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렐리우스 아우구수티누스(354-430)
- 생활정보
- 2007. 5. 22. 10:24
아우구스티누스도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독단적이고monopolhaft이고 권위주의적인 기독교의 선구적 사상가이다. 354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엔의 타가스테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이때 이미 기독교도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우드라에 있는 문법학교와 지방수도였던 카르타고의 웅변학교Rhetorenschule를 다녔다. 키케로를 읽으면서 그는 철학적 이론과 이념에 눈을 뜨게 된다. 웅변가로서 그는 로마와 마일란드에서 활동했다. 마지막에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가 된다.
일찌기 그는 마니교의 교리에 심취했는데, 이 교리는 [이] 세계와 인간의 육체를 사악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육체 속에 유폐되어 있고, 해방을 갈구한다. 구원으로 향하는 길을 비춰준 인도자로는 플라톤, 예수 그리고 마니Mani가 있다. 감각과 성은 사악한 것이며 고행의 길만이 영혼의 해방으로 인도해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키케로(호르텐시우스?)의 저작들을 읽었을 때, 그는 플라톤적 회의주의 이론에 찬성하게 되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확실한 지식이란 없고, 다만 인식에 대한 주관적 개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마일란드에서 이 웅변가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를 듣게 되고, 그를 통해 신플라톤주의적 기독교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도가 되었고, 웅변가의 직업을 버리고 사제가 되었으며 후에는 주교가 된다. 430년 히포에서 죽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적인 빛이 유출된다고 하는 신플라톤적 이론을 믿었다. 이 빛은 존재의 원천근거이며, 이로부터 모든 현실(실재?)이 흘러나온다. 신의 진리가 우리 인간의 영혼 속으로 비쳐들어오며, 그 때문에 우리 인간 영혼은 영원한 것에로의 비상을 갈망한다. 근원일자로부터 세계정신nous이 산출되듯이 신의 아들은 아버지 신으로부터 나온다.
380년부터는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격상된다. 그 7년 후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도가 되고 곧 이어 사제와 주교가 된다. 많은 저작들에서 그는 새로운 제국교회를 위한 독단적 교리를 구상했다. 신적인 진리는 기독교도들에게만 드러나며, 이 진리는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고 절대적 타당성을 가진다. 어떤 인간도 이 진리로부터 벗어나거나 그에 대해 저항할 수 없다. 주교들은 이러한 궁극적letzte 진리를 지키는 자들이다. 이로부터 이탈하는 자는 국가의 힘으로 굴복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도 자신의 강제종교(종교강제?Zwangsreligion)에 대해 가르쳤던 것이다.
이제까지의 이교도들은 제국교회로 편입하도록 강제되어야 한다.(compellie intrare) 이교도와 참된 신앙의 배교자들은 국가에 의해 추격당하며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1400년이 넘도록 효력을 지녔던 제국교회의 종교재판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주교는 도덕적 염세주의를 표방(대표?)한다. 모든 인간은 원죄로 인해 악하고 타락한 존재이며, 신 앞에서 그들은 "저주받은 무리"(massa damnationis)들이다. 창조주 신은 거의 모든 인류를 영원한 파멸에 이르도록 하였고, 소수의 사람만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였다. 수많은 인간들이 영원한 지옥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힘으로는 악으로부터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모든 구원은 신의 은총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원래부터 악한 것은 아니라고 한 영국의 수도승 펠라기우스와 논쟁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금욕적인 히포의 주교는 이러한 이론을 엄격하게 거부한다. 그는 철학에 있어서의 회의적인 입장을, 우리가 의심할 수 있으려면 그보다 먼저 우리는 살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dubito sum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극복한다. 제국교회에 의해 관리되는 절대적인 신적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신플라톤주의는 모든 형태의 회의주의를 극복한다.
