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의 제야-고종석

"너무 욕심 부리지 말잔 얘기겠지.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예방 주사라 치고 절망을 학습하자는 거겠지. 절망의 선행 학습!" (엘리아의 제야, 14)

나는 세속의 변두리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가운데가 싫어서가 아니다. 운명이 나를 변두리로 몰아갔다. (엘리아의 제야, 17)

꽃같은 그대 어여쁨도 머지않아 모두 시들고 꽃처럼 홀연히 스러지리라는 걸. (엘리아의 제야, 18)

그러나 ㅊ은 내가 진료비를 내는 것을 자신의 우정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였고, 정확히는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썼고, 나는 그 우정에 편승해서 내 씀씀이를 줄이기로 결정해버렸다. (22, 엘리아의 제야, 22)

그들이 저기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은 건 함 움큼의 기품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엘리아의 제야, 32)

그러고 보니 램도 <제야>라는 수필을 쓴 적이 있다. 그는 거기서 모든 종소리 가운데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것은 묵은 해를 보내는 종소리라고 말했다. 묵은 것을 보내는 것이 내겐 늘 힘들었다. 나는 새것이 겁난다. 새 책이든, 새 얼굴이든, 새집이든, 새 식구든, 새해든. 나도 램 같은 보수주의자인가 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그런 것 같다. <제야>를 썼을 때의 램처럼 나도 마흔 여섯의 이 나이에 이대로 멈춰 있었으면 좋겠다. 플레야드의 내 친구들도 지금보다 더 늙지도 젊어지지도 말고, 더 부자가 되지도 더 가난해 지지도 말고, 정부나 국영 기업체에 들어가지도 말고 지금 이대로였으면 좋겠다. 노는 계속 대통령 당선자로 있고, 디제이는 계속 대통령으로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들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 누이는 영원히 마흔두 살의 미혼녀로, 딸내미는 영원히 스무 살의 학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바로 아까 참에, 주후 2002년 12월 31일 24시에서 멈췄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램이 슬픈 종소리와 함께 묵은 1820년을 보내고 갑자기 기쁜 표정의 변절자가 돼 1821년을 맞았듯, 나도 서른세 번의 슬픈 종소리가 세상에 퍼진 뒤엔 낯빛을 바꾸어 2003년을 맞아야 하리라. (엘리아의 제야, 37)

시간은 현실을 기억 속으로 실어 나른다. 좀더 멋들어지게 말하자. 시간에 의해, 내 몸 바깥의 현실의 물질성은 내 뇌 안에서 관념으로 해체되어 갈무리된다. 그러나 그 기억이라는 관념은 현실을 얼마나 일그러뜨리는 것인지.......(누이 생각, 43)

세상의 모든 겨울이 그렇듯, 그해 겨울도 다사다난했다. 그해 겨울에, 철의 여인 대처가 십일 년 간 앉아 있던 권좌에서 물러났고, 그단스크의 조선 노동자로 잔뼈가 굵은 바웬사가 폴란드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해 겨울에, 서른네 나라의 정상이 파리의 클레베르 거리에 모여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고, 여섯 나라의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이 부다페스트의 인터콘티넨털 호텔에 모여 바르샤바 조약의 해지를 선언했다. 그해 겨울에, 미셸 세르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새 회원이 되었고, 장 루오가 공쿠르 상을 받았다. 그해 겨울에, 알바니아에서 승용차의 사유가 허용되었고, 스페인에서 공산당 지도자 산티아고 카릴료가 정계를 떠났다. 그해 겨울에, 발레리나 마곳 폰테인이 일흔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겨울에, 우애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는 동성애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쇄 살인이 일어나고 있었고, 평화의 도시 라파스에서는 폭탄 테러가 끊일 줄 몰랐다 그해 겨울에, 에릭 플루먼이 자신의 열번째 소설<<라데팡스>>를 출간했고, 카를로스 셈페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평양의 문>>을 탈고했다. 우리는 그런 세상 잡사에 대한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했다. (파두, 99)

내게는 영, 아, 결국 이 말을 해야 하나, 그래 영 천하게 들린다. 천하다는 말은 사실 내게는 금기어다. 남들이 그 말을 하는 것도 듣기 싫고, 나도 되도록 그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천하다는 형용사는 내 출신을, 내 유년기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파두, 108)

