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아이작 뉴턴(1643-1727)
- 생활정보
- 2007. 7. 16. 14:19
아이작 뉴턴은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인 1643년 1월 4일(당시의 셈법으로는 성탄절이었는데) 잉글랜드 중부 Woolsthrope(Lincolnshire)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아이로 할머니 손에 키워지던 그는 농사일에 맞지 않다고 여겨져서 라틴학교로 보내졌다. 1661년부터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의 저작들을 연구했고, 1665년에 학위과정을 마쳤다. 이 시기에 이미 그는 자신의 중력의 법칙과 역학의 단초들을 발견했다. 1669년에 캠브리지의 수학담당 교수로 임명된 후 그는 자신의 근본적인 광학실험들을 시작했다. 1672년에는 왕립협회 회원이 되었고, 이후에는 자신의 색채론(1679년까지)과 천체이론(1680-1684)을 전개시켰다. 그의 최고의 업적은 1687년에 그가 자신이 전개한 미분에 근거하여 출판한 이론 역학의 체계이다. 추측컨대 1693년에 그는 심각한 정신병(신경증)을 이겨냈다. 1699년에는 황실 동전 발행사업의 책임자가 되었고, 런던으로 이사했으며, 같은 해에 파리 학술원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703년부터 왕립협회 의장으로 활동했고, 1704년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확증해 놓았던 광학을 출판했으며, 1705년에는 귀족으로 임명되었다. 세계적인 존경을 받던 그는 1707년 3월 31일 런던의 켄싱턴에서 눈을 감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하 <<원리>>)의 앞부분에서는 뉴턴의 다른 중요한 정의들 외에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가설을 볼 수 있다. 1. 절대적이며 참된 수학적 시간은 그 자체로 흐르고, 본성상 같은 모양이며 어떤 외부대상과도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지속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2. 절대공간은 그 본성상 외부대상과 관련없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지속한다. 이러한 시공간 개념은 200년 이상 일반적인 자연 이해의 토대를 이루어 왔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해서야 비로소 근사치로서만 타당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다음으로 뉴턴은 자신의 역학의 세 가지 공리를 제시한다. 모든 물체는, 작용하는 힘을 통해 다른 상태로 변화하게끔 강제받지 않는 한, 정지의 상태 혹은 일관된 운동을 계속하려 한다(관성의 법칙). 운동의 변화는 작용하는 힘에 비례하며, 그 힘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발생한다(오늘날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이다.). 작용하는 힘은 항상 반작용하는 힘과 동일하다.
이 공리들은 오늘날 "고전역학"이라 이해되는 것의 기초를 이룬다. 이 공리들이 타당한 영역은, 점진적이고 상대적인 수정을 도외시하면, 모든 역학적 과정을 포괄한다. 양자이론을 통해 기술된 원자와 미립자의 과정은 예외이다.
뉴튼의 중력의 법칙은 갈릴레이의 낙하법칙을 천체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일반화시킨 것이며, 지구상의 물체를 천체 역학으로부터 얻어낸 법칙들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 이론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케플러 법칙을 파생시킨 것과 갈릴레이에 의해 규정된 낙하가속도에 이론적 표현과 정확한 수치값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뉴턴의 중력이론은 소용돌이 운동 속에 존립하며 천구를 채우고 있는 측정불가능하고 미세한 물질들이 자신의 궤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는, 당시에 아주 인기를 끌었던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에 맞서 관철되었다.
자신의 중력이론과 고대 이래의 가장 위대한 수학적 발견인 미분을 가지고 뉴튼은 오늘날 "자연과학적 방법"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정초시켰다. <<원리>>에서 그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현상들에서 수학적 법칙을 도출해내고, 이 법칙들에서 다시 더 많은 현상들을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특징짓는다. 뉴튼은 자신의 중력의 법칙이 중력의 "최종 원인"이라 간주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인과적인 것으라 생각했다. 그는 현상들에서 중력의 속성들의 근거를 도출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며, 가설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중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주어진 법칙에 따라 작동하며, 이 법칙이 천체와 바다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면 그로서는 충분했던 것이다.
