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평생 바깥으로만 떠돈 할아버지 탓에 집안의 생계를 도맡아온 할머니의 푸념 섞인 말마따나 할아버지는 가히 '김태백'이었다. 늘 꿈에 젖어 달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몽상가. 그리고 나중에 밝혀졌다시피 운율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시인. 하지만 그날 내가 본 바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당신이 우리를 데려간 터미널 옆 옹색한 식당보다 초라해 보였다. 쥐색 겨울 양복을 입은 할아버지는 연신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닦았냈다. (14)

그건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너무 골몰했기 때문이었다. 사정이 있어서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수화기를 붙잡고 몇 시간씩 통화하곤 했다. 당연히 안부를 묻거나 숨겨둔 고민을 털어놓는 식의 대화는 아니었다. 우리는 생각나는 이야기라면 그게 무엇이든 모두 들려줬다. 집안 식구에 관한 이야기든, 자신이 겪은 이야기든, 혹은 책이나 영화의 줄거리든, 무엇이라도 괜찮았다. 다만 말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들을 수만 있다면. (...) 결국 나중에는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중독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작부터 그런 식으로 관계를 맺게 되자, 이내 도저히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게 됐다. 이야기를 멈추게 되면, 그러니까 더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진다거나,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더이상 이야기가 하고 싶지 않게 된다면, 우리 둘의 관계는 그 순간 끊어질 것 같았다. (18-19)

세상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냐는 물음에 삼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시간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면 달빛을 받아 하얗게 된 길가의 벚나무들이 오토바이의 둥근 헤드라이트 불빛을 향해 절하듯이 고개를 숙이기 때문에 온 세상이 터널처럼 보인다고. 그 작고 환한 원 속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들어온다고. (25)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보는 것은 그게 제아무리 괴기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를 미치게 만들지는 않아. 하지만 혼자서 새벽 두시의 국도를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다면 바라본 게 그저 평범한 벚나무일지라도 미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런 거야."(27)

깨어나면 꿈이었고 깨어나면 꿈이었고 또 깨어나면 꿈이었다. (...) 그럼에도 정민은 자신이 너무나 생생한 꿈속으로 들어온 까닭에 이제 다시는 이 꿈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28-29)

그러나 해가 저물어도 그 빛은 키 큰 나무 우듬지에 걸려 있듯, 꿈은 끝나도 마음은 오랫동안 그 주위를 서성거릴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런 까닭에 인생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 (...) "世上萬事 一場春夢 돌아보매 無常ㅎ구나"라는 첫 행을 지닌 그 시는, 시작도 끝도 없이 돌리는 대로 다채롭게 형태를 바꾸는 만화경 속의 영상처럼 한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32-33)

그 글은 할아버지가 자기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부엌 아궁이 속에 던져넣을 때, 함께 불태워졌기 때문이다. (34-35)

말이 끊어지면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가자고 할 것 같아 거짓말로라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했다. (41)

나는 고립된 사람들에게 현실이 한순간 흔들리면서 그보다 더 생생한 환상이 나타나는 건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떠들어댔다. 제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현실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므로. (....) 그때, 나는 내가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으므로.(42-430

그리고 마지막으로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며 온갖 이야기를 다 짜내던 나의 마지막 대사인 "결국 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는 건 용기가 없기 때문이야".(44)

그들은 그 '죽음'을 독점하려 했으나 그들 역시 한 시대의 구성원인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 '죽음'과 '상실'과 '몰락'은 동시대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주관적이었다. 그러므로 애당초 선언 따위로 객관화될 수는 없었다. (48)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1991년 5월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었다. (49)

아마도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더이상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없어지게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55)

유대인의 피가 섞인 혼혈 독일인 즉 미슐링(Mischling)으로, 한때 쾰른에서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에 올라탄 적이 있는 헬무트 베르크는 인간이 이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모두 사랑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까닭은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이었다. (...) "... 그때 달달달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것은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이었어. 그게 누구든, 나는 연결되고 싶었어. (68)

그래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소한 이야기라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으며, 모든 이야기는 저마다 한 가지씩 교훈을 지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게 되는 듯 여겨졌다.(81)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수많은 이야기(Story), 또한 그러하므로 이 세상에 그만큼 많은 '나(Self)'가 존재한다는 애절한 신호(Signal). (82)

