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독서

목표에 도달하려는 욕망없이 멀리 내다볼 수 있는자, 이것이 현명한 자의 정의이다. 목표가 설정되는 순간 그것은 해체되며, 해체의 위험 때문에 시선을 거두는 자는 결국 시선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목표를 대체하는 것은 흔적인데, 흔적은 어디에건 새겨지기 마련이며, 다만 시선을 잃어버린 자만이 흔적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흔적들을 잘 보듬고 갈무리하는 자의 공부만이 전진하는 공부이며, 전진하지 못하는 공부는 추악하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완벽을 기하는 자의 공부는 시선을 잃어버린 자의 공부이며, 이것은 가장 위험한 자기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 끝없는 퇴행인 것이다. 독서가 전략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공부의 본질이 전진에 있기 때문인데, 목표가 고정되거나 시선이 닫힐 경우 그러한 전진은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완벽한 독서는 곧 망각, 무독서에 다름없다는 무서운 진리는 독서하는 자에게 있어서 최고의 금언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전진은 앞으로의 전진만이 아니라 뒤로의 전진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벤야민을 비틀어 인용하자면, 이 말을 비유의 의미없이 명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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