빛의 본성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뉴턴은 크리스티안 후이겐스와 논쟁을 하게 된다. 후이겐스는 파동의 본성을, 뉴턴은 입자의 본성을 옹호했다. 이 논쟁에서는 입자가설이 곧 관철될 수 있었다. 이 가설에서 빛은 모든 색채에 고유한 광미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광미립자는 발광하는 물체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것들 각각이 물체와 상호작용함으로써 굴절, 반사 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가설 모두 옳다는 것을 안다. 빛은 그거의 양자 본성에 근거하여 관찰되는 현상에 따라 파동의 과정으로도 입자의 흐름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형적인 파동현상인 굴절에 대한 뉴턴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뉴턴이 표명한 기대, 즉 결정론적-인과적 기술은 원칙적으로 모든 자연현상들에 적용가능해야 한다는 것과 절대 시공간 구조에 의해 칸트의 철학적 인식론의 단초들이 뒷받침된다. 이 단초들은 적어도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인식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이로써 19세기에는 특히 독일어권에서 "기술적 학문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하는 시대"의 축복에 대한 진보신앙을 철학적으로 근거지워 주었다.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하 <<원리>>)의 앞부분에서는 뉴턴의 다른 중요한 정의들 외에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가설을 볼 수 있다. 1. 절대적이며 참된 수학적 시간은 그 자체로 흐르고, 본성상 같은 모양이며 어떤 외부대상과도 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지속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2. 절대공간은 그 본성상 외부대상과 관련없이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지속한다. 이러한 시공간 개념은 200년 이상 일반적인 자연 이해의 토대를 이루어 왔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해서야 비로소 근사치로서만 타당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다음으로 뉴턴은 자신의 역학의 세 가지 공리를 제시한다. 모든 물체는, 작용하는 힘을 통해 다른 상태로 변화하게끔 강제받지 않는 한, 정지의 상태 혹은 일관된 운동을 계속하려 한다(관성의 법칙). 운동의 변화는 작용하는 힘에 비례하며, 그 힘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발생한다(오늘날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이다.). 작용하는 힘은 항상 반작용하는 힘과 동일하다.
이 공리들은 오늘날 "고전역학"이라 이해되는 것의 기초를 이룬다. 이 공리들이 타당한 영역은, 점진적이고 상대적인 수정을 도외시하면, 모든 역학적 과정을 포괄한다. 양자이론을 통해 기술된 원자와 미립자의 과정은 예외이다.
뉴튼의 중력의 법칙은 갈릴레이의 낙하법칙을 천체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일반화시킨 것이며, 지구상의 물체를 천체 역학으로부터 얻어낸 법칙들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 이론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케플러 법칙을 파생시킨 것과 갈릴레이에 의해 규정된 낙하가속도에 이론적 표현과 정확한 수치값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뉴턴의 중력이론은 소용돌이 운동 속에 존립하며 천구를 채우고 있는 측정불가능하고 미세한 물질들이 자신의 궤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는, 당시에 아주 인기를 끌었던 데카르트의 소용돌이 이론에 맞서 관철되었다.
자신의 중력이론과 고대 이래의 가장 위대한 수학적 발견인 미분을 가지고 뉴튼은 오늘날 "자연과학적 방법"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정초시켰다. <<원리>>에서 그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현상들에서 수학적 법칙을 도출해내고, 이 법칙들에서 다시 더 많은 현상들을 도출해낼 수 있는 것이라고 특징짓는다. 뉴튼은 자신의 중력의 법칙이 중력의 "최종 원인"이라 간주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인과적인 것으라 생각했다. 그는 현상들에서 중력의 속성들의 근거를 도출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며, 가설을 생각하지는 못했다. 중력이 존재하고, 그것이 주어진 법칙에 따라 작동하며, 이 법칙이 천체와 바다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면 그로서는 충분했던 것이다.
빛의 본성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뉴턴은 크리스티안 후이겐스와 논쟁을 하게 된다. 후이겐스는 파동의 본성을, 뉴턴은 입자의 본성을 옹호했다. 이 논쟁에서는 입자가설이 곧 관철될 수 있었다. 이 가설에서 빛은 모든 색채에 고유한 광미립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광미립자는 발광하는 물체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것들 각각이 물체와 상호작용함으로써 굴절, 반사 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가설 모두 옳다는 것을 안다. 빛은 그거의 양자 본성에 근거하여 관찰되는 현상에 따라 파동의 과정으로도 입자의 흐름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형적인 파동현상인 굴절에 대한 뉴턴의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뉴턴이 표명한 기대, 즉 결정론적-인과적 기술은 원칙적으로 모든 자연현상들에 적용가능해야 한다는 것과 절대 시공간 구조에 의해 칸트의 철학적 인식론의 단초들이 뒷받침된다. 이 단초들은 적어도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인식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고, 이로써 19세기에는 특히 독일어권에서 "기술적 학문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하는 시대"의 축복에 대한 진보신앙을 철학적으로 근거지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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