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투스 마그누스(1200-1280)
- 생활정보
- 2007. 5. 23. 10:41
대개는 마그누스라는 별칭으로 불리우는 알베르투스가 살았던 시기는 문화적 경제적으로 상승기에 접어들던 중세전성기와 겹친다. [이 시기에] 알베르투스가 주로 활동했던 쾰른을 포함하여 도시들이 발생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 혹은 알베르투스가 속했던 도미니크 수도회 등의 새로운 종교적 운동을 통해 기독교는 내적 쇄신을 하게 된다. 학문들, 철학, 신학 그리고 자연과학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발견하게 됨에 따라 생각치 못한 비약적인 발전을 경험한다. 이러한 모든 발전과정을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의 저작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알베르투스는 1200년 혹은 그보다 약간 전에 슈바벤 지역의 라우잉엔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는-후에 그가 직접 언급하는 바- 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litterarum을 배우기 위해 파두아로 보내어졌다. 거기서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를 알게 되고, 1223년에 입회한다. 쾰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뒤로는 독일의 여러 도시들과 파리에서 가르쳤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파리에서 쾰른으로 돌아와 studium general, 일종의 수도원 교구의 관구장으로 일했고, 그리고 나서는 잠시 동안 레겐스부르크의 주교, 교황의 사절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설교자Kreuzzugsprediger로 일했다.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크회 수도원에서 죽었다.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랍-유대 철학의 어마어마한 자료들 및 거대한 범위의 자연과학들을 스토아적 사유에 접목시킨 최초의 중세사상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아랍인과 유대인을 거쳐 유럽으로 오게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주해하려 했고, 신학의 옆에 혹은 아래에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 논증으로서 사용된 이교도의 철학을 알고 싶어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해작업에서 그는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은 아랍인들의 주석을 이용했고, 그 자신 역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신비적 신학>>과 같은 신플라톤주의적 저작과 비의적 저작들의 영향 하에 있었다.
So kommt es in seinem Werk zu einem Reichtum an Motiven, aber auch an Widerspruechen, an die andere wie Thomas von Aquin anknuepfen konnten. 그의 저작은 2절판 책으로 21권이며, 이는 자연과학과 철학적 지식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백과사전이다. 신학적 저작 외에 무엇보다 철학적 저작들이 중요한데, 이것들은 페리파토스(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 전체를 체계적인 질서 하에 서술하고, 동시대인들이 다가가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의 저작의 가장 중요한 근본주제들은 신앙과 지식의 관계, 최초의 원인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의 신 개념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형이상학, 고대적 세계상과 기독교적 세계상 그리고 인류학 등이다.
신앙과 지식: 알베르투스가 보기에 신학은 우선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른 학문들과 구별된다. [즉] 다른 학문들은 자신들의 각각의 대상 영역에 대한 근본인식에 기초하여 구축되지만, 신학은 이에 반해 신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거기에 기초하여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인식을 찾는다는 점이다. 신학은 그러므로 전통적 의미에서의 학문이 아니며, 그것을 통해 인간이 세계의 근원이요 모든 노고의 목적인 신에게로 이끌어지는 구원론이다. 그런 한에서 신학은 학문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높은 것, 신에 대한 추구를 행하기 때문이다.
제일 원인에 대한 학설로서의 형이상학: 형이상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제일 철학prima philosophia은 자연적 인식 뿐만 아니라 제일 원인에 대한 물음과 따라서 궁극적으로 신에 대한 물음을 다루는 영역을 포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부동의 동자, 모든 사물의 원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정의는 곧 알베르투스에 의해 기독교의 창조신으로 변형되는데, 이 창조신은 자신의 근원성 속에서 모든 존재자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만물에 그 성질을 부여하는 자이다. 그의 <<원인과 우주의 생성에 대한 책>>에서 그는 제일 원리, 즉 제일의 것인 까닭에 신적인 성질을 가진 원리로부터의 기원에 있어서 존재자의 단계를 서술하고 있다.
