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모로-정치사상사 서론 요약

이 책은 서구 정치사상사의 핵심적 주제들을 간결하고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플레이토에서 나토까지'의 전통을 개관하는 많은 정치사상사의 서설들은 연대기적 일관성과 전기적,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고찰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을 갖지만, 덜 알려져 있으나 중요한 사상가와 주제들을 파악하는 데는 적절치 못하다.

그래서 이 책은 문맥적 고려를 하고 있다. 또 유럽사의 핵심적 주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주제들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할 틀을 제공하고 있다. 이 접근법은 정치에 관한 논쟁들의 연속성과 변화상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서구의 정치사유는 일관된 총체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전통과 완전히 단절하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변화와 연속성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시대구분
기원전 500년에서 서기 500년까지의 1처년을 고대라 일컫는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로마 공화국, 로마 제국 등에 초점을 두며, 기독교 이전 사회에 대한 논의가 주된 흐름을 차지하지만, 후기의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음에 유의해야 한다.

중세는 6세기부터 15세기 후반가지 펼쳐진 기간이다. 중세의 정치사상은 기독교적 토대와 신성 로마제국의 점진적 몰락, 봉건제와 민족국가 출현의 맹아를 반영하고 있다. 이어지는 16세기 초부터 18세기가  '근대 초기'의 정치사를 이룬다. 1517년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서양기독교 세력의 분열로 이 시기는 특징지어진다. 종교개혁 이후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 문제들에 대해 성찰케 하였다. 이와 더불어 이탈리아에서 도시국가가 재출현했고 고대 세계에 대한 관념, 즉 르네상스가 일어났다. 중세 후기와 근대 초기 정치 이론은 고대에 어느 정도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고대 저작들의 활용은 기독교에 배치되는 정치적 개념들을 낳았다. 기독교 전통은 과학과 계몽주의로 인해 더욱 약화되어 갔다. 계몽운동은 19-20세기 초 기간의 정치에 관한 세속적 관심의 토대였다. 근대 정치이론은 계속해서 세속화되어 갔다. 산업혁명과 사회, 정치적 미눚화는 정치적 사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에 나타난 복잡한 정치이론들은 이데올로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대중정치와 혁명에 관한 이론들이 많이 등장했으며, 이것들은 전통적 정치사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초점
이 책은 국가라는 틀 속에서 통치의 문제에 집중한다. 핵심적인 것은 정치적 권위에 대한 물음들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정치의 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사유는 언제나 처방을 모색했다. 이 책은 통치의 목적과 본질, 그리고 그것이 생겨나는 구조에 관련된 처방을 다루고 있다. 제 1부는 정치적 권위 행사의 목적, 2부와 3부는 최고권위의 담지자와 그 행사 방식에 대한 논의를 다루며, 마지막으로 4부는 저항과 혁명에 관한 이론들이다. 정치사상사의 흐름에 기여한 저술가들의 공헌은 당시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이해와 그 문제 처리 방식의 장단점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종교적 초 윤리적 전제들과 같은 요소들에 따라 평가된다.  최근 들어 맥락적 상황적 요인들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과거는 낯선 외국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상가들은 이러한 문제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 이론의 역사적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정치사상의 핵심적 일반 주제들에 대한 논의 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구의 정치적 사유: 간략한 개관
정치에 관한 최초의 언명은 플라톤이 쓴 것들이다. 그는 도시국가 폴리스의 문제에 집중했다.  폴리스는 단순히 애정단위나 보호-복지 기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삶의 방식'이었다. 즉 폴리스는 공동체의 문화를 포용하고 반영했으며, 개인들이 자신의 소망을 알 수 있도록 틀을 제공해 주었다.  초기 정치 이론의 대부분은 민주정 아테네에서 나왔다. 이에 대한 프로타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의 긍정적 평가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비판받았다.

한편 로마의 키케로는 공화정에 관심을 두었다. 이어 중세의 정치이론가들은 정치제도와 사상의 관계를 탐구했고, 기독교에 의해 규정된 인간의 삶의 개념에 대해서 탐구하였다. 그들은 세속국가와 하나님의 나라를 엄격히 구별하였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치제도와 기독교 교리 사이에 튼튼한 가교를 세우려 힘썼다. 그의 이론은 왕국에 중심을 두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규율들은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에서 파생된 근본원칙들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전용했으며, 교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국가를 옹호하였다.

중세 후기와 근대 초 이탈리아에는 강력한 도시국가들이 등장했다. 정치사상가들은 도시국가의 정치조직이 직면한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은 안정과 생존의 문제였는데, 이에 있어 가장 독창적이며 중요한 사상가는 마키아벨리이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역사에 주목했으며, 인민 공화정 국가를 옹호했다.

마키아벨리가 특별한 것은, 그가 아주 색다른 정치적 도덕성의 조건들을 제시하였으며, 기독교를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의 저작들은 민족국가들이 도시국가들을 쇠망시키던 시기에 나왔다. 민족국가로의 발걸음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이 흐름은 종교 분쟁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16,17 세기 민족국가의 성립과정에서 절대군주론이 탄생했다.

절대주의는 새로운 민족국가 내에서 통치자-피치자 관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다. 전통적이거나 신성한 규율과 주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 사이에 긴장이 발생했다. 자연법을 존중하고 절대군주와 프랑스의 전통적 헌정구조를 조화시키려 했던 보댕과는 달리 홉스는 절대군주만이 안전과 복지를 보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근대 초기 민족국가들의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기독교의 붕괴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절대 권위에 대한 통치자들의 요구는 파장이 큰 종교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절대주의가 도전받기 시작한 것이다.

존 로크에게는 인간이 자연권을 부여받은 존재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자연권은 모든 인간에게 속하며, 그것이 명시하는 관심들은 정치적 권위가 구조화되고 행사되는 방법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7세기 중엽과 18세기에 자연권 사상은 정치권력 규제에 과한 사유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양정치사상사에는 자연권과 민주정을 연결짓는 중요한 전통이 있다. 18세기 후반 토마스 페인은 자연권에 호소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주장을 펼쳤고, 19세기 초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는 민주주의가 '좋은 정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사회주의자들은 경제구조의 불평등과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인민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와 그를 지탱하는 정치 권력을 파괴할 혁명적 변환을 주창하였다.

19세기 들어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은 더욱 다양한 갈래로 퍼져나갔다. 에드먼드 버크는 전통적 군주제를 옹호했고, 밀은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를 낳기 쉬운 무리력한 것이라고 보았다. 밀은 엘리트가 주도하는 정부형태를 옹호햇다.

19세기와 20세기의 많은 사상가들은 밀과는 다른 이유로, 즉 인간 삶에 어느 정도의 권위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파시즘이나 나치즘은 대중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권위구조에 눈을 돌렸다. 그것들은 한편으로 권위주의적 군주제와 유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근대의 민주적 문화의 산물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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