이러한 진리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은 살아갈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진리를 찾는 중에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우리의 영혼 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 상이한 능력들을 체험한다. 즉 생각하고(mens), 인식하고(notitia), 사랑하는(amor) 능력. 이 세 능력은 신의 삼위일체,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에 상응한다. 인식은 신의 빛이 우리에게 작용함으로써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마치 태양빛처럼 영원한 진리는 우리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를 사랑한다(amor sui). 그들의 길은 파멸에 이른다. 그러나 (어떤) 몇몇 이들은 창조주 신을 사랑한다(amor Dei). 그들은 영원한 구원에 이른다. 우리 인간들은 천사들의 Urwahl을 통해 두 세계, 즉 지상의 세계와 신의 세계의 시민인 것이다. 지상국가(civitas terrena)는 인간의 자기애를 통해 만들어지는 반면, 신국civitas Dei은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항상 이 두 국가 모두에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우리 영혼의 연장으로서 체험한다. 영원한 진리는 우리를 우리[인간]의 덧없음으로부터 지켜준다. 우리는 자기애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권위있는 국가의 권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본성상 모두 악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서로 간의 욕망과 자기애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통일의 계약Vereinigungsvertrag을 맺었다. 국가는 정의와 평등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세운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은 마치 강도떼마냥 [권력을] 행사한다.
국가는 생명, 소유의 안전과 같은 이 땅에서의 목적을 좇는다. 그러나 교회는 사악한 힘으로부터 영혼을 구하는 것과 같은 저 세상에서의 목적을 좇는다. 시간 속에서는 세계국가와 신국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엮이어 있다. 그러나 시간의 끝 신의 법정에서 그 둘은 분리된다. 지금 신의 나라에 사는 듯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바깥에 있는 듯 보였던 이들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와 주교들의 신앙에서 벗어난 기독교도들은 참된 믿음에 대한 확신에 찬 언사를 통해 인도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나중에 제국의 주교가 되었을 때는 그들의 거짓되고 비열한 종교 때문에 이교도들은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회는 성실한 어머니처럼 인간들을 신의 진리에로 강제로[라도] 이끌어야 하며 그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쓰디쓴 약이라도 먹여야 한다.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여 411년에 황제 호노리우스 1세의 손을 통해 종교재판이 시작되었다.
일찌기 그는 마니교의 교리에 심취했는데, 이 교리는 [이] 세계와 인간의 육체를 사악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육체 속에 유폐되어 있고, 해방을 갈구한다. 구원으로 향하는 길을 비춰준 인도자로는 플라톤, 예수 그리고 마니Mani가 있다. 감각과 성은 사악한 것이며 고행의 길만이 영혼의 해방으로 인도해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키케로(호르텐시우스?)의 저작들을 읽었을 때, 그는 플라톤적 회의주의 이론에 찬성하게 되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확실한 지식이란 없고, 다만 인식에 대한 주관적 개연성만이 있을 뿐이다. 마일란드에서 이 웅변가는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설교를 듣게 되고, 그를 통해 신플라톤주의적 기독교를 알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도가 되었고, 웅변가의 직업을 버리고 사제가 되었으며 후에는 주교가 된다. 430년 히포에서 죽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적인 빛이 유출된다고 하는 신플라톤적 이론을 믿었다. 이 빛은 존재의 원천근거이며, 이로부터 모든 현실(실재?)이 흘러나온다. 신의 진리가 우리 인간의 영혼 속으로 비쳐들어오며, 그 때문에 우리 인간 영혼은 영원한 것에로의 비상을 갈망한다. 근원일자로부터 세계정신nous이 산출되듯이 신의 아들은 아버지 신으로부터 나온다.
380년부터는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격상된다. 그 7년 후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도가 되고 곧 이어 사제와 주교가 된다. 많은 저작들에서 그는 새로운 제국교회를 위한 독단적 교리를 구상했다. 신적인 진리는 기독교도들에게만 드러나며, 이 진리는 모든 인간에게 통용되고 절대적 타당성을 가진다. 어떤 인간도 이 진리로부터 벗어나거나 그에 대해 저항할 수 없다. 주교들은 이러한 궁극적letzte 진리를 지키는 자들이다. 이로부터 이탈하는 자는 국가의 힘으로 굴복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래서 플라톤도 자신의 강제종교(종교강제?Zwangsreligion)에 대해 가르쳤던 것이다.
