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번역의 이원화를 위하여

자막 번역의 이원화를 위하여

 

덕하

2008-01-15

 영상 번역의 딜레마.. 1

DVD 열어 놓은 가능성.. 2

하나의 능성 매니아.. 2

대중을 계몽할 필요가 있다.. 3

다양한 취향을 위한 맞춤 번역.. 4

 영상 번역의 딜레마

영상 번역에는 출판 번역에는 없는 심각한 딜레마가 있다.

먼저 딜레마가 없는 영상 번역의 경우를 살펴 보자. 해설자가 화면에 나오지 않는 다큐멘터리 영상의 더빙 번역의 경우에는 여기서 이야기할 딜레마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출판 번역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원문을 정확히 번역하면 될 것이다.

화자가 화면에 출현하는 영화 더빙 번역의 경우에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만약 원문을 최대한 정확히 번역한다면 화면 속의 입 모양과 더빙한 목소리 사이에 부조화가 일어날 것이다. 만약 입 모양과 더빙한 목소리 사이의 조화를 우선시한다면 원문을 정확히 번역하기가 힘들 것이다. 순수주의자(?)들은 입 모양과 목소리 사이에 부조화가 있더라도 원문의 뜻을 최대한 살리자고 주장할 것이고, 조화주의자(?)들은 원문의 뜻이 어느 정도 왜곡되더라도 입 모양과 되도록 일치시키자고 주장할 것이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 때문에 누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막 번역의 딜레마를 살펴 보자. 원문의 내용을 전부 자막으로 번역하면 자막이 너무 많아서 어떤 사람은 자막을 다 못 보고 지나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자막을 따라가느라 지칠 것이다. 여기서도 순수주의자(?)와 현실주의자(?) 사이에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순수주의자는 자막을 다 못 읽는 사람이 있듯 말든, 자막을 읽다가 지쳐 영화보기를 포기하든 말든 원문의 뜻을 다 살려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현실주의자는 원문의 뜻이 어느 정도 손실되더라도 자막의 글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현실주의자 사이에도 논쟁은 불가피할 것이다. 도대체 글자 수를 몇 개로 제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양측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으며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

  DVD 열어 놓은 가능성

DVD라는 매체의 출현으로 자막을 여러 개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순수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의견을 모두 반영할 수 있게 되었다. 한글 자막을 두 개 넣으면 된다. 하나의 자막에는 순수주의자의 번역을 넣고 다른 하나의 자막에는 현실주의자의 번역을 넣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소비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돈이다. 자막을 두 개 넣으려면 두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DVD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자본주의하의 DVD 제작자가 자발적으로 두 개의 자막을 넣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무너질 때까지 영화 자막의 이원화(순수주의자의 자막과 현실주의자의 자막)는 불가능한 것일까?  

하나의 가능성 매니아

매니아들은 품질이 좋다면 기꺼이 더 많은 돈을 낸다. 매니아들의 성화로 (상업적으로 실패한) 독립 영화의 DVD 제작이 이루어진 예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우선 소수의 매니아를 겨냥할 수밖에 없는 소위 예술 영화나 전위 영화의 경우 자막의 이원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왜냐하면 매니아들은 자막 읽기의 피곤함을 무릎 쓰고 원문의 의미를 충실히 음미하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을 계몽할 필요가 있다

글자 수의 제한이 없는 출판 번역에서도 엉터리 번역이 판을 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비자의 수준이라는 중요한 요소도 한 몫 하고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독자들은 번역이 얼마나 엉터리로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 그 이유는 사실상 번역 비판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판사는 엉터리로 번역해 놓고도 책을 파는 데 거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있다.

번역 비판이 많아지면 엉터리 번역서에 대한 리콜을 요구하는 독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또한 저작권이 소멸된 번역서의 경우에는 여러 번역서 중 오역이 적은 번역이 잘 팔릴 것이다. 그러면 출판사에서는 좋은 번역을 위해 더 많이 투자할 것이다.

건강(소위 웰빙)에 대한 관심은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눈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농약 등이 적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음식점이나 식품 가공 공장의 비위생적인 관행에 대한 텔레비전 고발이 늘고 있다. 이런 고발들은 음식에 대한 소비자의 눈을 더 높일 것이다.

축약된 영상 번역(현실주의자의 번역)이 어떻게 영화의 맛을 망치는지에 대해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축약 번역 관행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축약 번역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의 맛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이득(덜 피곤함, 읽기가 느린 사람에 대한 배려)을 위해 원문의 뜻을 희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약 번역의 약점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대중들이 양쪽(순수주의적 번역과 현실주의적 번역)의 장단점을 제대로 평가한 후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면 순수주의적 번역에 대한 수요가 더 늘 것이다.

  

다양한 취향을 위한 맞춤 번역

 

나는 천편일률적인 통일에서 세상이 더 많이 해방되기를 바란다. DVD 한글 자막의 이원화는 그런 해방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관에서 외화가 상영될 때에는 모든 상영관이 축약된 자막만 보여주고 있다. 이것도 다원화되면 좋을 것이다. 어떤 상영관에서는 더빙해서 보여주고, 어떤 상영관에서는 순수주의자의 자막 번역을 보여주고, 어떤 상영관에서는 축약 번역된 자막 번역을 보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현재의 상황을 살펴볼 때 아직 꿈만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것을 꿈꿀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자국어 영화의 경우에도 특수한 안경을 쓰면 자막을 볼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물론 그 나라도 자본주의 국가이며 이윤이 최고인 나라다. 자본주의에서도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현재의 한국에서도 이미 자그마한 다양화가 이루어져 있다. 비디오 가게에 가면 어린이를 위한 만화의 경우 자막이 있는 비디오와 더빙된 비디오가 따로 있다.

http://cafe.daum.net/9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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