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독일 이상주의의 가장 오래 된 체계강령 -franz72님

텍스트 이해 :


이 텍스트는 슐레겔의 "새로운 신화에 대한 연설"과 더불어 독일 이상주의의 현대성 이해를 보여주는


대표적 텍스트이다. 다만 "체계강령"으로 약칭되는 이 텍스트는 현대의 분열과 모순을 시대의 부정적


징후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성에 봉사"하는 "이념의 신화"를 요청하고 있다면, 슐레겔의


경우 오히려 "체계강령"의 저자들이 부정적으로 파악한 시대의 현상들에서 새로운 생산성의 가능성을


보고자한다는 점에서 현대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열어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신화"라는 용어는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서양의 합리화 과정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즉 이성에 의한 합리화가 통일보다는 분리를, 집단 공동체보다는


나 개인을, 따뜻한 감성보다는 차가운 이성을 강조함에 따라 공동체의 파괴와 인간 소외를 발생


시켰다고 파악함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신화"에서 부정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구원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신화"에 대한 추구는 단순히 과거 지향적이거나 퇴행적인


행위로만 이해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체계강령"의 저자들이나 슐레겔 모두 "새로운 신화"의 근거를


"이성"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신화"에서 요청되고 있는 "이성"은 편협한 도구주의적


이성을 넘어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폭넓은 "이성" 개념의 이해에는 새로운 사회 질서에


대한 그 시대의 갈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벤야민 사이트에 이 번역물을 싣는 까닭은 벤야민의 현대성 이해가 지평으로 삼고 있는 다양한


전통들을 일부나마 소개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부족하지만 그 동안 번역해 두었던 텍스트들을


기회가 닿는대로 소개해서 벤야민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독일 이상주의의 가장 오래 된 체계강령*1)


[234] 하나의 윤리학.3) 모든 형이상학은 앞으로 윤리학에 포함될 것이기 때문에 -- 이에 관해서


칸트는 자신의 두 가지 실천적 요청을 통해 오로지 하나의 예만을 제시했으며 충분히 논구하지는


않았다 -- 이러한 윤리학는 다름 아니라 바로 모든 이념들의 완벽한 하나의 체계, 즉 모든 이념들과


동일한 것인 모든 실천적 요청들의 체계가 될 것이다. 이 첫번째 이념은 물론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표상이다.  자유롭고 자기 의식적인 존재와 함께 동시에 하나의 전체 세계가


무(Nichts)에서 생겨난다. 즉 유일하게 진정하고 생각할 수 있는 창조물이 무에서 생겨난다. 여기에서


나는 물리학의  영역들로 내려가고자 한다. 질문은 이렇다. 즉, 도덕적 존재를 위한 하나의 세계는


어떻게 창조되어야만 하는가? 나는 더디게 발전하고 실험을 통해 힘들게 진행하는 물리학에 다시 한번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만약 철학이 이념들을 제공하고, 경험이 자료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내가 후세대에게서


기대하고 있는 물리학 일반4)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의 물리학은 우리의 정신이 그러하고 혹은


그러해야만 하는 것과 같은 창조적 정신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자연에 관한 문제에서 인간의 업적(Menschenwerk)에 관한 문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우선 인류의


이념을 말해보자. 나는 국가의 이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데, 왜냐하면 국가는


기계와 같은 것이며, 기계의 이념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의 대상이 되는 것만이 이념이라


일컬어진다. 우리는 따라서 국가를 넘어서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든 국가는 자유로운 인간을 [235]


기계의 톱니바퀴 장치로 다루어야만 하기 때문이다.5) 하지만 국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 따라서 국가는


중단되어야만 한다.6) 자유로운 인간에게 이 글에서 말하는 영원한 평화에 대한 모든 이념들은 보다


높은 이념의 하위 이념들임이 자명하다. 동시에 나는 이 글에서 인류의 역사를 위한 원리를 기록하고자


하며 국가, 제도, 통치, 입법이라는 모든 비참한 인간의 업적을 속속들이 파헤치고자 한다. 최근에


이성이 이성 자체를 통하여 꾸며내고 있는 모든 미신의 전복, 사제 제도의 추방이 등장하고, 마침내 


도덕적 세계, 신성, 불멸성에 대한 이념들이 등장하였다. 즉 지적 세계를 담지하고 있으며 자신 밖에서


신도 불멸성도 추구해서는 안 되는 모든 정신들의 절대적 자유가 등장하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이념은 아름다움의 이념이며, 그 단어는 고귀한 플라톤적