세 번의 차임벨 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뉴스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 뭔가가 바뀐다는 것, 이윽고 다른 세계의 일들로 넘어간다는 것은 그처럼 반드시 차임벨 소리와 함께 이뤄져야만 할 것 같았다. (...) 그렇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순간, 삶의 예전의 삶과 달라졌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늘 예전과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다름 없으므로 영원한 거처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83-84)

그 두꺼운 책이 자신을 읽어줄, 단 한 사람을 소망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읽을, 단 한 권의 책을 만나기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87)

우리의 공통점은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책을 열심히 읽었던 까닭도 거기에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91)

그건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102)

나는 몇 번이고 여기가 정말 면목동이 맞느냐고 아줌마에게 되묻다가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120)

함께 모여서 외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128)

칼 세이건은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전제를 통해 이 우주가 이처럼 광활한 까닭은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인류가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세상은 온통 읽혀지기를, 들려지기를, 보여지기를 기다리는 것들 천지였다. (143)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150)

동틀 무렵의 희미한 여명 속에서 흐릿한 풍경을 골똘히 바라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할 때는 또한 모든 것이 제가끔 의미를 가진다. (155)

"그렇지, 맞아. 트라벤은 <<트로차>>라는 소설에서 이렇게 썼어.
'누군가 경찰 조서에서, 재판의 판결문에서, 감옥의 수인 명단에서 자신의 본명을 발견한다면, 그는 잘 알려진 이름 대신에 가명으로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조서에서, 판결문에서, 수인 명단에서 발견되는 그 이름이란 바로 죽음의 이름이지. ....망명이란 이름으로부터 도망치는 일...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첫번째 단계는 자신의 이름을 부정하는 일이야...."(163-164)

내일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절망스러운 일인지 나는 깨달았다. (...) '거품과도 같은 환각의 시대' '시네마스코프처럼 펼쳐진 환각' '파편의 일생'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170)

페르시아 물라 나스루딘 바늘(173)

서점에서 사회과학서적을 접하면서, 또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의 일생은 여러 차례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198)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 털어놓을수록 그의 회고담은 더욱더 정교해졌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마음 속에 연민과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07)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의 세계란? 패배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일 뿐, 운명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니 꿈처럼 지나가는 비극의 삶에서 살아남겠다면 먼저 웃으라는, 쓸쓸한 목관과 유머러스한 현악의 전언. (220)

"...음악은 본질적으로 역설이지. 침묵을 이겨내기 위해 태어나지만, 결국 또다른 침묵으로 끝날 뿐이니까. 삶이 그런 것처럼."(227)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이 세상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레이도 알 것 같았다.(244)

세계는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돼 있었다. (296)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감정들, 예를 들어 증오심이나 복수심, 혹은 공명심 등을 사랑으로 오인한 것만은 분명했다. (315)

"그게 뭔가요? 얘기해보세요. 식당까지 돌아가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320)

히로뽕은 필로폰(Philopon), 즉 '일을 사랑한다'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한 상표명을 붙이고 대일본제약이 1940년부터 시판한 각성제로, 약물로서의 이름은 메스암페타민이다. (323)

폭력에 관한 한 제비뽑기를 하는 사회인 거죠. (329)

그건 필연을 가장한 체제에서 자발적으로 우연한 존재가 되겠다는 뜻이기도 해요. (330)

나는 저 달이 존재하는 한, 내 존재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우리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 이야기는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338)

조우가 일어날 때는 섭동을 통해 서로간에 에너지의 주고받음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진행경로와 속도가 변하게 된다. 그게 바로 섭동이다. (352)

"...모스크바는 베를린보다는 훨씬 더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건 혹독한 추위 때문이었지. 벤야민은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모여 있다는 사실을 관찰하거든. 일기에 보면 나오지."(369)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374)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케이스, 군데군데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 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 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378)

우리는 인생을 두 번 사니까. 처음에는 실제로, 그 다음에는 회고담으로. 처음에는 어설프게, 그 다음에는 논리적으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삶이란 모두 이 두번째 회고담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384)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 입체 누드사진 같은 사물들일 뿐이다.(385)

정신을 차리면 다시 거기는 종로 어딘가였습니다. 빠져나갈 방법도, 살아남을 길도 하나도 없는 거리였지요. 죽을 수밖에 없는 거리. 그렇게 얼마나 걸어다녔을까?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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