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 만-플라톤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 역사철학의 근본문제들

역사철학이란 단어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아는 한, 18세기 볼테르에 의해 형성된 단어이다. [그러나] 그 사태는 훨씬 더 오래 된 것이다. 혹은, 더 정확히는, 그 사태들은 훨씬 더 오래되었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역사철학이란 말을 우리는 여러가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inmal ist es so, daß jeder Historiker, jeder der für Mitmenschen und Nachwelt Geschichte schreibt, dies im Zeichen einer vielleicht nur ganz ungefähren, aber doch wirksamen Philosophie tut. 그렇다면 역사철학은 전적으로 역사가의 정신이 될 것이다. 역사가가 그것에 근거하여 사실들으 선택하는 정신과 의지. 왜냐하면 무한히 많은 사실들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그것들을 배열하고 평가하며, 뭔가 읽을 수 있고 의미있는 것으로 연관시킨다. 우리는 19세기의 탁월한 역사들을 철학자라 부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활력에 찬 민족의식, 개개인의 불타는 숭배심과 또 다른 이들의 비웃는 듯한 경멸로 가득한 트라이취케의 저작들과, 고귀하게 완화된, 민족과는 동떨어진, 희망도 없으며 심리적이고 외교적인 랑케의 글들 속에도 철학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낙천적이며 열광적인 영구의 자유주의자 머콜리와, 인간의 행위를 자연과학의 자료로서 취급하여 사소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귀중한 사실들을 주워모으던 프랑스의 염세적 역사가  이뽈리뜨 뗀느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것은 모든 위대하고 또 하찮은 역사가에 대해서도, 저 고대의 역사가와 최신의 역사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사실과 자료를 한갓 배열하는, 플뢰츠 박사의 역사연대표에 대해서만 그것은 통용되지 않을 뿐이다. 몰리에르의 작품 속에서의 그 남자처럼 종종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산문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다른 어떤 이들도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의미에서 신중한 역사가는 불가피하게 사람들이 역사철학적인 것이라 부르는 질문의 범위로 들어서게 된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그러나 확실히 대답되어질 수는 없는 종류의 물음이며, 역사의 이해와 인간의 상황에 있어서 의미있는 것이지만, 지식의 본래적인 한계 저 너머에 놓여있는 그러한 것이다. 무엇이 우연이고 무엇이 필연인가? 개개인의 작용이, 피할 수 있는 개별적 결단들의 결과에 귀속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또 무엇은 아닌가? 역사에는 법칙이 있고, 그것은 반복되는가? 예측가능성은 존재하는가? 우리는 한 시대를 다른 시대와, 하나의 발전과정을 다른 그것들과 어느 정도로 비교할 수 있는가? 왜 전쟁이, 혁명이, 위기가 닥치는가? 개별적 역사적 사건들을 일으키는 힘들, 좁은 의미의 경제, 문화, 종교, 정치는 어떻게 함께 또 서로서로 작용하는가? 이런 종류의 질문을 역사가는 종종 피할 수 없다. 그가 그러한 질문들에 관여한다면, 그는 역사철학의 경계에 이르게 된다.

그가 자신의 고유한 방법을 전체적으로 시험해 본다면, 즉 자신이 알 수 있고 연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연구해야 하고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은 그렇지 아니한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인가에 대해 자문해 본다면, 요컨대 그가 자신의 학문을 전적으로 의심해 보고, 그것을 투명한 기초 위에 새로이 정초하고자 한다면, 그는 역사철학자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학의 인식비판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식비판이란 바로 철학의 한 분야인 것이다. 역사학에 대한 그러한 이론적 정초는 하인리히 리케르트나 베네데토 크로체 같은 전문 철학자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실천적 역사가인 드로이젠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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