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
- 생활정보
- 2007. 8. 20. 15:22
이 네오마르크스주의 사상가는 1895년부터 1973년까지 살았으며, 정치경제학, 심리학, 철학을 공부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비참상이 그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그래서 그는 1922년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설립에 참여했다. 칸트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으며, 그 이후부터 철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시민적" 역사철학의 시초들에 대한 물음에 몰두했다. 1930년에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유태계 혈통이었기 때문에 1933년에는 나치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 기간 동안에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활동하는 한편 철학과 사회과학을 위한 잡지를 관리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 <<권위와 가족에 대한 연구>>, <<도구적 이성 비판>>, 그리고 우리의 선입견의 본성에 대한 연구 등에 매진했다. 전쟁 후에는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1959년까지 철학을 가르쳤다. 에리히 프롬, 테오도르 아도르노, 허버트 마르쿠제와의 공동 작업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이 발전되었다. 여기서 독재와 함께 구현된 파시즘은 시민 문화의 붕괴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가 생겨나고 있으며, 이제 희망은 노동자계급을 향해 있다. 인간적 마르크스주의을 시대에 걸맞게 변형시키기 위한 투쟁이 일어나야 한다. 정치경제학적 역사 연구의 방법이 더 발전되었고, 인간의 사려분별이 추구되었다. 헤겔은 권위주의적 시민 종교의 버팀목이었다.
이제 "시민 종교 이후의" 종교,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수용하는 종교가 추구된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사유는 고된 생활세계를 "안개로 가려버리며", 형이상학적으로 변용시킨다. 순수하게 학적인 세계고찰은 삶을 도구적 이성으로 환원시킨다. 그렇지만 오늘날 유럽 계몽주의가 목표로 삼은 가치들은 다시 기억되어야 한다. 발전의 목표는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이다.
우리가 지적 성실함을 추구하면, 가난한 자들의 사회적 비참함을 줄여가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가진다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 평등, 그리고 형제애의 인간주의적 이념은 실현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가 시민적 문화를 절개해내고 또 계승할 시기가 도래했다. 모든 인간은 삶의 작은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에리히 프롬에 의해 정신분석학의 몇몇 관점이 극복되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시민적 지배와 자연에 반하는 법률은 우리 시대에 와서 이제 종말에 이르렀다. 우리 모두에게는 행복에 대한 갈망, 우리의 진정한 욕구의 만족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 지배자들의 지배는 폭로되어야 하며, 가난한 자들의 착취는 종결되어야 한다. 모든 사회계층과 모든 인간의 동등한 가치가 정치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개인과 사회의 지향을 매개할 수 있는 것이 정신분석학이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적 충동과 정서적 사회화의 요소들을 발견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참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다. 종교는 사회 변화를 위한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종교는 사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 대한 "비판이론"은 불공정한 상황을 발견하고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인간적인 삶에 대한 꿈은 종교의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도 움직이는 것이다.
야만스럽고 탈출구 없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 시민계층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억압을 더 교묘하게 정당화하기 위해 파시즘으로 치달았다.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이름 하에 신분적 특권과 종교 교육, 그리고 아이스러움이라는 잔재가 폐지되었다. 대중들은 물질의 편리함에 의해 도덕적을 타락했고, 경제적인 불평등은 이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민족은 지배집단의 목적을 위해 군대로 조직되었다.
시민과 파시즘 간의 연합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근원적 불안에서 기인한다. 독재는 민중의 억압된 소망을 통제했고, 이러한 체계의 발전 하에서 개체성은 부서지고 말았다. 파시즘은 인간에게서 얼굴을 빼앗고 그 자리에 추악한 모습을 새겨넣었다. 우리는 이제 서류의 언어들만이 검증되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 세계는 자연을 파괴하고 폐기한다. 그러나 언젠가 계몽은 다시금 새로운 신화로 뒤바뀔 것이다. 정신의 사물화와 함께 모든 인간적 관계는 주술에 걸렸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계적 이성의 자동인형일 뿐이다.
자기 자신과 동료인간에 대한 책임 대신에 기계 조작이 들어선다. 산업사회의 발전 속에서 인간은 인격을 잃어버리게 된다. 비판 이성은 신실증주의의 경향과 사유의 도구화 속에서 위험을 무릅쓴다. 이성의 형식화는 우리를 사유내용의 자의성으로 몰고간다. 그것은 자율성을 포기했고, 단순한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성의 조작적 가치는 자연과 개인의 지배에 이용된다.
형식적 이성에 있어서는 폭정과 잔혹성, 그리고 억압은 그 자체로는 전혀 악한 것이 아니다. 도구적 이성은 모든 가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진보의 이상은 기술의 발전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객관적 정신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은 채 민족을 숭배한다. 종교, 예술, 그리고 형이상학이 남아있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주의적으로 지배되는 사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자동화된 현실은 우리를 탈출구없는 현존재의 염세주의로 이끌어간다.
생애 말년에 호르크하이머는 더욱 강렬히 종교와의 대화를 추구했다. 왜냐하면 종교만이 가치와 삶의 의미들을 전해주며, 궁극적 의미와 영속적 진리를 암시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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