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근대 이후0126

 

  바로 이러한 요구에 대해, 본질주의적이고 보편주의적인 “전통” 철학 이론의 개념들을 의문시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퇴짜를 놓는다. 이러한 개념들이 남성적 표상과 인식 관심들을 암암리에 보편화가능한 상수로 탈바꿈 시켜놓는 까닭이다.

  낸시 프레이져와 린다 니콜슨은 이론적으로 정초된 사회비판을 옹호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보편화가능한 정리와 개념들을 료타르 와 같이 후근대적으로 거부하는 데 대해 거리를 둔다.(3장 참조)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남성 지배 사회에 대한 효과적인 비판은 “다양한 방법론과 폭넓은 이론적 조망”을 필요로 하며, “적어도 사회 조직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대한 포괄적이면서 서사적인 설명을 전제로 한다.”1) 그렇지만 그들도 철학적 기초 없는 사회 비판에 힘을 쏟으면서(“철학 없는 사회 비판의 후근대적 페미니스트 패러다임”)2), 합리-, 헤겔-, 마르크스주의적인 보편화 지향을 기각하는 후근대적 페미니즘을 설계한다: “어쨌든 후근대적 페미니즘 이론은 비-보편주의적이다. 그것의 고찰 방식이 문화와 시대를 장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경우, 그것은 보편주의적이기보다는 비교관찰적이고, ‘보편적 법칙’보다는 변화와 충돌에 관심을 쏟는 것일 게다.”3) 심리학자인 캐롤 길리건과 같은 여성 저자들이 여성들 간의 종교-, 문화-, 인종적 차이(“여성들 간의 차이”4))를 무효한 것으로 만들고 이 때문에 이 차이들이 신빙성을 잃게 되었을 때 그러한 비판은 타당성을 갖게 되었다.

  프레이저와 니콜슨의 주된 취약점은 그들이 보편과 특수의 변증법을 감당하지 않고 내던져 버렸다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탄탄한 담론을 구축했던 프랑수와즈 도본느처럼 보편타당한 설명 원리-남성 지배와 남성우월주의-를 상정하면서도 동시에 철학과 사회 과학에서의 보편주의는 거부했던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결코 쉽게 풀리는 것이 아님을 보게 될 것이다(“모델을 통한 사유”를 병렬체로 대체하려 했던 아도르노는 이미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여성 저자들은 적어도 자신들은 보편지향적 가정에 대해서 반성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보편주의의 포기와 다양하게 변주된 특수화 경향이 후근대적 문제상황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두 가지 서로 보충적인 대답이라는 사실은 안나 이트먼의 책 『정치적인 것에 대한 후근대적 재조명』(1994)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인류학적 특수주의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러나 특수와 보편을 터무니없이 연관지으려 한다는 점에서 이트먼은 프레이저와 니콜슨보다 훨씬 더 거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성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이성들(reasons)”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료타르의 미심쩍은 명제에서 출발점을 삼은 그들은 합리주의자, 헤겔주의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역사적 이성과 결별한다: “단수로서의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성이 지배 없는 해방된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거라는 유토피아적 공상은 송두리째 신뢰를 잃었다.”5)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자연 지배, 합리화, 보편주의에 대한 후근대적 저항은 근대에 대한 저항이자 근대와의 절연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트만은 말한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역사적 시대를 선적인 진보로 구성하는 근대를 의심한다.”6)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후근대적 혹은 후기 산업사회적 문제상황의 틀 속에서 사유하려는 페미니스트들과 사회과학자들은 개인의 자율이나, 프롤레타리아나 예술의 진리내용을 통해 계급적 모순을 극복하는 것 따위의 전통적 논변모형을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후근대적 문제상황에 대한 이트먼의 대답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이 대답을 여덟 개의 테제로 요약해 제시한다. 간략히 소개해 보자면 이렇다: 1. 우리에게 전승된 근대적이고 모더니즘적인 전통에 대한 해체(탈구성적?)적 입장. 2. 이론을 보편 넘어서는 것으로 만드는 기술을 통해 불가피한 이론의 보편화 경향에 대하여 소수자의 목소리를 관철시키는 것. 3. 경계는 다양한 것들을 가르기도 하지만 또한 묶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에 대한 이분적 구성이 임의적이고 양가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4. 상대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관점주의. 5. 이를 보충하는 것으로서, 이론화란 역사적으로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6. 이론가들은 제도화된 지적 권위와 실재적이고 잠재적인 공공성에 대한 관점을 가지지만, 그 자신이 특수하고도 우연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7. 주체성의 강조와 더불어 8. 언어가 물질적이고 실제적이면서 생산적인 체계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우리는 거듭해서 바우만을 떠올리게 되는 바, 그는 이론적 입장으로는 해결불가능한 부분성과 문화적 관점의 이질성을 강조했다. 이트만의 테제는 근대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차이에 대한 스티븐 베스트의 규정과 일치하는 듯 보인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근대적 견해와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면서 통약불가능성과 파편화를 해방의 원리로 격상시킨다.”7) 페미니스트들은 이 해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들은 “표상의 정치학”8)에 대한 요구를 출발점으로 잡고 있다. 현실에 대한 담론적 서술에 대한 물음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학: "무엇 때문에 (특정한) 서술들이 관철되는 것인가? 현실에 대해 서술하는 권위는 누가 갖는 것인가?  다르게 질문해 보자면, 그러한 서술들이 관철되게 하기 위해 침묵을 강요받는 자는 누구인가?“9) 이러한 맥락에서 이트먼은 포퍼가 제안했던, 과학자 집단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진술에 대한 비판적 검증이나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하버마스의 노력은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합의는, 불일치를 불러온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박탈당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10)