이제까지의 이교도들은 제국교회로 편입하도록 강제되어야 한다.(compellie intrare) 이교도와 참된 신앙의 배교자들은 국가에 의해 추격당하며 무거운 형벌을 받아야 한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1400년이 넘도록 효력을 지녔던 제국교회의 종교재판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주교는 도덕적 염세주의를 표방(대표?)한다. 모든 인간은 원죄로 인해 악하고 타락한 존재이며, 신 앞에서 그들은 "저주받은 무리"(massa damnationis)들이다. 창조주 신은 거의 모든 인류를 영원한 파멸에 이르도록 하였고, 소수의 사람만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였다. 수많은 인간들이 영원한 지옥에 이르도록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자신의 힘으로는 악으로부터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모든 구원은 신의 은총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원래부터 악한 것은 아니라고 한 영국의 수도승 펠라기우스와 논쟁한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금욕적인 히포의 주교는 이러한 이론을 엄격하게 거부한다. 그는 철학에 있어서의 회의적인 입장을, 우리가 의심할 수 있으려면 그보다 먼저 우리는 살고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dubito sum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극복한다. 제국교회에 의해 관리되는 절대적인 신적 진리를 가르침으로써 신플라톤주의는 모든 형태의 회의주의를 극복한다.
이러한 진리로부터 벗어나는 사람은 살아갈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진리를 찾는 중에 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이미지들을 갖고 있다. 우리의 영혼 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 상이한 능력들을 체험한다. 즉 생각하고(mens), 인식하고(notitia), 사랑하는(amor) 능력. 이 세 능력은 신의 삼위일체, 즉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에 상응한다. 인식은 신의 빛이 우리에게 작용함으로써 선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마치 태양빛처럼 영원한 진리는 우리의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를 사랑한다(amor sui). 그들의 길은 파멸에 이른다. 그러나 (어떤) 몇몇 이들은 창조주 신을 사랑한다(amor Dei). 그들은 영원한 구원에 이른다. 우리 인간들은 천사들의 Urwahl을 통해 두 세계, 즉 지상의 세계와 신의 세계의 시민인 것이다. 지상국가(civitas terrena)는 인간의 자기애를 통해 만들어지는 반면, 신국civitas Dei은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항상 이 두 국가 모두에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는 시간을 우리 영혼의 연장으로서 체험한다. 영원한 진리는 우리를 우리[인간]의 덧없음으로부터 지켜준다. 우리는 자기애로부터 구원받기 위해서 권위있는 국가의 권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본성상 모두 악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서로 간의 욕망과 자기애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통일의 계약Vereinigungsvertrag을 맺었다. 국가는 정의와 평등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세운다. 그러나 많은 국가들은 마치 강도떼마냥 [권력을] 행사한다.
국가는 생명, 소유의 안전과 같은 이 땅에서의 목적을 좇는다. 그러나 교회는 사악한 힘으로부터 영혼을 구하는 것과 같은 저 세상에서의 목적을 좇는다. 시간 속에서는 세계국가와 신국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엮이어 있다. 그러나 시간의 끝 신의 법정에서 그 둘은 분리된다. 지금 신의 나라에 사는 듯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바깥에 있는 듯 보였던 이들이 그 안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교도와 주교들의 신앙에서 벗어난 기독교도들은 참된 믿음에 대한 확신에 찬 언사를 통해 인도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나중에 제국의 주교가 되었을 때는 그들의 거짓되고 비열한 종교 때문에 이교도들은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교회는 성실한 어머니처럼 인간들을 신의 진리에로 강제로[라도] 이끌어야 하며 그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는 쓰디쓴 약이라도 먹여야 한다.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여 411년에 황제 호노리우스 1세의 손을 통해 종교재판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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