세계상: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연구하면서 기독교의 그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벗어나는, 시간의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의 영원함과 운동으로부터 도출되는 세계상에 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알베르투스에게 고대 철학에 대한 논증작업은 제한된 타당성만을 갖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이 운동, 시간 그리고 세계의 시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알베르투스의 생각에 따르면 행위(운동)을 통해 무로부터 무언가가 생성되며, 이는 성경의 창조설화에 상응하는 것이다. 오직 신만이 영원할 수 있으며, 신 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인간상: 죽음 후에도 삶이 지속되는가, 그리고 그 삶은 '어떤' 것인가 라는 물음은 중세인들에게 본질적인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제일 원인의 모사, 그러므로, 그것이 비록 약화된 방식일지라도, 신의 존재방식 즉 불멸을 반영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오성적(지성적) 영혼의 불멸성을 가정했다. 그래서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에게 영혼의 불멸성이란 자연적 이성으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오성적 영혼에 맞게 질서지어져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형상과 질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근본도식이 적용된 것이다. 육체는 질료, 영혼은 형상이다. 인간의 영혼은 그의 행위가 개별적 기관의 행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관에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오성적 행위라는 점에서 동물이나 식물의 영혼보다는 우월하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어서도 남성적인 것은 알베르투스에 따르면 여성적인 것, 열등한 것보다 고귀한 것으로서 구별된다. 자연의 산출은 항상 더 좋은 것을 목표로 하므로 자연은 남성적인 것만을 산출하기를 원할 수 있다. 여성적인 것은 질료와 따뜻함(온기)에 있어서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여자는 남자의 씨앗을 보존하는 데에만 기여할 뿐이다. 이 씨앗은 아버지의 영혼으로부터 받은 힘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영혼의 형상에 태아를 제공한다. 물론 인간 영혼의 오성적 힘은 아버지의 씨앗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며, 단순하게 정의될 수 없는 어떤 시점에 신에 의해 아이의 영혼 속에 창조되는 것이다. 자연과 그에 따라 성별에 주어진 위계질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알베르투스(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전해졌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기독교적 인간상을 각인시켜 놓았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길을 예비한 위대한 인물이었고, 후손들에게 풍부한 사유의 계기들과 질문들을 남겨주었다. 또한 철학에게 신학의 옆에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자연과학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준 것도 그의 공로이다.
알베르투스는 1200년 혹은 그보다 약간 전에 슈바벤 지역의 라우잉엔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는-후에 그가 직접 언급하는 바- 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litterarum을 배우기 위해 파두아로 보내어졌다. 거기서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를 알게 되고, 1223년에 입회한다. 쾰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뒤로는 독일의 여러 도시들과 파리에서 가르쳤다.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파리에서 쾰른으로 돌아와 studium general, 일종의 수도원 교구의 관구장으로 일했고, 그리고 나서는 잠시 동안 레겐스부르크의 주교, 교황의 사절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설교자Kreuzzugsprediger로 일했다.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크회 수도원에서 죽었다.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랍-유대 철학의 어마어마한 자료들 및 거대한 범위의 자연과학들을 스토아적 사유에 접목시킨 최초의 중세사상가이다. 그는 스페인의 아랍인과 유대인을 거쳐 유럽으로 오게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주해하려 했고, 신학의 옆에 혹은 아래에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한 논증으로서 사용된 이교도의 철학을 알고 싶어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주해작업에서 그는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은 아랍인들의 주석을 이용했고, 그 자신 역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의 <<신비적 신학>>과 같은 신플라톤주의적 저작과 비의적 저작들의 영향 하에 있었다.
So kommt es in seinem Werk zu einem Reichtum an Motiven, aber auch an Widerspruechen, an die andere wie Thomas von Aquin anknuepfen konnten. 그의 저작은 2절판 책으로 21권이며, 이는 자연과학과 철학적 지식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백과사전이다. 신학적 저작 외에 무엇보다 철학적 저작들이 중요한데, 이것들은 페리파토스(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 전체를 체계적인 질서 하에 서술하고, 동시대인들이 다가가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그의 저작의 가장 중요한 근본주제들은 신앙과 지식의 관계, 최초의 원인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의 신 개념에 대한 물음으로서의 형이상학, 고대적 세계상과 기독교적 세계상 그리고 인류학 등이다.