  여기서 다시금 상호주관적 검증가능성과 보편화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이고 합리주의적이며(포퍼) 해석학적인(하버마스) 요구는 철저한 특수화를 통해 의심받게 된다. 이러한 의심은 한편으로는 설득력이 있는데, 왜냐하면 포퍼와 하버마스는 (물론 완전히 다른 근거에서) 상호주관성이라는 추상적 기준에서 출발하며, 주체성의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들을 괄호쳐 버리기 때문이다.11) 그러나 그것은 문제상황을 거칠게 단순화시킨 것인데, 형식논리학이 공통의 이해를 위한 토대 역할을 한다는 것과 최종적 메타언어로서의 일상어가 이데올로기적 특수주의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트먼은 숙고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 그것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12)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간의 언어-담론적 대립은 사회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철학적인 문제이며, 또한 이 책의 거의 모든 장에서 다루어질 것이므로, 여기서는 그 문제가 안나 이트먼의 논변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하자. 이 대립은 이트먼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그녀가 여성들뿐 아니라 인종적, 문화적인 소수자들 역시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는 정치-, 과학-, 철학적 합의로부터 배제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인종-, 문화적 차이에 대한 지각에 토대를 둔 저항적 사유, 잘못된(즉, 합리주의, 헤겔주의,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보편화로 이 차이들을 획일화시키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하는 저항적 사유에 진력한다. 이에 대하여 그녀는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경험을 근거로 제시한다: “이렇게 억압받는 집단의 출발점은 관점은 저마다 특수하다는 것이다. 마오리족, 파케하족 등등은 저마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어떤 특권적인 보편적 입장이나 신의 시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13)

  그것이 정말로 올바른 인식이라 해도, 유럽과 미국, 일본의 학자들 및 생태학자들(그린피스 활동가들) 등의 이질적인 집단들이 마오리족, 폴리네시아인들과 핵실험의 유해성에 대하여 정치적인 층위에서 타협을 보는 데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폴리네시아와 마오리족의 물리학자나 정보전문가들이 과학의 층위에서 유럽이나 한국의 물리학자, 정보전문가들과 소통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주기적으로 그런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문화적, 언어적, 이데올로기적 인식틀의 역할이 중요하며(아마도 포퍼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동시에 그 인식틀이 의사소통에 심각한 방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때때로 합의에 이르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역에서의 소통이 미리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이에 대해서는 마지막 장에서 다룰 예정이다.)

