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1927년에 하이데거는 자신의 주저이자 지난 세기에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서가 된 <<존재와 시간>>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가톨릭 신학에서 출발했으며 본질적으로 후설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자신의 사유도정에 있어서 본질적인 단계를 드러내 보였다. 신학으로부터 등을 돌린 후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적 철학에 경도되었다. "사태 자체로!"라는 모토 아래 후설은 그 근거가 물어지지 않은, 그러나 인식을 이끄는 선지식을 폐기하고 근원적인 봄과 이에 따른 본래적인 현실에 대한 전망에 도달하고자 시도하였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스승과는 다르게 의식철학이나 초월철학을 전개시키고 싶어하지 않았고, 해석학적으로 각인된 현상학에 몰두했다. 그에게는 이것이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묻는 것을 뜻했고, 인간의 존재방식 즉 "현존재"에 대한 물음에 있어서 실마리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현존재에 대한 존재의미는 그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 자체 안에 있다. 언급된 반성적 구조에 있어서 하이데거는 주체의 의식행위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현존재는 "세계-내-존재"의 "실존"을 통해 규정되는 것이다. 실천적인 존재수행 안에서  행위연관 속에서 현존재와 관계맺고 있는 세계가 현존재에게 열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존재에게는 사물에 대한 경험과 타인과의 "함께 있음"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이데거의 "현존재분석"이 현존재로 하여금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그의 방식은 해석학적이다.

하이데거에게 존재의 의미는 시간이다. 그는 자연과학적으로 시간을 분절가능한 점들의 연속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성, 현재성, 미래성의 전체로서 생각한다. 하이데거는 특히 죽음의 미래에 주목하는데, 죽음은 그것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존재를 항상 함께 규정하는 것이다. 죽음에 상응하는 것이 불안의 기분인데, 이는 구체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지만 현존재를 관통하며, 현존재의 세계관련을 만들어낸다.

<<존재와 시간>>은 하나의 단편으로 남아있다. 자신의 "현존재분석"을 "기초존재론"으로 이해했던 하이데거는 이 책에서 빠진 부분을 존재이해의 시간성에 대한 철학-사적인 분석의 토대 위에서 작업으로 채우려 했다. 나중에 하이데거는 존재의 시간성과 역사적으로 분화된 전개과정을 다양한 저작들 속에서 발전시킨다. 하이데거 스스로 자신의 초기 철학과 구별되는 (현존재가 아닌) 존재의 역사성을 사유의 중심에 두는 자신의 사유의 "전회"를 이야기한다.

하이데거가 이렇게 자신의 사유를 발전시켜가는 과정을 이끈 것은 무엇보다 횔덜린의 시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한 분석작업이다. 이때부터 하이데거는 인간적 현존재로부터 존재를 이해하지 않고 거꾸로 존재연관으로부터 인간을 이해했다. 그는 유럽 형이상학을 "존재망각"이라는 개념으로 특징지어지는 몰락의 역사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존재자로서의 모든 존재자의 토대를 습관적으로 신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래서 존재를 세계연관의 출현에 대한 역동적이고 역사적인 토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리라는 희랍적 개념을 "탈은폐"로 해석하면서 하이데거는 세계의 의미연관에 대해 역사적이고 상대주의적 시점을 취한다. 말하자면 실재가 개현되는 상이한 시대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것을 통해 또하나의 시원이 이에 따른 다른 세계를 "탈은폐"되게 하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현재의 사유를 낳아놓은 시원이 유럽의 형이상학에 주어졌다고 보았는데, 이 형이상학에는 파르메니데스나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초는 허무주의로 빠져든다. 하이데거는 니체가 이러한 허무주의를 기술했다고 보았다. 현재적 존재사적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계몽주의를 통해 가능해진 기술과 경제를 통해 존재자를 "유용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깔고 하이데거는 근대의 기술을 세계를 오인하게 만드는 "지지대"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유의 과제는 다른 시원을 준비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러한 준비는 존재의 위안을 통해 규정되는 찬가를 쓴 횔덜린과 같은 시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전의 하이데거 수용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나치 가담에 대한 관심이 지배적이었다. 하이데거는 1933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 자리에 취임했다. 1년 후에 이 자리를 사임하기는 했지만, 이후로 평생 동안 자신의 행위에 대해 명백히 거리를 두거나 하지 않았다. 총장의 역할을 차치하고도 이때 하이데거 자신이 정치적으로 동기화되어 쓴 저작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현존재분석에서 도출된 자신의 고유한 규정들을 부분적으로 인류학적으로 독해하며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채색된 인간규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나치 참여에 대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종 해석학적인 그의 언어에 대해서 하이데거가 의구심에 직면했다 해도 그의 사유는 철학 뿐만 아니라 신학에 대해서도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프랑스의 실존철학이 <<존재와 시간>>에 담긴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현재 프랑스의 현상학은 항상 하이데거로 소급해간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도 자신의 해석학을 하이데거와의 연관 속에서 발전시켜 나아갔다. 신학의 영역에서는 불트만이 하이데거의 역사성 개념을 받아들여 자신의 "탈신화화"를 위한 단초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베른하르트 벨테, 요한 밥티스트 로츠, 그리고 칼 라너는 하이데거의 존재사유를 신에 대한 물음과 결합시켰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