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르네 데카르트(1596-1650)

데카르트는 근대의 자연과학적 인식들에 대해 처음으로 반응했던 철학자이다. 1596년 투렌 지방의 라 아예에서 태어났다. 라 플레슈에 있는 예수회 수도원에서 교육받았다.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고, 새로운 학적 방법을 추구했다. 생애 말기에는 스톡홀름에서 지내다 죽음을 맞았다. 그는 근대철학의 창시자로 간주되는데, 이는 그가 스콜라 철학의 세계관과,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관과 결정적으로 결별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모든 자연과학적 인식은 수학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자연에는 목적이 아니라 인과관계만이 있을 뿐이고, 이 인과관계는 탐구될 수 있는 것이다. sublunear한 세계와 supralunear한 세계 간의 분리는 폐기되고, 우주 안 어디서나 이와 같은 기계적 법칙이 작동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연과학에 있어서는 확실한 인식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연은 철학의 주제가 아니다. 철학의 과제는 자연과학의 인식들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다.

자연을 지배할 수 있으려면 정확한 설명이 요구된다. 자연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건강을 유지하고 생명을 연장시키며 감정과 이성을 명확히 구획짓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주의적 인식의 이상은 자연의 영역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다. 모든 학문은 공리(근본가정) 위에 세워지는데, 이 공리들은 명증한 것이며 다른 근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근본가정으로부터 논리적인 방식으로 결론이 도출된다.

경험적인 학문들 또한 분석적 방법을 필요로 한다.(방법서설) 그것은 이 학문들이 사실을 설명해 주는 법칙으로 소급해 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자연법칙들은 명징한 원칙들로부터 도출가능하다. 그러나 지식을 얻는 과정에 있어서의 불확실함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방법적 회의가 요구된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만이 참된 것으로 인정된다. 우리의 학문적 이론들이 현실과 일치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형이상학적 차원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지각들은 우리를 기만할 수 있으며, 언제나 우리의 사유에 의존되어 있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우리의 의식과 표상의 내용 뿐이다. 우리는 곧장 현실로 이어지는 통로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우리 지각의 실재성에 대한 믿음을 늘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도록 그렇게 신이 우리를 창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한 신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가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게 해 줄 수 있다.

내가 실재에 대해 의심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cogito sum) 내가 세계의 실재성에 대해 의심할 수 있으려면, 우선 나 자신이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실존하는 자아로서 나는 "사유하는 주체"이다. 나는 생각하며, 고로 나는 생각하는 주체이다. 참된 신의 존재가 전제되며, 이로써 우리 인간은 자연 인식에 의해 기만당하지 않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에 대한 관념이 있다. 우리는 이 관념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 이것은 경험이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지고의 신적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론적 신 증명은 옳다. "신"에 대한 관념은 명석판명하며, 그 내용은 우리 정신에게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신은 완전한 존재로서 실제로 존재함이 틀림없으며, 그의 실존은 완전하다. 신에 대한 관념은 참된 자연의 모사이며, 유한한 것은 무한한 것의 배경 하에서만 생각될 수 있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플라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신은 우리의 사유와 독립적인 존재이다. 물질의 본질은 연장이며, 영혼의 본질은 사유이다. 우리의 자아는 항상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물질적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의 신체는 연장되어 있지만, 어떤 정신적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엄격히 분리된다. 근대 학문에서 동물은 사물로 간주된다. 동물은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은 순수하게 기계적으로 해석된다. 모든 물질은 연장되어 있으며, 연장 없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히 텅 빈 공간은 생각할 수 없으므로 모든 운동은 공간 안에서 상대적이다. 궁극적으로 신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창조주로서의 신이 물질에게 특정한 운동들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들은 신이 내려준 것이며, 마치 기계처럼 작동한다. 모든 자연 과정은 압력과 충돌을 통해 발생한다. 우리싀 신경계의 자극도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빛의 굴절도 입자들의 압력과 충돌을 통해 일어난다.

신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의 상호작용은 송과선에서만 일어난다. 모든 생물은 기계처럼 기능하며, 의학적 연구는 여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더 많이 갖기 위해 우리는 지식을 얻으려 애쓴다. 우리의 정념과 충동들을 더 잘 통제하기 위해 우리는 도덕을 세우는 데 힘쓴다. 그래서 잠정적인 도덕은 항상 정념이나 본능, 충동, 그리고 신앙이 아닌 이성의 통찰을 향해 있다. 우리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한 이성적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윤리학의 목표는 물리적 원인에 의해 야기된 비이성적 열정을 조종하는 것이다. 분노는 유기체 내의 기계적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비판적 이성에 의해 결정을 내릴 때 도덕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삶에는 많은 비이성적 힘들이 잔존해 있으나, 전체 현실은 이성의 법칙을 따른다. 이러한 법칙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학문의 과제다. 사물의 질서에 대한 이성적 통찰을 얻게 되면 우리는 올바르게 행동할 것이다. 이 점에서 데카르트는 스토아 학파의 윤리학을 따르고 있다.

그의 철학적 프로그램은 인간 삶의 행복을 늘리기 위해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이다. 그는 이성주의적 사유와 형이상학적 사유를 결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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