의미에서 받아들여졌다. 나는 지금 이성의 최고의 행위, 즉 이성이 모든 이념들을 포괄하고 있는


최고의 행위는 심미적 행위이며 진리와 선은 오로지 아름다움 안에서만 형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철학자는 시인과 마찬가지로 심미적 힘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심미적 감각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의 문자 철학자들(Buchstabenphilosophen)이다. 정신의 철학은 심미적


철학이다.7) 만약 심미적 감각이 없다면, 사람은 어디에서도 정신적으로 풍부해 질 수 없으며, 역사


자체에 대해서도 이성적으로 풍부하게 따져볼 수 없다.8) 이 점에서 어떠한 이념들도 이해하지 못하며


그래서 일람표와 목록표가 사라지자마자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고 순진하게 인정하는 사람에게 결여된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시문학은 최후에 다시금 원래의 존재, 즉 인류의 스승이 됨으로써 보다 고귀한 품위를 얻게 된다.


왜냐하면 (그때는:번역자) 철학도 역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시예술만이 모든 다른 학문들과


예술들보다 오래 살아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는 일반 대중들은 감각의 종교를 가져야만 한다는 말을 종종 듣고 있다. 일반 대중들 뿐만


아니라 철학자 또한 그것을 필요로 한다. 이성과 [236] 마음의 일신교, 상상력과 예술의 다신교,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선 나는 여기에서 내가 아는 한 아직 누구에게서도 의미를 얻은 바가 없었던 하나의 이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신화(Mythologie)9)를 지녀야 하며, 이러한 신화은 하지만


이념들에 봉사해야만 하고, 그것은 이성의 신화가 되어야만 한다.10)



우리가 이념들을 심미적으로 즉 신화적으로 만들기 전에는, 이념들은 대중(das Volk)에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반대로, 신화가 이성적으로 되기 전에는, 철학자는 신화에 대해 부끄러워 해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계몽된 자와 계몽되지 않은 자는 서로 제휴해야 하고, 신화는 철학적으로 되어야 하고 대중은


이성적으로 되어야 하며, 그리고 철학자들을 감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철학은 신화가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영원한 통일성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현자들과 사제들 앞에서 어떤 경멸적 시선도,


대중의 맹목적 전율도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비로소 모든 세력들, 개별자들


그리고 모든 개성들의 평등한 완성을 기대하게 될 것이다. 어떤 힘도 더 이상 억압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정신의 일반적 자유와 평등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정신은


이러한 새로운 종교를 우리 중에 세워야 하며, 그것은 인류의 최후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 될 것이다.



* Das aelteste Systemprogramm des deutschen Idealismus. 이 글은 1796년과 1797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셸링, 횔덜린, 헤겔 중 한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번역은 다음 책을 참조로 하였다. G.W.F.Hegel, fruehe Schriften Bd.1, F/M 1986, S.234f. 원래의 제목은 이하에서 "체계강령"으로 축약해 사용하였다.


1) 근대의 담론 내에서 새로운 신화에 대한 논의는 다음글을 참조할 것. Manfred Frank, Kaltes Herz. Unendliche Fahrt. Neue Mythologie: Motiv-Untersuchungen zur Pathogenese der Moderne, F/M 1989. Ders.: Der konmmende Gott, F/M 1982.


