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엠마누엘 레비나스(1906-1995)
- 생활정보
- 2007. 8. 21. 01:48
엠마누엘 레비나스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타인을 사유의 중심에 두는 사상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때 타인은 자아와, 타인을 자아의 질서구조에 통합시키려는 시도를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다. 자아가 세계의 중심에 정초됨으로써 구축하는 총체성은 마주 놓여 있는 얼굴 앞에서 좌초한다. <<총체성과 무한>>이라는 첫 번째 주저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타인의 얼굴과 함께 무한성 및 자아의 초월이 갑자기 등장해서 타인에 대한 무제한적 점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나와 만나는 얼굴은 내가 자발적으로 떠맡지는 않았을 타자에 대한 책임 앞에 나를 세운다. 자아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웃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에 따르면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이 책임은 내가 무언가에 대하여 찬성 혹은 반대를 결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단초로써 그는 존재의 통일에 대한 사상에 의해 본질적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보는, 그리스적 사유에 의해 규정된 서구의 철학에 대하여 반대한다. 이에 반해 그가 보기에 제일철학으로서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학으로 인정되는 유태 사상을 철학을 위해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사유는 규범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당위의 요청이 어떻게 타당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사유이다.
전기적으로 보면 윤리학으로 규정되는 그의 철학은 자신의 유태계 가족과 그 자신도 직접 겪어야 했던 대량학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전체주의적인 것으로 변질되기 쉬운 총체화하는 사유를 행했지만, 타인의 얼굴에 마주해 있는 얼굴은 자아에게 "너는 나를 죽이면 안돼"라는 명령을 주고 그렇게 해서 중심적인 자아의 자기관계를 분쇄함으로써 그러한 총체성을 방해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사사했던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이 자아에 고정되어 있다고 보며 반대했다. 레비나스는 이들의 철학적 단초들에서는 타자의 타자성이 솟아나온다고 본 반면, 역시 그가 영향을 많이 받았던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의 철학에서는 지향성이라는 중심개념이 극복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마르틴 부버와는 다르게 대화의 철학을 전개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나와 너의 관계의 역전가능성 속에서는 자아와 타인 간의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소여가 방기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그는 자아는 다른 인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자아는 그 자신이 너 혹은 타인으로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그러한 것은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자아는 말하자면 타인을 위한 "신체보증인" 및 "볼모"에 불과하다. 타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자아는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본래적으로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러한 윤리적 기본약점은 결코 한 명의 타인만이 자아에 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맞서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제거될 수 있다. 자아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떠맡게 된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면, 요구들은 제한되어야 하고 고유한 행위에는 질서가 존재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아는 과도한 요구에 머물러 있으며, 그래서 그것은 실제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두 번째 주저<<존재의 피안 혹은 존재와는 다르게 발생하는 것>>이 보여주는 그의 후기 철학에서 레비나스는 자신의 근본사상을 더 발전시키고 심화한다. 그가 아직은 매우 형이상학에 의해 각인되었다고 본 <<총체성과 무한>>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자신의 관심사에 더 잘 상응하게 만들고자 애썼다. 이는 그로 하여금 전통 철학의 존재론적 용어를 극한으로 밀고나가 부분적으로는 난관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아가 언어도 그의 사유의 중심적 내용이 된다. 레비나스는 말해진 것과 말하기를 구별한다. 인간이 언어를 다룰 수 있는 한 말해진 것이 언어를 생각하는 반면, 말하기는 언어의 역동성을 구성하고 말하는 자에 대한 끊임없는 도발인 쉼없는 순간이다. 레비나스가 유태사상을 철학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만 유태 사상에 결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서와 탈무드도 열심히 연구했다. 예컨대 그는 주석을 단 수많은 탈무드 모음집을 출간했다. 신에 대한 물음은 그의 신학적 성찰에만 제한되지 않으며, 철학에 있어서도 중심점을 차지한다. 이와 관련하여 타인과의 마주침에서 초월적인 것의 갑작스런 등장은 그에게 본질적인 것이었다. 레비나스는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지워졌지만 타인에 대한 윤리적 요청 속에서 신이 사유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신은 때때로 인간의 얼굴과 마주하며, 신의 만남은 인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레비나스의 사상은 무엇보다 자아와 타인의 차이에 대한 강조, 그리고 그것의 윤리적 성격에 대한 강조 때문에 현상학적 철학에서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와 함께 당위의 물음에 대한 정초 뿐 아니라 사회철학과 종교철학을 위한 토대도 놓이게 되었다. 또한 그래서 오늘날 레비나스는 기독교도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레비나스는 특히 장 프랑수와 리오타르와 자크 데리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단초로써 그는 존재의 통일에 대한 사상에 의해 본질적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보는, 그리스적 사유에 의해 규정된 서구의 철학에 대하여 반대한다. 이에 반해 그가 보기에 제일철학으로서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이 아니라 윤리학으로 인정되는 유태 사상을 철학을 위해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의 사유는 규범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당위의 요청이 어떻게 타당할 수 있는가를 물어보는,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사유이다.
