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혹은 링반데룽
- 생활정보
- 2008. 2. 15. 13:57
니체의 영겁회귀는 불멸에 대한 사상이다. 그러나 그 불멸은 공허한 형식의 반복이 되기 십상이다.
공허한 반복으로서의 불멸은 흡사 링반데룽처럼 끔찍하다. 사방에 둘러쳐진 벽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감옥에 갇힌 듯한 끔찍하고 생생한 체험을 주는 링반데룽. 무가능성으로서의 세계. 그러나 바로 이 무가능성을 철저히 긍정하는 것이 니체가 우리에게 제시한 처방전이다. 그러나 이 경우, 긍정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추상적이어서 아무런 효과없는 처방전에 불과하다. 긍정의 실제 내용Sachgehalt을 채우는 것은 방법이다. 효과적인 방법의 예로 내가 들고 싶은 것은 로티의 재서술 혹은 툴민의 재맥락화이다. 재서술이나 재맥락화를 나의 용어로 바꾸어 보자면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텍스트, 나아가 모든 말과 생각과 느낌은 항상 다른 어딘가로 이동되어 제 모습을 바꾸어야 존재할 수 있다. 요컨대, 번역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번역이야말로 유일하고 유효한 존재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번역을 잘하는 것이야말로 링반데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다.
니체와 로티를 가져와서, 그리고 고진을 참조하면서 쿤데라와 김연수와 미시마 유키오를 비교해 볼 것.
키워드: 진짜와 가짜, 링반데룽, 불멸, 그리고 경계.
김연수 소설의 중요한 두 가지 키워드 혹은 범주: 지금 & 이후 -- 지금은 순간, 이후는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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