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빌헬름 딜타이(1833-1911)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이론과 언어 텍스트에 대한 이해의 이론을 기획했으며, 해석학적 철학의 제창자로 간주된다. 라인강변의 비베리히에서 태어났으며, 바젤, 킬, 브레슬라우, 그리고 베를린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예술, 종교, 그리고 법 등을 이해의 이론 안으로 포섭함으로써 자신의 사유에서 전통적 해석학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그는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이러한 언어적 자료의 발생연관에 대한 추체험으로 기술했다. 나중에 그는 모든 이해는 객관적 정신과의 연관들에 관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배경에는 자연 현상 혹은 인간 역사의 현상들 안에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보는 낭만주의적 이념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 역사에 대한 이해는 삶을 표현하는 상징을 해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학의 이론은 생철학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우리의 개념과 판단은 삶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생겨나며, 감정, 의지, 예감을 가진 우리 인격의 전이성적인 층위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은 더 이상 설명될 수 없는 궁극적인 그 무엇이다. 삶은 개념적 사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직접적인 방식으로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자들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이라 명명한 것은 딜타이에게 있어서 삶이다. 개별학문들은 다만 세계의 규칙성만을 파악할 뿐이지 현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는 결코 알아내지 못한다. 이러한 삶의 의미는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하는 삶의 표현으로서 삶의 연관 속에서 비로소 밝혀지는 것이다.

딜타이가 보기에 영원한 진리나 변화하지 않는 가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항상 삶의 흐름에 의존해 있는 것이며, 따라서 항상 역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역사적 상대주의가 초역사적 기준들을 대체하게 된다. 이해는 정신과학의 근본형식으로 간주되는 반면, 설명의 모델은 자연과학에 속하는 것이다. 이때 이해는 정신적 과정을 추체험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이로써 해석학은 서술하는 심리학의 영역에 속하게 되며, 자연과학적 심리학에 포섭되지 않는다. 서술하는 심리학에서만 삶의 전체적인 성격이 완전히 고려되기 때문이며, 실험적 심리학은 단지 생물학적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해하는 자의 의식 속에는 언어 텍스트 속에 표현된 타인의 경험을 추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경험의 보물이 이미 주어져 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경험을 다루지 못하는 이들, 예컨대 아이들은 어른들의 특정한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낯선 경험과 낯선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선이해"를 습득한다. 전체적인 선이해와 개별 텍스트 및 경험들에 대한 이해 사이에는 하나의 내용적 순환이 성립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해석학적 순환"이다. 이것은 전혀 논리적인 순환이 아닌데, 왜냐하면 보편적인 기획은 개별 경험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는 우리가 낯선 삶의 표현들을 보편적인 것 속에서 파악하는 방식이다. 이해하면서 우리는 타인의 언어적 문자적 표현들에 관계맺는다. 후에 딜타이는 이해를 체험연관에 대한 추체험으로 해석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객관적 정신"과의 연관들 또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법이나 도덕 법칙 같은 객관적 행위로 생성된 결과들이 언급될 수 있겠다. 헤겔과는 달리 딜타이는 객관적 정신을 삶의 경험에 대한 표현으로 보았으며, 더 이상 객관적 세계정신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객관적 정신의 형성은 모두 공동 생활의 창조이다. 여기에는 삶의 형식, 법질서, 사회적 규칙 및 종교와 예술의 형식도 속해 있다.

객관적 정신이 변화가능한 삶의 형식에 의존해 있고 역사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이므로 텍스트에 대한 이해 또한 역사적 성격을 가지며, 이는 우리를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상대주의적 해석으로 이끈다. 사회적 삶에대한 자연과학의 영향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려는 것이 해석학의 경향인데, 왜냐하면 삶의 과정을 분석적으로 토막내는 것은 생명을 상실시키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해석학적 이해는 언제나 자연과학적 설명을 통해 보충되어야 한다. 낯선 체험의 요소들이 고유한 체험 속으로 수용됨으로써 정신과학적 경험은 이해하는 주체에 대해 반응하며, 이로써 낯선 것에 대한 이해는 자기 자신의 변화로 이어진다.

예컨대 예술작품을 이해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체험한다. 이해는 전체적으로 사유하고 느끼고 의지하고 행위하는 타인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경향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분석하는 데서도 효력을 미친다. 딜타이에게는 자연주의 혹은 이상주의와 같은 상이한 세계관들은 상이한 성격유형의 표현이었다. 그 안에서는 이론적인 요소들 뿐 아니라 정서적이고 가치와 실천에 관계된 요소들고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해석학의 과제는 상이한 세계관들을 특정한 성격구조로 해석해내는 것이다. 참과 거짓에 관한 물음은 포기되어야 하며, 이에 대해서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석학은 비판적이고 다양한 철학의 한 방법이 아니며 텍스트와 문자 속에 표현되는 낯선 경험들을 역사적이고 심리학적으로 고찰하는 한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인식론적인, 혹은 도덕적인 이론들은 참과 거짓의 관점에 따라 고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특정한 성격구조 혹은 정서적 과정의 교환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해의 심리학(슈프랑어)과 이해의 사회학(베버)은 이러한 사유단초를 더욱 확장시켜 갔으며, 이는 실존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해의 방법과 설명의 방법을 근본적으로 분리시킨 것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남아 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