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죄렌 키에르케고르(1813-1885)

덴마크 출신 철학자이자 실존철학의 아버지인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루터 신학을 공부했으나 성직자가 되기 위해 애쓰지는 않았다. 일찍부터 헤겔에 의한 기독교 교리의 합리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해석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헤겔을 따를 수는 없었다. 베를린에 체류할 때는 쉘링의 강의를 들었으나, 그의 사유도 마찬가지로 키에르케고르에게는 동떨어진 것일 뿐이었다.  청년시절 그는 자신을 깊이 감동시켰던 종교의 문제들로 인해 아주 괴로워했다. 그는 이러한 갈등을 문학적 작업으로 줄여보려했다. 그러나 칸트가 대변하는 바 종교성의 형식에 정향된 작업은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격적 체험 속에서 확인될 수 있는 정서적으로 강렬히 각인된 종교의 형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실존적 체험은 계속해서 어떤 신학적 교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기독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모든 개인의 삶의 역사이자 그의 영원한 영혼의 구원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그는 쾌락적이고 경험적인 도덕에 정향된 기독교와 날카롭게 선을 긋는다. 그는 <<철학적 단편>>에서 계속해서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켜 나아간다. <<불안의 개념>>,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고 <<Einuebung ins Christentum>> 등의 저서에서는 모든 의심을 뛰어넘는 참된 믿음의 철학을 추구했다.

아벨라르와 데카르트에 반해, 철학자는 의심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인 진리를 향한 추구로써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진리는 체험과 확신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유한한 사유는 결코 포괄적인 진리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철학만으로는 어떤 궁극적 확신에도 이르지 못한다. 특수자와 개인은 헤겔이 말하는 것처럼 절대자에 포섭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나아가 보편자에 대해 우월성을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에서는 인간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며 그의 삶의 형식을 바꾸는 그러한 진리가 중요하다.

철학적 의심은 학생으로 하여금 선생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이게 해준다. 그러나 그가 전체적 정신을 파악할 경우 의심은 인간을 절망에 빠트린다. 그러면 인간은 자신의 삶에 절망하고 그 속에서 더 이상 어떤 의미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교에 기반한 선생은 학생을 인격적 결단으로 이끌고, 그에게 악으로부터 빠져나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즉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미학적 실존방식 속에서 인간은 특히 자신의 감각적 자극을 따르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 그러나 도덕적 실존방식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은 극복되는데, 그것은 삶이 보편적 도덕 원리 위에 확고히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윤리적 현존방식은 다시 한번 종교적 삶의 형식을 통해 전이될 수 있다. 종교적 인간은 전적으로 신을 신뢰한다. 그는 자기의 인격을 신에게 넘겨줌으로써 참된 자아를 찾게된다는 역설을 받아들인다. 이 역설은 본질적으로 기독교에 속하는 것이며, 예수의 형상 속에서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의 역설적 관계가 중심적으로 표현된다. 예수는 신이며 동시에 인간이고, 이 역설은 풀릴 수 없다. 한편으로 우리 인간은 신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실존적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은 이성에 대해서는 분노로 보일 것이고, 종교적 믿음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은 정신적 병으로서 이른 죽음으로 이끈다. 그러나 종교적 믿음으로 들어감으로써 모든 의심의 형태는 극복된다. 의심은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을 때 생겨난다. 그러나 그가 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의 삶의 토대를 신 안에 두면 곧바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피히테의 이상주의적 사유는 의심의 한 형태인데, 그것은 자아의 자기정초를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의 형식은 이교도적인 것인데, 종교의 내용은 철학 안에서 지양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체성의 진리는 항상 고통스러운 것이다. 모든 본질적 인식은 인간의 실존에 관계한다. 실존에 관계되는 인식만이 본질적 인식이며, 우연적 인식은 내면성에 대한 반성을 포기한다. 주관적 진리에 제약을 가하는 객관적 진리가 존재해야 한다. 이 주관적 진리는 인격적 체험과 종교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의 이성적 신이 아니라 성서의 인격적이고 인간을 닮은 신을 추구한다. 인간이 되어 고통을 당하는 신의 역설을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도덕적 견지에서 새로이 방향지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으로만 사유했고, 종교적 확신의 토대 위에서 인간 삶의 실존적인 개혁에 대해 믿었다. 그는 합리적 철학과 단절하려 했다. 종교의 교리는 그에게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종교의 역설 속에서 뭔가 긍정적인 것을 보았고, 이것은 맹목적 신앙으로 뛰어들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념으로써 키에르케고르는 실존철학과 생철학의 선구자로 간주되었다. 그는 더 이상 이상주의적 사상가의 보편적 진리에 대해 믿지 않았고 자신의 사유의 방향을 구체적 인간의 현존을 향해 돌렸다. 인격적 실존은 현실의 이성적 실존에 대해 우위에 있다.

그래서 실존철학은 헤겔과 후설의 본질철학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에 선다. 실존철학은 포이어바흐와 니체, 그리고 해석학적 철학의 단초들을 선취한 것이다. 후대의 실존철학의 대표적 사상가들 대부분은 진리의 주관주의라는 점에서 키에르케고르를 따랐지만, 종교적 믿음으로 뛰어든 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비종교적이고 실존철학적인 인격주의(하이데거, 야스퍼스)를 옹호했으며, 이는 키에르케고르의 사유모델을 세속화한 형식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유형식들은 모두 칸트와 유럽 계몽주의의 의미의 비판적 합리성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방향을 돌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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