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고종석

루브르 거리 33번지의 낡은 아타리 컴퓨터(남한에서 만들어진), 랑뷔토 거리의(아니, 주르 거리였던가?) 아일랜드 맥줏집 제임스 조이스, 브란덴부르크 문을 관통하며 나 자신 흥분했던 베를린의 반인종주의 시위, 로마 테르미니 역 광장 위의 하늘을 까맣게 만들었던 새떼, 크로아티아-헝가리 국경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말 그대로 춥고 배고팠던) 무박이일, 안트베르펜의 슬픈 창녀촌, 알함브라 궁전에서 발견한 중세 아랍인의 거대한 욕망(권력에 대한 욕망, 초월과 불멸에 대한 욕망, 마침내는 미에 대한 욕망)과 그라나다 왕국의 영광과 치욕, 정말로 고립돼 있는 것은 이슬람교도가 아니라 세르비아인이라던 <<탄유그 통신>> 여기자의 넋두리, 회의보다는 만찬과 텔레비전 카메라를 더 좋아하던 유럽의회 의원들, 한 동료의 젊은 죽음, 움베르토 에코의 매끈한 프랑스어와 밀로라드 파비치의 더듬는 프랑스어, 암스테르담 역전에서의 발광에 가까웠던 집단 술주정, 리스본의 카페에서 혼자 듣던 파두의 그 절절한 사무침, 로르카의 시를 읽으며 상상하던 것과는 딴판으로 볼품없던 과달키비르 강,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자살과 비외른 엥홀름의 사임, 무엇보다도 92-93 <유럽의 기자들> 사이에서 피어난 그 잔정들, 내 육체가 정말로 그 모든 것들을 통과했던 것일까?

그 아홉달이 마치 꿈결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 세 계절을 제대로, 그러니까 공정하게, 되살려놓을 자신이 없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이고, 시간의 마모력이란 얼마나 당찬 것인가? 시간은 대체로, 나쁜 기억을 풍화시키고, 좋은 기억을 터무니 없이 미화시킨다. (하기야 시간의 그런 불공평한 처사 때문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9, 10)

이 자리를 빌려, 내가 사랑하게 된 무명의 저널리스트들 얘기를 조금 더 해도 좋을까? 왜냐하면 그들은 남들의 삶을 기록하는 자들이므로. 자신의 삶의 편린이나마 기록될 특혜를 누릴 가능성이 그들에겐 별로 없으므로. (47)

그 당시 나는, 고백하기 부끄러운 애기지만, 마치 재혼한 신랑처럼, 조금은 들떠 있었고, 조금은 불안했다. 그녀도 비슷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라고 나는 짐작한다, 라기 보다는 기대한다. (83)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날 땐 약간의 감회가 어리기도 했다. 나는 그 돌문을 손톱으로 가볍게 긁으며 통과했다. 내 표정이 좀 감상적으로 보였는지, 한기연 씨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문 앞에 서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왠지 촌스러운 것 같아서 사양했다. 촌스러움을 경멸하는 나의 그 태도가 사실은 가장 촌스러운 점이었지만, 나는 촌스러움에 대한 바로 그 경멸 때문에, 유럽에서 거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나는 다만 내가  스친 어떤 풍경들, 어떤 상황들을 내 살 어느 곳엔가 새겨놓기 위해서 때때로 긴장했을 뿐이었다. (107)

문장은 거칠지만 논리는 정연해라는 말은 거친 문장밖에 쓸 수 없는 사람들의 마스터베이션이거나 남들이 그들에게 건네는 위로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다. 세련되고 정확한 문장들이 정연한 논리로 이어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거친 문장, 악문에다가 정연한 논리를 담아낼 수는 없다. 사람들은 쓸 수 있는 것만큼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4)

<내 생각으로는, 작가가 자기 나라에 대해 어떤 사심도 가져서는 안 된다. 자신의 종교 공동체, 자신의 정치적 벗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한 것은 하인리히 뵐이었다. 1976년 10월 <<리르>>지와의 인터뷰에서였다. <작가는 자기 동포나 자기 동시대인들에 대한 사심없는 판관이 아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또는 자기 동포들이 행한 모든 악의 공범이다>라고 말한 것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었다. 1976년 스톡홀름에서 한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였다. 언뜻 듣기에 서로 상반돼 보이는 이 독일인과 러시아인의 발언은 그러나 결국 같은 소리다. 이 두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요컨대 이랬다: 작가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공적 책임이 있다. (271)

아니, 기자라는 직업이 아름답고 명확한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의 보증처럼 돼 있는 프랑스 저널리즘의 기준으로 본다면 사실 그 둘을 특별히 진짜 기자로 볼 수는 없었다. 그들의 영어는 대단히 수다스러웠으나 그 영어로 씌어진 그들의 기사는 때때로 볼품이 없었다. 그들의 프랑스어는 자주 비틀거렸고, 그 프랑스어로 씌어진 그들의 기사는 늘상 더욱 볼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짜 기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그 삶의 세목에 대한, 마침내는 죽음에 대한, 그들의 집요한 관심에 있었다. (279)

10년 동안 신문사 밥을 먹으면서 전혀 배운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신문 기자는 얼마나 뻔뻔하고, 거만하고, 위선적이고, 부패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미다시니, 하리꼬미니, 나와바리니 하는 일본말들도 배웠다. 파리에 와서는 그런 신문용어들을 프랑스어로 뭐라고 하는지도 배웠다. 예컨대 못 팔고 쓰레기통에 처박는 신문들을 부이용이라고 한다는 것을, 정례적으로 쓰는 세시 기사를 마로니에라고 한다는 것을, 취재를 하지 않고 상상력을 통해 실감나는 기사를 창조해 내는 것을 비도네라고 한다는 것을. (286,7)