  이트먼의 가장 큰 문제는 다양한 담론적 층위들-일상어, 정치, 과학, 사회과학 등-을 구별하지 않고, 결국에는 극단적 특수주의로 귀결될 관점주의를 강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수주의가, 이트먼이 불가피한 것이라 인식한 보편화 경향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지점에서 그녀는 이미 낸시 프레이저와 린다 니콜슨에게서 가시화된 페미니즘 논변의 취약점을 반복해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 지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수화 경향을 전반적으로 비판한『후근대적 정치학을 넘어서』(1994)를 쓴 호니 펀 하버에게서도 분명히 볼 수 있다. 차이를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여성의 특수성이나 문화의 이질성에만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보기에 사회적 연대성과 주체성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여성들을 통합하는 여성운동은 이 두 요소를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들이 없이는 “대립적 정치학”14)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이러한 논변을 듣고 보면, 정치적 행위와 주체의 형성을 가능케 하기 위해 그녀가 언어의 보편적 측면에 대하여 숙고하며, 이트먼과 같은 페미니스트들에 반하여 차이들을 개별적으로 -체계적이지 않게-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녀는 (해체론 시대에)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까지 한다: “구조를 산출하는 것은 언어의 속성이므로, 차이에 대한 억압(repression of difference)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사실이다.”15) 이를 보면 사회비판과 저항적 행위는 전형적인 보편개념으로서의 진리개념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진리에 대한 추구 없이는 비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3장과 4장 참조.)

  정당하게 비판된 특수주의라 해도 극단적인 차이화-호니 펀 하버가 올바르게 보았듯이-를 통해서, 혹은 특수주의로 인해 야기된, 차이화의 배면이기도 한 무차별성-그녀는 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을 통해서 사회적 연대성과 페미니즘적 주체성을 용해시킬 수도 있다. 모든 사회집단이 자신들의 일회성을 노출시킴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좌절된 곳에서는 극단적인 다원주의 속에서 여러 견해와 입장들이 서로 교환가능해지고 무차별한 것이 되어버린다: “기껏해야 그것들은 미국에서의 ”민족지적 식당“처럼 일종의 취미처럼 향유되거나, 최악의 경우 폭력 사태를 빚을 수도 있다. 투렌은 이미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암시한 적이 있는데, 다문화주의는 분리와 인종차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chargé de ségrégation et de racisme").16)

  그렇다면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린다 허천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 용어를 이데올로기로 만들거나 세계관적 입장으로 실체화시키는 것으로는 파악이 안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후근대적 사유와 결합가능한 것도 아니요, 몇몇 비판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러한 사유의 한 사례도 아니다. 잘된 경우, 그것들은 (남성적)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끌고 있는 행로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힘(powerful force)을 공히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17) 그렇다. 하나의 특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러 이질적인 페미니즘들이 있다. 이것들은 신화적이고 남성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후근대적 문제상황의 틀 속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이들의 물음과 답이 사회학자들의 그것과 본질적인 점에서 중첩된다는 사실(근대의 보편주의에 대한 답으로서의 특수주의, 주체구성과 사회비판에 대한 관점에서 특수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후근대적 문제상황”이라는 표현이 유효하다는 추측을 확증해준다. 다음 절에서는 F. H. 텐브루크, 다니엘 벨, 아미타이 에치오니와 같은 다소 보수적인 사회학자들이 이와 유사한 물음을 제기하며, 많은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서로 비교가능한 대답들을 내어놓고 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다.


3. 보수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미 하버마스는 이 물음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을 전후 사회의 보수적이고 계몽에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규정함으로써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물음은 거듭해서 숙고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에 대한 보수적 입장의 답변이 사회비판(바우만), 페미니즘(이트먼), 마르크스주의(오닐)의 그것과 경쟁하거나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질적인 이데올로기로 보아 보수주의와 같은 것으로 낙인찍거나(하버마스) “남성적 사유”(허천)과 동일시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보다 더 흥미로우면서도 많은 점에서 이론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적-이론적 관점들 속에서 유사한 문제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인식이다.

