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이 실존주의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 사상가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쪽으로 보면 그는 알버트 슈바이처와 친척 관계이다. 할아버지 집에서 두려움을 주는 신의 이미지와 함께 권위주의적 종교를 알게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찌기 그는 종교의 교리와 신앙의 형식을 거부했고, 일생 동안 인간주의적 도덕의 무신론적 형식을 위해 투쟁했다. 독일에 체류하는 기간에 후설의 현상학을 알게 되었다. 그는 현상학의 사유 단초들을 초기 저작인 <<자아의 초월>>에서 확장시켰다.

그 후에는 자신의 주저 <<존재와 무>>에 집약하고 발전시킨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이론에 몰두한다(1943). 이 책에서 그는 세계와 삶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방식을 지지한다. 또한 그에게 현상이란 것은 절대적이고 해석에 독립적인 방식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에게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현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의 의식이 지향하지만 우히의 무의식에 의해 산출되지는 않는 즉자가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현상은 초월적 존재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현상을 초월하는 무언가에 대한 의식의 지향성으로부터 역추론해 가는 것은 존재론적 논증으로 불린다. 따라서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의 선험적 신존재증명에 가까운 데서 움직이는 것이다. "대자"로서 의식하는 자아는 "즉자"에 맞서 있다. 존재와 무의 모순은 우리의 의식 속에서 비로소 산출되는 것이며 전혀 객관적 성질을 가지지 못한다. 실재 자체는 철저히 실증적인 것이요, 그  속에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 자아를 통해 즉자-존재의 중단없는 통일을 파괴하는 균열이 들어선다. 세계와의 통일을 파괴하는 분열의 가능성 속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자유가 놓여 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결정의 자유를 갖도록 선고받았다. 그는 여러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자아의 근원적인 기획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이고 동기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자아는 궁극적인 목적을 기획하고, 이 목적의 문맥 속에서 현재의 사실 혹은 과거의 사건들 혹은 미래에 대한 기대는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된다. 나의 최종적 목적을 상정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특징지으며, 이 존재는 나의 자유의 근원적인 분출과 같다. 인간 자유의 이러한 분출이 인간의 실존을 구성한다.

이제 인간의 실존은 본성으로 소급되지 않는다. 고정된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존은 본질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 속에서 실존을 만들어간다. 그러므로 실존은 개념 속에서는 완전히 파악될 수 없으며, 역동적인 비규정성 속에 머무르는 것이다. 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절대적으로 우연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은 부조리하고 의미없는 것으로 남게 되는데, 그렇지만 현존재의 이러한 무의미함은 종교나 신적 존재와는 아무 관련이 없이 성립하는 것이 틀림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자유로운 실존을 의식한다면, 그는 모든 신과 악마를 저 멀리 던져버릴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동정하고 연민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종교가 이야기하는 수많은 지옥들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들의 객관적인 시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닫혀진 문들로 막힌 공간을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대상이 되며, 이로써 우리의 자율적인 선택가능성을 상실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존재의 의미 없음을 견뎌내어야 한다. 물론 그럴 경우 도덕의 지속적인 규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의 가치와 규범들을 만들어야 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서 사르트르는 역사적 유물론의 기초 위에서 이상주의적 사유를 극복하려 시도했다. 철학적 사유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형성하는 요소로 정립되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비판적 사유의 실천적 결과에 대해 분명히 인식했다. 그러나 현실의 마르크스주의는 자유로운 사유의 자발성을 허용하지 않았던 까닭에 경직되고 말았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는 정치경제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고찰방식을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인식과 결합시키는 것이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종합은 불의한 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현존하는 사회에 대한 모든 비판은 더 정의롭고 인간다운 공생의 형식에 대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이제 사회연구는 개인과 집단의 역할과 의도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적 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점점 더 나아갔으며, 여기에 정신분석학의 근본통찰을 결합시켰다. 프랑스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그의 노선을 따랐다. 사르트르는 종종 볼테르와 비교되곤 하는데, 이는 그가 결정적으로 사회비판적인 의식을 확산시켰고, 1968년 파리 프랑스 학생혁명의 이념적 지도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현실의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와는 분명히 거리를 두었다.

볼테르와 비슷하게 사르트르도 자신의 희곡으로 폭넓은 영향력을 끼쳤다. 이 희곡들은 무신론적이고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을 의도한 것들이었는데, 여기에 속하는 것들로는 <<비행>>, <<닫혀진 문에서>>, <<무덤 없이 죽은 자들>>, <<구토>>(소설), <<악마와 사랑스러운 신>> 등등. 참여문학을 통해서 철학적 이념은 폭넓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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