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마법'-글쓰기(문자)의 공간

벤야민의 유사성론(들)-이는 두 개의 미출간된 버전들을 가진다. <유사성론> 그리고 <미메시스 능력에 관하여>-은 독서와 글쓰기의 이론을 형성한다.

벤야민의 문헌들 중에 이 텍스트들에서 종종 인용된 "독서라는 단어의 주목할 만한 이중적 의미-세속적인 의미와 마법적인 의미-는 하나의 명확한 형상으로 소급될 수 있고 또 (그런 까닭에) 소급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러한 글쓰기이고, 더 정확히는 글쓰기를 위한 모델로서의 형세Konstellation이다. 형세에 대한 독서의 개념은, 특히 강조될 수 있는 바, 독서의 생산성을 함축한다. 이는 벤야민의 <유사성론>의 텍스트성에 있어서 특별하게 은유적이고 문자적으로 독서와 형세를 교차시키는 가운데 해명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동시에 형세와 함께 글쓰기, 즉 ZuLesende로서 하나의 모델이 벤야민이 비감각적 유사성의 개념으로 입증해 낸 것을 위해 구성된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로써 벤야민의 초기 언어구상에 있어서 중요함을 가지는, 언어와 그것의 직접성에 대한 또다른 개념이 명확해질 것이며, 이 개념은 경우에 따라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언어-읽기와 쓰기, 그리고 "비감각적 유사성" 및 "미메시스 능력"은 한편으로 이들의 본래적 자리 혹은 "기록보관소"로서 언어 혹은 문자가 특징화되며, 다른 한편으로는-다음의 독서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서로 간에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독서와 형세를 묶는 것은 '또다른' 독서의 기능화에 대한 논의를 허락하는데, 이 또다른 독서는 여기서도 "원한다면, 마법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형세의 모델에 있어서 두 가지 독서가 읽어내는 '그것'은, 두 독서가 서로를 지시하는 한에서 가시화될 수 있다.

1.
벤야민의 <유사성론(들)>은 미메시스적인 것과 유사한 것의 "마법적" 계기들을 이론적으로 극복하고 통합하며 청산하기 시작한다. 그는 대상들과 "대상들에게 대답을 던져주는" "미메시스 능력"이 변화해 온 전개과정을 스케치한다. 이러한 변화가 "통일적 방향" 안에서의 변화였다면, 그것은 "다만 이러한 미메시스 능력의 점증하는 쇠약함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명백히 근대인의 지표세계는 고대 민족과 원시인의 세계에 비해 훨씬 적은 마법적 교감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물음은 다만 이런 것이다. 미메시스 능력의 사멸이 문제인가 아니면 아마도 그 사멸과 함께 일어난 변화가 중요한 것인가?" (전집2, 206)

미메시스 능력의 "변화"는 그러나 그것의 쇠락은 아니다. 오히려 "미메시스적 능력은 자신의 오랜 힘들을 이해와 서술로부터 다른 새로운 영역으로 위임한 것이라는 추측"이 "미메시스적인 것에 대한 벤야민 이론의 핵심이요 그의 언어철학적 성찰이 투입되는 지점"이라고 메닝하우스는 지적한 바 있다. 유사성론은 미메시스적 능력의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위치를 개념화한다. (그것은) 언어와 문자 속에 놓여진 "비감각적 유사성"이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해석가들에 의해 종종 그에게 부가된 저 퇴행적 테제에 대한 벤야민의 구상은 결코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이 텍스트의 영역본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쓰여지고 말해진 말의 세계는 그것이 산출되어 나온 직접성과 인식의 세계보다 끝없이 더 가난하다." 그러나 이에 반해 벤야민에게는 언어와 문자야말로 "비감각적 유사성"의 본래적인 열쇠 혹은 모델이 된다는 사실이 고수된다. 더욱이 벤야민이 진단한 미메시스 능력의 변화는 우선 '상실'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명백한 형상, 미메시스적 대상의 성격"은 "오늘날에는 우리가 그를 예감조차 할 수 없는 그곳"에 언젠가 존재했었다. "예컨대 별자리 속에."(전집2, 206)-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상실은 특정한 독서가능성의 상실로, 언어적이고 문자적인 구조성의 상실로 특징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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