  물론 보수적 사회학(정치학)은 후근대적 문제상황 내부에서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시장과 이데올로기 간의 긴장 관계 속에 놓여 있는 특수하고도 복잡한 문제군을 형성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나 몇 몇 페미니스트들 못지않게, 보수주의에 경도된 사회학자들도 모든 생활영역(의료, 스포츠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이 간단없이 시장에 포섭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배리 스마트와 다른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정보매체와 소통매체의 상업화”18)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보드리야르에 의지하여 교환가치가 모든 사용가치를 뒤덮어 버리는 후근대적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 프레드릭 제임슨의 견해에 동의의 표시를 해줄지도 모른다.19)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가령, 부분적으로는 알프레트 베버의 사회학을 이데올로기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코슬로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제 규범들은 문화의 바깥에서 움직인다...”20) 이어서 말하기를 “경제-기술적 패러다임은 인간의 실천적 활동에 들어있는 문화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21)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사회학자들이 근대화 및 시장의 확대가 동반하는 가치분열을 새로운 가치규정, 즉 종교적, 도덕적인 이데올로기를 쇄신함으로써 상쇄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코슬로스키나 에치오니와는 반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프리드리히 텐브루크는 바우만, 투렌, 이트먼 들과 비슷한 관점으로 근대의 전개 과정에 대해 치밀한 논증을 펼친다. 그가 보기에 계몽주의는 보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포교적인 것이었다(마우만이나 페미니스트들이라면 보편주의와 제국주의라 말할 것이다): “오늘의 사회과학자들이 근대 세속주의의 사회적 기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것이 계몽주의와 함께 태어나 19세기의 과학에 대한 신앙Wissenschaftsreligion 속에서 체계화된 보편주의적 진리개념을 전파시킨 데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22)

  텐브루크에 따르면(바우만과 투렌에게서도 마찬가지인데)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보편 교회가 되는 것”23)을 목표로 삼았던 공산주의도 이러한 믿음의 영역에 포섭되어 있었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바, 후근대적 문제상황 안에서는 무정부주의자나 실존주의자들이 떠받들었던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이 아니라, 칼 카우츠키와 같은 이론가 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가했던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경제학적이고 국가주의적 해석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러한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계몽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특히 루소의 계몽 비판이나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기 비판을 고려하여 형이상학적 보편주의로 취급하는 대신, 다만 발견술적인 이론으로 이해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발견술적 이론과는 달리, 비판적이고 대화적인 이론은 진리를 선포하는 대신 진리의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다음 절과 3장을 참조.).

  물론 텐브루크가 소묘한 대안은 이와는 다른 쪽을 향하는데, 이 방향이 후근대적 문제상황 전반에 걸쳐 전형적인 것이라 할 만하다. 과학이 스스로 행한 탈주술화에 대한 그의 진단에 따르면(“과학의 합법적인 권력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다.”)24) 다만 계몽주의적 보편주의에 대한 거부만이 의문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거부는, 바우만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서처럼, 특수주의로 귀착되는데, 텐브루크는 이 특수주의 속에서 새로운 발전경향을 간취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대안을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언젠가 보편적 진리에 대한 사상이 세계 속에 진입했었다면, 마침내 그것은 다시 세계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진리는 개별적 진술들의 불변하는 실제적 사실적 옳음의 자리로 만족해야 할 처지에 있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에 걸쳐 보편적 진리기준에는 걸맞지 않았지만 확실한 성공을 거둔 이론들이 끊임없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다른 신앙에 대해 물어볼 필요 없이 그 신앙에만 적합하도록 맞춰진 종교적 분파나 의식뿐 아니라 새로운 청년문화를 통해서도 국지적인 특징들이 강력하게 몰아치게 되었다. (...)”25) 이 부분을 상세히 인용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인데, 그것은 텐브루크가 불과 몇 개의 문장만으로 후근대적 시대를 진단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측면들을 압축적으로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는 과학은 아무런 가치도 증명할 수 없다는 인식을 이끌어낸다. 왜냐하면 “자유와 합리성의 이중적 보편주의 안에서는 아무런 토대도 발견될 수 없기 때문이다.”26) 텐브루크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대안은 다음과 같다: 유효한 것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치로 되돌아갈 것. “가치의 위계서열은 합리적 증명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가치는 유용하게 쓰이거나 경험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만 서열이 정해지고 타당성이 입증된다.”27) 일상의 문화적 경험으로 회귀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합리적 검증(한스 알버트가 아주 적절하고 타당하게 제안한 바 있는)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가령 “순수 인종”과 같은 가치가 “자유”, “정의”, “인간성”과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된다면? 이러한 가치들의 보편화 가능성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일인 것일까?28)