2) "하나의 윤리학"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 텍스트는 다음과 같은 2가지 사실을 지시하고 있다. 첫째로, "체계강령"은 "일원론적 철학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체계강령의 철학적 구상은 스피노자의 "윤리학"과 유사하게 모든 명제들을 연연적으로, 다시 말해 유클리드 기하학의 모범을 따라 공리라 부를 수 있는 상위명제로부터 도출시키고자 한다. 두 번째로, 체계강령은 전체 철학을 칸트가 "이념"이라고 명명한 영역 내에 정초시키고자 한다. 즉 이 텍스트의 저자들은 전체 철학을 이론적 진술들의 체계를 하나의 "목적"과 연관시키기 위하여 이성이 실천적 의도에서 작동하는 토대 위에 정초시키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체계강령"이 합목적성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고, 그것을 통해 철학이 실천적 정초 작업과 새로운 신화에 대한 요청 사이를 연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3) "물리학 일반Physik im Grossen", 즉 모든 제한들로부터 벗어나 있는 "날개를 단 물리학"에 대한 체계강령의 구상은 자연을 유기체로 파악하려는 독일 이상주의의 자연관을 잘 표현하고 있다.


4) 국가를 기계로서 비판하고 있는 이 구절은 샤프츠베리의 반기계론적 유기체 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후 칸트, 루소, 홉스, 맑스 그리고 하버마스에 이르기까지 "절대국가"(기계)와 "민주적 국가"(유기체)에 대한 은유로 사용되어 왔다.(cf.M.Frank, Der kommende Gott, F/M 1982, bes.6.Vorlesung) 이 둘의 개념을 구분하자면, 유기체는 신체의 세포들과 마찬가지로 전체의 목적과 이념이 기재되어 있는 하나의 형성물이며, 이와 반대로 기계는 기계를 구성하는 부분들은 기능장애 없이 서로 교환될 수 있고, 그 자체 내부에 전체의 목적에 대한 이념을 지니고 있지 않다.


5) 이러한 급진적인 무정부주의적 국가 비판은 새로운 신화론을 예비했던 헤르더의 구상에 비해 새로운 점이라 할 수 있다. 헤르더는 "불멸성과 회춘의 여신인 이두나Iduna"를 통해 신들의 "복귀"를 예비하였는데, 왜냐하면 이두나는 상상력, 즉 세계를 창조하는 잠재력으로서 언어의 여신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언어의 정신에서 성장한 현재의 신화에 대한 헤르더의 요청에는 체계강령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급진적 국가 비판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언급한 M.Frank의 책 5장을 참조할 것.


6) 낭만주의에서 문자(Buchstabe)와 정신(Geist)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글을 참조할 것. Norbert Bolz, Der Geist und die Buchstaben. Friedrich Schlegels hermeneutische Postulate, in: Ulrich Nassen(hrsg.), Texthermeneutik, Paderborn 1979.


7)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Mann kann in nichts geistreich sein, selbst ueber Geschichte kann man nicht geistreich raisonieren -- ohne aesthetischen Sinn. 이 부분에서 특히 "raisonieren"이란 동사를 주목해야 하는데, 이 동사의 현대적 표기는 raesonieren이며 이는 "이성적으로 따져 묻다"라는 뜻이다. 이 동사는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도 나타나는데, 칸트는 이 동사를 계몽화된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특징짓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raisonieren이란 동사는 계몽주의 시기의 인간 이성의 비판적 활동을 특징짓고 있는 단어라 할 수 있다.


8) 신화론Mythologie은 Mythos와 Logos의 합성어로, 원래는 "신화론"으로 번역해야 맞겠지만 어감상 "신화"로 번역하기로 한다.


9) 이 지점이 체계강령이 슐레겔의 새로운 신화에 대한 요청과 구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신화에 대한 슐레겔의 구상은 체계강령에서와는 달리 "이념에 봉사"하지 않으며 "이성의 신화"가 아니며, 또한 역사적 혹은 역사철학적 담론이 아니라 미학적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슐레겔의 새로운 신화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참조할 것. Karl Heinz Bohrer, Friedrich Schlegels Rede ueber die Mythologie, in: K.H.Bohrer(hrsg.), Mythos und Modernitaet, F/M 1983.


10) "Volk"란 단어는 보통 민중, 대중, 민족, 인민 등의 여러 의미로 사용되지만 여기에서는 앞에서 사용된 "일반 대중들der grosse Haufen"이란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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