aufrecht dasaß und einen schweren Pelzmuff, in dem ihr ganzer Unterarm verschwunden war, dem Beschauer entgegenhob.“[4] 가장 먼저 잠자가 바라본 것은 그의 책상이며, 다음엔 책상 위에 풀어헤쳐져 놓여있는 수건 견본품이다. 다음 그의 시선은 위에 걸린 그림에로 이동하고, 이는 잠자에게 그가 그림을 만들기 위해 했던 행동 -  잡지에서 사진을 오려, 금박 입힌 액자에 끼워놓았던 상기시킨다. 이후 우리는 액자 속의 그림 내용에 주목하게 되는데, 제일 먼저 우리는 그것이 명의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인이 어떤 모자를 쓰고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리고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 이후에 있다. 시선과 의식의 이러한 변화의 순서가 위에선 관계대명사로 이어진 문장들을 통해 언어화되어있다. 어떻게 임의적 전도 인위적 종결없이 이런 문장을 관계대명사가 없는 언어로 번역할 있을까. 이는 관계대명사를 가지지않은 한국어 번역이 고민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다.       

 

·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태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면[5], 그에대한 서술 이는 필연적으로 그에대한 의식을 동반하는데 서로 관계대명사로 이어져있는 문장들을 통해서만 참되게 언어화될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식에 현상하는 사물과 사태들의 모습이 본질적으로 무한하다면 서술은 관계 대명사를 통해 무한하게 이어져있는, 마침표 없는 문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무한한 세계의 연장을 순간에 파악할 수도, 나아가 그를 순간에 기록할 수도 없는 , 공간적으로 제한된 존재인 , 세계와 그에대한 인식은 마침표로 종결된 문장들의 연쇄로 서술될   밖에 없다. 우리에게 무한한 세계를 인식할 만큼의 무한한 시간도, 무한한 연장을 한꺼번에 경험할 만한 감각기관도 주어져 있지 않는 , 세계에 대한 우리의 서술은 필연적으로 그에대한 인위적 중단 종결 마침표로 드러내는 문장으로 이루어질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마침표는 인간의 본질적 제한성을 폭로하는 언어적 기호다.                

 


 


[1] 한국어엔 영어 독어, 불어 등에 존재하는 전치사 Präposition’라는 문법 범주가 없다. 그러나, 아래의 사례 문장들에서 등장하듯 전치사 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언어적 요소들은 존재한다.  다만 한국어에서 그것들은 전치사 아니라 조사혹은 부사  분류될 뿐이다.      

[2] Michell Serres : Die Legende der Engel. Frankfurt am Main, 1995.

[3] „Die Welt ist die Gesamtheit der Tatsachen, nicht der Dinge.“ Ludwig Wittgenstein :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1.1. 

[4] Franz Kafka : Die Verwandlung. In sämtliche Erzählungen, Frankfurt am Main 1970, S.56.

[5] Georg Simmel : Brücke und Tür, in Gesamtausgabe Bd.12, S. 55 f.


http://blog.daum.net/southclock/9487496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