여자가 남자에게, 또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겐, 적어도 우리 세대의 한국인들에겐 아직도 너무 버거운 의식이다. 유럽인들이라면 두 단어나 세 단어로 표현해야 할 그 사랑의 고백을 한국인이라면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하고 그저 사랑해, 라고 한 마디 하면 되지만, 그 한 마디는 유럽어의 백 마디보다도 입 밖에 내기가 더 힘들다. 마음속에 갈무리돼 있을 때는 그리도 순결하고 심지어 숭고한 느낌을 주는 그 사랑이라는 한국어는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뱀처럼 징그러운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꼭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데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거나 종이 위에 쓸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 감정을 자기들이 알고 있는 외국어로 표현한다. 대체로 외국어에는, 모국어가 주는 만큼의 구체성 육체성 직접성이 없으므로. 그것은 느끼는 언어가 아니라 이해하는 언어이므로. 자기가 내뱉거나 휘갈긴 말에 대한 자신의 관련성이 엷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러니까 자기 발언에 대한 책임을 덜어주는 느낌을 주는 언어이므로. (파두, 117)

지금 윤리적이라고 보이는 행동이 나중에도 윤리적이라고 판단될까? 갑에게 윤리적인 행동이 을에게도 윤리적이라고 판단될까? 물론 대강의 아우트라인이야 있겠지. 그러나 그건 그야말로 대강일 뿐이야. 그것은 윤리라는 가치판단에서만 그런 건 아니야. 사실 판단도 마찬가지지. 너는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군대를 궤멸시켰다고 생각하니? 너는 이순신이 원균에게 억울하게 모함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너는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여자가 <<겐지 모노가타리>>라는 책을 썼다고 생각하니? 그런 여자가 실존하기는 했을까? 너는 카이사르랑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아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는 오스트리아가 제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독일이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니? 너는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고 생각하니? 너는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1066년에 영국을 침공했다고 생각하니? 너는 카이사르가 죽으면서 '브루투스여, 너마저'라고 말했다고 생각하니? 너는 궁예가 섹스 혐오자였고 연산군이 섹스광이었다고 생각하니?"(파두, 131)

그래 그럴지도 몰라. 네 생각이 옳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그렇지만, 네 생각이, 네가 알고 있는 지식이 다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게 됐을까? 책에서 읽었겠지? 그 책은 어떻게 기록됐을까? 앞의 책들을 베꼈겠지. 그 앞의 책들은 어떻게 씌어졌을까? 누군가가 자신이 들은 말이나 기억을 적었겠지. 그런데 그 기억은 멀쩡한 기억이었을까?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이 사람은 이렇게 얘기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얘기하는데, 한민일보는 이렇게 얘기하고 겨레신문은 저렇게 얘기하는데, 옛날이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수백 년 전, 수천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지금도 전하는 사람에 따라 부풀리고 왜곡하고 뒤틀고 하는 일이 흔한데, 옛날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았을까? (파두, 131,2)

내 기억이 세월의 바람에 휘면서 만들어낸 감정 말이다. (카렌, 183)

그 언어제국주의에 맞서는 가장 효율적인 길은 모든 언어를 쓰는 것이다. 서툴면 서툰 대로, 뒤죽박죽이면 뒤죽박죽인 대로. 그런 식으로 언로에 잡음을 만들어 영어 사용자들의 혼을 빼놓는 것이다. (카렌, 192)

아니, 엄밀히 얘기하면, 우리가 기술할 수 있는 것은 과거 뿐이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는 없다. 그리고 현재란 그것을 기술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모든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다. (카렌, 201,2)

수필적인 사유와 문체로 소설적 장르를 구성하는 방법은 박태원으로부터 최인훈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에 아주 희귀한 것은 아니다. 대체로 지식인으로서의 자질과 현실에 대한 성찰에 자유로운 서술적 문제를 특징으로 한 에세이소설의 전통을 지금 고종석은 다시 되살리고 있는 것이지만, 그의 경우는 앞의 선배 작가들과 좀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태원과 최인훈은 공-사 간의 현재적 상황에 대한 성찰이지만 고종석은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 또한 에세이소설이 자연스럽게 취하는 일인칭적 서술법에서 다른 지식인 소설가들은 화자인 '나'가 박태원이나 최인훈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 해서 그 취의가 별로 달라지지 않을 어떤 보편적인 사유자의 자리에 있지만 고종석의 '나'는 어떤 특정한 개인, 그러니까 이 작품들의 작가 특유의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이 그의 소설을 일본풍의 '사소설'을 연상시키고 있지만, 그의 '사소설'은 일본인다운 내면의 문체로만 흐르는 것도 아니고 갈등의 사적인 심리학으로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개인적인 상황에서는 이 땅에서 서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파두' 혹은 운명이 얽혀 있고 사적인 기억에는 전라도 사람으로서의 분노도 서려 있으며 왜곡된 보수적 신문에 대한 신랄한 비판까지 노출되고 있다. (김병익 해설, 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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