  페터 코슬로스키의 저작들은 가치의 문제를 이데올로기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미심쩍은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코슬로스키는 한편으로 계몽의 보편주의와 합리주의를 물리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우만, 료타르, 벨쉬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급진적 다원주의 또한 거절한다. 급진적 다원주의 안에서 새로운 다신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제 안에 헤겔과 마르크스 철학의 전체주의가 잠복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이 가진 위험성은 그들이 후근대적 지식을 방만한 다신교적 자의성으로 타락시키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29)  이전 세대의 샤토브리앙과 마찬가지로, 코슬로스키에게 중요한 것은 기독교를 후근대적 낭만화함으로써 이러한 다신교를 극복하는 것이었다.30)

  실제로 그는 이원적이고 독백적이며, 신화적 행위체에 의해 지배되는 담론의 틀 안에서 계몽주의에 대한 대항카드로서 낭만주의를 이용하고 있다: “산업화가 진척된 이후 축적되어가는 근대의 문제들과 근대화가 몰고 오는 사회적 문제들의 성격을 환원주의적 리얼리스트나 계몽주의자들보다 훨씬 날카롭게 간파해 내는 낭만주의자들이말로 오늘날 진정한 리얼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31) 그러나 여기서의 “리얼리스트”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혹시 생각이 서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도.

  이러한 담론이 귀착되는 지점은 코슬로스키의 걸음이 향하는 곳인데, 그곳은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서명”32)을 가진 포스트모더니즘이 중세와 연결되는 지점이다. 샤토브리앙이나 노발리스를 흡족케 할 포스트모더니즘의 낭만화가 아니라 하버마스의 근대 기획이 코슬로스키에게는 반동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흘러간 옛 것, 헤겔 좌파의 사상을 삶 속에서 보존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33) 이에 반해 낭만주의와 중세는 시대의 흐름에 딱 맞아 떨어진다.

  이러한 논변을 두고 보면 페터 코슬로스키가 바우만, 료타르, 벨쉬, 혹은 이트먼 등이 주장하는 다원주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다양성은 우리 문화의 의미가 아니라 더 중요한 목표를 실현했을 때 얻게 되는 결과다.”34) 더 높은 목표란 사회를 이데올로기나 종교적으로 건전하게 만드는 것인 듯하다. 이 건전화는 여기서 그려본 지형도 속에서 시장에 제약된 다원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독일에서 기독교는 건전한 종교이다. 기독교 그 자체, 어떤 고백과도 같은 기독교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기독교.”35)

  근대 유럽 혹은 독일의 문화가 가진 헬레니즘적 기독교의 성격은 의문시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의심 받아야 할 것은 특정한 규범을 강제하고 이분법과 신화적 행위체를 설정하는 독백적 담론이다: “‘관계가 주체와 자아를 규정한다’는 근대적 공리에 맞서 후근대의 문화는 ‘자아는 분리불가능한 근원적 실체다’라는 자기-해석을 정초한다.”36)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이 명제의 이상주의(관념론?)가 아니라, 기능주의적 근대와 기독교적 포스트모더니즘 간에 설정된 이원주의와 “후근대적 문화”라는 신비적 행위체이다. 코슬로스키는 이 행위체를 실제로 행위하는 심급인 양 다룬다.

  텐브루크과는 반대로 근대와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치게 이데올로기화하고 텐브루크의 주의 깊은 논변을 이데올로기적 변론으로 대체해 버린 까닭에 코슬로스키는 근대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해 주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논의는 흥미로운 데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논의가 -다른 사회학적 담론들과 마찬가지로- 후근대적 문제상황에 대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잘 알려진 후근대적 주요개념들, 가령 사회 운동(투렌, 베크)과 자기발견과 같은 개념들을 취입한다: “새로운 사회 운동은 근대의 위기와 그로 인한 문화적 맥락성의 상실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다.”37) 코슬로스키의 “자기의 재발견”이나 “자기발견의 과제”38)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후기근대적”(late modern) 사회에 대한 기든스의 설명을 떠올리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극단적 다원주의와 특수주의는 언제든지 무차별성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그의 인식이 가지는 중요성은 적지 않다: “한 사회 안에서의 모든 삶의 형식과 그에 대한 평가가 똑같은 타당성을 가진다면, 관용이 아니라 문화적인 물음에 대한 무관심성만이 지배하게 된다.”39) 그는 또한, 후근대적 사회는 보수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관용과 무관심 사이를 진자운동하는 집단적 휩쓸림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5절 참조.)