신앙과 지식: 알베르투스가 보기에 신학은 우선 다음과 같은 점에서 다른 학문들과 구별된다. [즉] 다른 학문들은 자신들의 각각의 대상 영역에 대한 근본인식에 기초하여 구축되지만, 신학은 이에 반해 신을 연구대상으로 삼으며 거기에 기초하여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인식을 찾는다는 점이다. 신학은 그러므로 전통적 의미에서의 학문이 아니며, 그것을 통해 인간이 세계의 근원이요 모든 노고의 목적인 신에게로 이끌어지는 구원론이다. 그런 한에서 신학은 학문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높은 것, 신에 대한 추구를 행하기 때문이다.
제일 원인에 대한 학설로서의 형이상학: 형이상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제일 철학prima philosophia은 자연적 인식 뿐만 아니라 제일 원인에 대한 물음과 따라서 궁극적으로 신에 대한 물음을 다루는 영역을 포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부동의 동자, 모든 사물의 원인으로 보았다. 이러한 정의는 곧 알베르투스에 의해 기독교의 창조신으로 변형되는데, 이 창조신은 자신의 근원성 속에서 모든 존재자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만물에 그 성질을 부여하는 자이다. 그의 <<원인과 우주의 생성에 대한 책>>에서 그는 제일 원리, 즉 제일의 것인 까닭에 신적인 성질을 가진 원리로부터의 기원에 있어서 존재자의 단계를 서술하고 있다.
세계상: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연구하면서 기독교의 그것으로부터 아주 멀리 벗어나는, 시간의 시작도 끝도 없는 세계의 영원함과 운동으로부터 도출되는 세계상에 직면했음을 알게 되었다. 알베르투스에게 고대 철학에 대한 논증작업은 제한된 타당성만을 갖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이 운동, 시간 그리고 세계의 시초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했다. 알베르투스의 생각에 따르면 행위(운동)을 통해 무로부터 무언가가 생성되며, 이는 성경의 창조설화에 상응하는 것이다. 오직 신만이 영원할 수 있으며, 신 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인간상: 죽음 후에도 삶이 지속되는가, 그리고 그 삶은 '어떤' 것인가 라는 물음은 중세인들에게 본질적인 것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알베르투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제일 원인의 모사, 그러므로, 그것이 비록 약화된 방식일지라도, 신의 존재방식 즉 불멸을 반영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오성적(지성적) 영혼의 불멸성을 가정했다. 그래서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에게 영혼의 불멸성이란 자연적 이성으로 해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의 오성적 영혼에 맞게 질서지어져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형상과 질료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근본도식이 적용된 것이다. 육체는 질료, 영혼은 형상이다. 인간의 영혼은 그의 행위가 개별적 기관의 행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관에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오성적 행위라는 점에서 동물이나 식물의 영혼보다는 우월하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어서도 남성적인 것은 알베르투스에 따르면 여성적인 것, 열등한 것보다 고귀한 것으로서 구별된다. 자연의 산출은 항상 더 좋은 것을 목표로 하므로 자연은 남성적인 것만을 산출하기를 원할 수 있다. 여성적인 것은 질료와 따뜻함(온기)에 있어서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불완전하다. 여자는 남자의 씨앗을 보존하는 데에만 기여할 뿐이다. 이 씨앗은 아버지의 영혼으로부터 받은 힘을 포함하고 있고 따라서 영혼의 형상에 태아를 제공한다. 물론 인간 영혼의 오성적 힘은 아버지의 씨앗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며, 단순하게 정의될 수 없는 어떤 시점에 신에 의해 아이의 영혼 속에 창조되는 것이다. 자연과 그에 따라 성별에 주어진 위계질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알베르투스(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전해졌고,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기독교적 인간상을 각인시켜 놓았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길을 예비한 위대한 인물이었고, 후손들에게 풍부한 사유의 계기들과 질문들을 남겨주었다. 또한 철학에게 신학의 옆에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자연과학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준 것도 그의 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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