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질서-김태환
- 생활정보
- 2007. 10. 25. 10:27
다소 도식적으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감각적 정서적 개별적 구체적 질서와 개념적 지적 보편적 추상적 질서 사이의 차이다. (20)
문제는 오히려 문학작품과 문학비평이 근본적으로 상이한 질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쉽게 간과되는 데서 발생한다. (21)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즉 소설이라는 몸에 들어오게 되면 성찰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소설의 바깥에서는 사람들은 확인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확신합니다. 경찰이건, 철학자이건, 수위이건 다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놀이와 가설의 영역이거든요."(쿤데라, 소설의 기술, 95에서 인용)
소설은 무언가를 확인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 소설 속에서는 심지어 추상적이고 논증적인 사유조차도 우연과 일회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일종의 연기, 퍼포먼스라는 것. (22,3)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문학 언어와 비평 언어를 다른 차원에 배치하는 것이다. 즉 문학 언어를 비평 언어로 번역하는 대신, 문학 언어를 관찰하고 기술하기 위해 비평 언어를 동원한다는 것. 이는 곧 언어학에서 통용되는 대상언어와 메타언어(대상언어를 기술하는 언어)의 구별을 비평에 도입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언어학적 방법론을 비평에 적용했던 구조주의 비평의 입장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24)
빈약한 이론적 토대를 보강해줄 수 있는 것은 이를테면 제라르 주네트의 반복서술과 같은 개념이다. 그것은 서사적이지 않은 한유주 소설의 문체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이론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제라르 주네트가 <이야기 담화>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여러 차례 반복된 사건들을 한 번에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반복서술("나는 오랫동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이고, 한 번 일어난 일을 한 차례 이야기하는 것은 일회서술("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이다. (28)
소설에서 반복서술의 비중이 커지고 일회서술이 줄어들면, 서사성은 약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답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그래서 반복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쇄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은 일회서술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29)
우리는 이제 '한유주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대신 '한유주는 왜 세계를 반복적 과정으로 서술하는가?' "이러한 반복서술을 가능하게 하는 서술자의 위치는 어디인가?' 등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30)
이론을 현실과 문학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이론가는 자신의 이론이 문학작품 속에 묘사된 세계에 잘 적용되면 될수록, 그 작품의 창조자를 정확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더 높이 평가하게 된다. (33)
하지만 이론의 등위적 적용은 문학작품 속의 현실이 문학적으로 변형된 허구적 현실이라는 점, 문학작품의 의미는 묘사되는 대상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묘사하는 언어 자체의 특질에 의해 함께 결정된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평의 방법으로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34)
비평가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비평의 목적이 어떤 보편적 인식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의 고유성(고유한 문체와 스타일, 작품 구성의 방식, 특수한 모티프 등등)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 그는 작품을 하나의 일반적 개념으로 수렴시켜 그 고유성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적 개념들의 접합을 통해 작품의 유일무이한 특징에 접근해 가야 한다. (37)
제 1 장 비평과 이론
문제는 오히려 문학작품과 문학비평이 근본적으로 상이한 질서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쉽게 간과되는 데서 발생한다. (21)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즉 소설이라는 몸에 들어오게 되면 성찰의 본질이 바뀌게 된다는 겁니다. 소설의 바깥에서는 사람들은 확인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확신합니다. 경찰이건, 철학자이건, 수위이건 다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놀이와 가설의 영역이거든요."(쿤데라, 소설의 기술, 95에서 인용)
소설은 무언가를 확인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 소설 속에서는 심지어 추상적이고 논증적인 사유조차도 우연과 일회성에서 자유롭지 않은 일종의 연기, 퍼포먼스라는 것. (22,3)
내가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문학 언어와 비평 언어를 다른 차원에 배치하는 것이다. 즉 문학 언어를 비평 언어로 번역하는 대신, 문학 언어를 관찰하고 기술하기 위해 비평 언어를 동원한다는 것. 이는 곧 언어학에서 통용되는 대상언어와 메타언어(대상언어를 기술하는 언어)의 구별을 비평에 도입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언어학적 방법론을 비평에 적용했던 구조주의 비평의 입장을 계승하는 것이기도 하다. (24)
빈약한 이론적 토대를 보강해줄 수 있는 것은 이를테면 제라르 주네트의 반복서술과 같은 개념이다. 그것은 서사적이지 않은 한유주 소설의 문체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이론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제라르 주네트가 <이야기 담화>에서 설명한 바에 따르면 여러 차례 반복된 사건들을 한 번에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반복서술("나는 오랫동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이고, 한 번 일어난 일을 한 차례 이야기하는 것은 일회서술("나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이다. (28)
소설에서 반복서술의 비중이 커지고 일회서술이 줄어들면, 서사성은 약화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답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는 예외적이고 특별한, 그래서 반복될 수 없는 사건들의 연쇄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은 일회서술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29)
우리는 이제 '한유주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라고 묻는 대신 '한유주는 왜 세계를 반복적 과정으로 서술하는가?' "이러한 반복서술을 가능하게 하는 서술자의 위치는 어디인가?' 등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30)
이론을 현실과 문학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이론가는 자신의 이론이 문학작품 속에 묘사된 세계에 잘 적용되면 될수록, 그 작품의 창조자를 정확한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더 높이 평가하게 된다. (33)
하지만 이론의 등위적 적용은 문학작품 속의 현실이 문학적으로 변형된 허구적 현실이라는 점, 문학작품의 의미는 묘사되는 대상 뿐만 아니라 그것을 묘사하는 언어 자체의 특질에 의해 함께 결정된다는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평의 방법으로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34)
비평가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은 비평의 목적이 어떤 보편적 인식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의 고유성(고유한 문체와 스타일, 작품 구성의 방식, 특수한 모티프 등등)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이다. 그는 작품을 하나의 일반적 개념으로 수렴시켜 그 고유성을 파괴할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일반적 개념들의 접합을 통해 작품의 유일무이한 특징에 접근해 가야 한다. (37)
제 1 장 비평과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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