  시장 질서에 묶인 무관심성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코슬로스키는 경제사회가 종교적 윤리적으로 새로워져야 함을 역설한다. 후근대적 시대의 “더 큰 에토스의 공유”40)의 필요성을 주창하면서 “경제 윤리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반대하여 경제와 문화 간에 그리고 노동세계와 생활세계 간에 새로운 통일을 이룩해내려는 시도이다.”41)

  이러한 시도는 두 명의 미국 사회학자, 다니엘 벨과 아미타이 에치오니의 기획을 생각나게 한다. 이들은 서로 확연히 구별되긴 하지만, 시장과 소비 메커니즘의 폭발적 팽창은 오로지 종교적 윤리적 쇄신을 통해서 제어할 수 있다는 견해를 코슬로스키와 더불어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시장법칙이 한편으로는 무차별성의 확산을 가속화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무차별성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반응, 예컨대 페미니즘이나 생태학의 구호 활동, 종교적 쇄신이나 윤리적 가치에 대한 재고(몇 해 전 필립스가 언급했던 “도덕적 재무장”)와 같은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다니엘 벨의 비판은 무차별성과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진행되는 후근대적 변증법에 어떤 징후의 의미를 갖는데, 만개한 자본주의적 질서는 이 질서 자체를 가능케 했던 생각들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변신한다. 그의 유명한 책 『후기 산업사회』의 핵심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세속적 금욕”이 합리적 행위와 경제적 성공 추구를 위한 동기가 된다는 베버의 테제이다. 벨은 이 테제가 전통 산업사회에 알맞은 것이며, 그 기본전제들이 전후 시기(60년대) 새로운 후기 산업사회의 질서에 들어와서는 적합성을 잃은 공허한 전제들이 되었다고 본다. 자본주의 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안전장치로서의 세속적 금욕은 후기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중심점이 이동하면서 눈에 띄게 헐거워졌다.

  이러한 발전을 이루어낸 것으로는 대략 5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1. 상품 생산으로부터 서비스 생산부문으로의 이동. 2. 프롤레타리아의 쇠락과 이에 상응하는, 자유로운 전문 기술자 직업의 상승. 3. 사회개혁 추진과 사회정치적 프로그램 입안을 위한 과학의 중요성 증대. 4. 기술적 진보를 조종함으로써 미래를 설계하는 것. 5. 사이버네틱스나 정보기술과 같은 새로운 “지식 기술” 혹은 “조직된 복잡성”42)의 생성.

  이 책에 제시된 맥락에서 보자면 과학, 기술, 기술관료주의의 발전에 대한 벨의 설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상품 생산으로서의 생산에 중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소비와 판매에 몰두하는 새로운 사회계층을 생성시킨 두 가지 주요지점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중 하나가 사회를 경제-기술적인 영역과 문화적인 영역으로 구획지은 것이다. 벨에 따르면, 전통 산업사회는 문화, 사람들의 성향을 틀짓는 구조(Charakterstruktur), 그리고 경제가 통합된 체계인 반면(물론 실제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후기 산업사회는 소비와 오락의 쾌락주의적 세계로 나타난다.

  이미 암시된 바, 벨의 설명은 변증법적이고 반어적인 방식으로 슬쩍 피해나간다: “운명의 아이러니는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통해 프로테스탄트적 윤리를 파괴하고 그 자리를 쾌락주의적 생활방식으로 대체하려 애쓰고 있는 자본주의가 이 모든 것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는 점이다.”43) 이러한 발전은 사회의 분열을 몰고 온다: “왜냐하면 생산과 노동 조직의 측면에서 보면 체계는 여전히 근면, 성실, 자기 관리, 헌신을 요구하지만, 소비 영역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carpe diem)는 태도, 즉 낭비, 허풍, 맹목적으로 재미만을 쫓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다.”44) 이 두 영역에는 물론 “초월적 윤리”가 공통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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