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프리드리히 빌헬름 쉘링(1775-1854)

이 이상주의적 사상가는 1775년부터 1854년까지 살았다.  그는 튀빙엔의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후 예나, 뷔르츠부르크, 뮌헨, 그리고 베를린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헤겔, 횔덜린에 대한 그의 우정은 각별했다. 이들 셋은 스피노자의 의미에서 범신론적 세계관을 따랐다. 애초에 쉘링은 피히테의 자아철학을 보완하려 했었고, 그런 까닭에 지식론에서 자연철학으로 나아갔다.

그가 경험적 자아의 근저에는 언제나 "절대적 자아"가 있다고 보았다. 절대적 자아는 활동성, 과정, 자유를 향한 노력으로 나타난다. 전체 현실은 절대자와 관계 맺고 있고, 우리는 절대자의 진리에 대해 다만 에감하거나 직관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유기적 생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며, 이 유기적 생은 우리에게 신적 차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 준다. 따라서 자연 전체의 기저에 있는 정신적 원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때문에 우리는 매개와 목적의 관계를  인식한다.

지적 직관을 통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우리 자신을, 다른 한편으로는 신에 대해 알게 된다. 신은 절대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성이다. 우리가 직관적인 방식으로만 신을 볼 수 있는 까닭에 신의 존재에 대한 이성적인 증명을 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철학에서 우리는 궁극적 실재를 직접적으로 직관하는 법을 배우며, 이를 위해 우리는 상징언어를 사용한다. 관념론 철학은 무엇보다 종교적이고 미학적 경험의 기초 위에서 전개된다.

이로써 모든 이성적 담론은 상대화되고, 철학과 종교, 그리고 예술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지적 직관 가운에 우리는 직접적 방식으로 현실을 파악한다. 그런데 절대자는 전개의 과정 안에, 즉 세계에 대한 "자기외화"의 과정 속에 있다. 신 안에는 정신과 자연, 이념과 실재가 서로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은 자석의 두 극과의 관계 혹은 현실의 두 측면이 갖는 관계와 같다.

"더 높은" 물리학은 무게, 빛, 그리고 물질의 본질을 찾으려 한다. 우리의 창조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자연을 전체로서 고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 자연과 사유는 현실의 두 측면이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절대자는 스스로를 전개하며, 그러므로 죽은 물질 속에 이미 생명체의 씨가 배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전개에 참여하는데, 자연은 멈추지 않고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현실의 본질은 따라서 절대적 활동성에서 존립하는 것이다. 현실에는 과정만이 있을 뿐, 실체 따위는 없다. 실제의 사물들은 그저 자연과정의 상대적인 중지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절대자 안에서도 우리는 생성과정의 방해 및 모순의 분열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구별은 다만 표면적인 방식의 구별일 뿐이다. 절대자 속에서 그 두 세계는 융합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절대자가 한편으로는 이념 세계로, 다른 한편으로는 실재 세계로 전개된다.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을 매개로 하면 이념과 실재의 통일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예술만이 영원한 근거에로 나아갈 수 있으며, 예술은 모든 인간에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적 직관과 지적 직관은 항상 서로 보충되어야 한다. 철학은 시문학에 가까이 가야 한다.

이제 이성이 실체를 대체하는데, 이성은 주체와 객체의 완전히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절대적 무한성이 참된 현실로 경험된다. 물질적인 것은 정신적 존재의 다른 측면으로 간주된다. 단순히 물질인 것과 단순히 이념인 것은 있을 수 없다. 물질 세계의 모든 사물 안에는  항상 정신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연은 예술적 유기체로서, 예술작품으로서 전개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쉘링은 신플라톤주의적이고 신비적인 전통 안에서 사유하고 있다.

세계와 우주의 생성은 신적인 근원토대의 생성과정이다. 절대적 일자인 신은 자신을 의식하는 동시에 자신을 절대적 타자로 바라본다. 신적 자기의식의 이념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현실로 생성된다. 이렇게 해서 절대자로부터 현실로의 추락이 발생하며,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사물이 생성된다. 이와 함께 비이성적인 것이 실재의 파악불가능한 기초를 이루며, 실재는 오성으로는 밝혀질 수 없게 된다.

신 안에서 하나의 표상이 발생하는데, 이 표상에서 신은 스스로를 파악한다. 그것은 "신의 말씀"이다. 현실이 비이성적 토대로부터 생성되어 나온 것인 까닭에 현실에는 고통과 어리석음의 어두운 자리들이 존재한다. 우리 인간 안에서도 어두운 근거가 작용하는데, 그것은 신적 통일의 타락으로 드러난다. 신은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밝은 빛으로의 생성 가운데 존재한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인간도 죄의 상태로부터 악에서의 구원으로의 생성 가운데 있다.

신화는 우리 인간의 과거를 열 수 있는 열쇠이다. 자연 종교에서 우리 인간은 신성한 것을  전이성적인 방식으로 정초하는 법을 배운다. 신의 빛은 언제나 존재와 사건 가운데서 은밀한 방식으로만 비추인다. 소극적인 철학은 신의 이념에로 올라가지만, 결코 신의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극적인 철학은 명백한 신성에서 현실로 내려올 줄도 안다.

이로부터 우리는 현실의 본질을 다만 신비적인 방식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신을 직관할 때에야 비로소 현실에 대해 적절하게 발언할 수 있다. 철학에는 항상 미적 이성의 우위에 있다. 미적 이성을 통해 신적인 심연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쉘링은 관념론 철학을 신학-철학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므로 그는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의 생각과 신플라톤주의의 학설을 계승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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