전기적으로 보면 윤리학으로 규정되는 그의 철학은 자신의 유태계 가족과 그 자신도 직접 겪어야 했던 대량학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전체주의적인 것으로 변질되기 쉬운 총체화하는 사유를 행했지만, 타인의 얼굴에 마주해 있는 얼굴은 자아에게 "너는 나를 죽이면 안돼"라는 명령을 주고 그렇게 해서 중심적인 자아의 자기관계를 분쇄함으로써 그러한 총체성을 방해한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사사했던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이 자아에 고정되어 있다고 보며 반대했다. 레비나스는 이들의 철학적 단초들에서는 타자의 타자성이 솟아나온다고 본 반면, 역시 그가 영향을 많이 받았던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의 철학에서는 지향성이라는 중심개념이 극복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마르틴 부버와는 다르게 대화의 철학을 전개하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나와 너의 관계의 역전가능성 속에서는 자아와 타인 간의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소여가 방기되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그는 자아는 다른 인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자아는 그 자신이 너 혹은 타인으로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그러한 것은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자아는 말하자면 타인을 위한 "신체보증인" 및 "볼모"에 불과하다. 타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자아는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본래적으로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러한 윤리적 기본약점은 결코 한 명의 타인만이 자아에 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맞서 있다는 사실을 통해 제거될 수 있다. 자아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떠맡게 된 책임을 지며 살아야 한다면, 요구들은 제한되어야 하고 고유한 행위에는 질서가 존재해야 한다. 그럼에도 자아는 과도한 요구에 머물러 있으며, 그래서 그것은 실제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두 번째 주저<<존재의 피안 혹은 존재와는 다르게 발생하는 것>>이 보여주는 그의 후기 철학에서 레비나스는 자신의 근본사상을 더 발전시키고 심화한다. 그가 아직은 매우 형이상학에 의해 각인되었다고 본 <<총체성과 무한>>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자신의 관심사에 더 잘 상응하게 만들고자 애썼다. 이는 그로 하여금 전통 철학의 존재론적 용어를 극한으로 밀고나가 부분적으로는 난관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아가 언어도 그의 사유의 중심적 내용이 된다. 레비나스는 말해진 것과 말하기를 구별한다. 인간이 언어를 다룰 수 있는 한 말해진 것이 언어를 생각하는 반면, 말하기는 언어의 역동성을 구성하고 말하는 자에 대한 끊임없는 도발인 쉼없는 순간이다. 레비나스가 유태사상을 철학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만 유태 사상에 결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서와 탈무드도 열심히 연구했다. 예컨대 그는 주석을 단 수많은 탈무드 모음집을 출간했다. 신에 대한 물음은 그의 신학적 성찰에만 제한되지 않으며, 철학에 있어서도 중심점을 차지한다. 이와 관련하여 타인과의 마주침에서 초월적인 것의 갑작스런 등장은 그에게 본질적인 것이었다. 레비나스는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지워졌지만 타인에 대한 윤리적 요청 속에서 신이 사유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의 "흔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신은 때때로 인간의 얼굴과 마주하며, 신의 만남은 인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레비나스의 사상은 무엇보다 자아와 타인의 차이에 대한 강조, 그리고 그것의 윤리적 성격에 대한 강조 때문에 현상학적 철학에서 중요한 것이 되었다. 이와 함께 당위의 물음에 대한 정초 뿐 아니라 사회철학과 종교철학을 위한 토대도 놓이게 되었다. 또한 그래서 오늘날 레비나스는 기독교도들에게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레비나스는 특히 장 프랑수와 리오타르와 자크 데리다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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