그러나, 그러나, 우리 삶의 일부가, 아니 상당 부분이 우리 유전자 안에 예비돼 있는 것은 사실 아닐까? 사회생물학과 싸우기 위해서라도 그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사회라도, 아무리 이상적인 사회라도, 그것이 하나의 체계인 한, 가치의 사다리에 따라 배분되는 역할의 차이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유전자의 그 힘에 대해 좀더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절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아니, 유전자만이 자연적 불평등의 연원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무지막지한 힘의 극히 부분적인 외양에 불과하다. 시간과 공간의 좌표들에서  우리가 <우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들의 그 불평등, 그 자연적 불평등에 왜 우리는 눈감고 있는가? 우리의 개인적 삶은, 교차돼 있는 인과적 경로들의 특별한 다중성의 산물이다라는, 너무나 지당한 말로 우리는 때로 운명을 수납하고, 때로 운명의 미세항을 바꾸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것일까?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결국 인간이란, 얼마나 하잘것없는 존재인가?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삶 순간 순간에서의 선택들이 일회적인 것이고, 그것들을 다른 선택들과 물질적으로 비교해 볼 수가 없다면, 자유의지란 도대체 뭘까? 그런 게 있기나 한 것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292)

세시 풍속이나 기념일들 일반이 그렇듯이 특정한 날짜라는 게 사실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1789년 7월 14일이나 1945년 8월 15일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구의 공전 주기를 기준으로 삼아 특정한 날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발명해 낸 부질없는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그러니까  선사 시대에도 생일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발명이 그렇듯이, 생일의 발명도 그것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면 사람의 삶을 구속한다. 우리들의 한 달에 몇 차례씩 동료의 집을 방문해 밤새 먹고 마시고 떠들어야 했던 것도 그런 구속의 하나이다. 대개는 아주 유쾌한 구속이었지만. 그런 유쾌한 구속 가운데 하나가 지금 웬디의 집에서 펼쳐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294)

- 나도 데보라의 말에 동의해. 호메이니가 바랐던 건 쿤데라의 말대로 정말 파뉘르즈가 더 이상 웃기지 않게 되는 날이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파뉘르즈가 뭐니?
-라블레의 소설<<팡타그뤼엘>>에 나오는 인물이야. 거인왕 팡타그뤼엘의 신하이고 친구지. 라블레는 그 소설 속에서 당대 사회에 대한 풍자를 파뉘르즈의 엉뚱하고 기발한, 그러니까 웃기는 언행들을 통해 시도했어. 라블레는 웃음이야말로 인간의 특성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웃음의 유익함이나 웃음을 통한 계몽의 가능성을 신뢰한 작가야. 그래서 사회 개혁 의지를 파뉘르즈의 엉뚱함을 통해 표명했던 거지. 그러니까 파뉘르즈가 더 이상 웃기지 않게 될 날이란, 근엄함이 희극적 상상력을, 나아가 문학적 상상력을 고갈시키는 날, 흔히 라블레로부터 시작됐다고 인정되는 소설 장르가 종말을 고하는 날을 뜻하는 거지.
-와, 너 굉장히 유식하다.
-그럼 넌 하늘 아래 페치야가 읽지 않은 책이 있는 줄 알았니, 잉그리드?
-입 닥쳐, 사랑스러운 인철.
-그러고 보니, 호메이니는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헤 신부 같은 사람이군.
-그래, 정말 그렇구나.
-그래도 난 호메이니를 존경해. 그는 미국과 샤에 맞서 일생을 싸웠구, 결국 이겼어.
-그래, 난 널 이해해. 그런데 쿤데라는 널 이해 못할 거야. 그가 보기엔 우화나 해학은 소설의 기본적 문법이거든. 호메이니의 행위는 소설가와 독자 사이의 암묵적 계약도 무르는 무지막지한 짓이라는 거지.
-그 암묵적 계약이 뭔데?
-말하자면,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정지된 영역이라는 거지.
-그런 생각은 아주 위험스러운 가치 상대주의로 이어질 수 있겠는데.
-쿤데라는 <도덕적 판단이 정지된 영역>이라는 말로 소설 장르의 몰도덕성을 얘기하고 있는 건 아냐. 오히려 그것 자체가 소설의 도덕이라는 거지. 단숨에 모든 걸 심판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고질적 습성에 반대하는 도덕, 이해하기도 전에, 그리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만사와 만인을 심판하는 그 나쁜 습성에 반대하는 도덕이라는 거야.
-글쎄, 그럴 듯하기도 하고, 알 수 없기도 하고 그렇군.
-쿤데라는 루시디의 상황을 근대 사회에 대한 테오크라시의 공격으로 보고 있어. 소설이야말로 근대 사회의 가장 대표적 문화 생산물인데, 그걸 신의 이름으로 단죄하려 한다는 거지.
-멋진 문학 강연이야, 페치야.
-넌 알아들었니, 케빈?
-대강은. 요컨대 쿤데라 생각으로는 <<악마의 시>>에 대한 공격이 웃음과 해학에 대한 공격이고, 그러니까 소설에 대한 공격이고, 다시 그러니까 근대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는 거 아냐?
-그렇지.
-쿤데라는 서방 세계의 지배적 문학관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야.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의 대립을 낡은 테오크라시와 근대적 데모크라시라는 그럴 듯하게 조립된 틀 속에다가 박아놓고 있는 거지. 그가 말하는 근대 사회란 결국 유럽 사회 아냐. 그리고 루시디 개인의 인권이 소말리아나 크메르나 보스니아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고 있다면 그것도 대단히 비정상이지. (29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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