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장 프랑수와 리오타르(1924-1998)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는 책으로 포스트모던 논의를 촉발했고 이로써 지난 세기의 마지막 20년을 달구었던 중요한 철학적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본래 이 저작은 퀘벡 대학의 위탁연구로 진행된 것이었다. 리오타르는 이 분석작업에서 고도로 발전한 사회의 정신의 풍경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어째서 아직 보편적 의식에 이르지 못했는가를 서술했다. 근대 이후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 특히 그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근대 계몽주의 사유의 근저에 놓여 있는 원리적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리오타르는 다원적 사회들에 있어서는 사회 전체를 위한 통일적 의미구조를 제공해줄 수 있는 통합적 체계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확언한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그러한-그의 표현을 따르면- 메타서사의 시대는 지나갔다. 그 자리에는 이제 작고 다소간 폐쇄적인 의미구조가 들어서는데, 이는 단지 부분영역에 대해서만 통합적 기능을 가진다. 상이한 영역들을 지양하는 합의를 더 이상 도출해 낼 수 없게 하는 불연속성과 단절이 확실시된다. 통일성과 전체성의 자리에 스스로 조절하는 영역들의 다수성이 증장하며, 이 영역들은 부분적으로 서로 어긋나며 모순되기도 한다.

포스트모던은 이로써 이질성을 통합하려 하는 통일성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대하는 복수성의 수용으로 규정되어진다. 리오타르는 메타서사의 종언을 선언함으로써 단순한 자의성을 옹호했을 뿐이라는 비난에 직면했음을 알았다. 거짓된 통일화에 반대했기 때문에 리오타르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될 수 없는 것이 고유한 권리를 갖도록 돕는 것이었다.

리오타르는 자신의 주저 <<갈등>>에서 포스트모던의 개념을 더 다듬어간다. 일자와 다자에 대한 물음을 언어철학적으로 파악한다. 그는 자율적 규칙체계로 이해되는 다양한 언어유희 및 담론양식에서 출발한다. 그의 관심사는 내부적으로 질서지어져 있는 다양한 담론양식을 하나의 상위질서 규범에 종속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하위체계를 거느린 고유한 규범체계에 대한 앞선 지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이한 언어유희는 서로 간에 규칙이 없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담론체계는 동질적 전체로 통합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예측불가능한 것을 산출하는 언어의 개방성이 억압될 것이다. 여러 담론양식들은 서로 "갈등" 상태에 있다. 하위질서나 결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하나의 담론양식에서 다른 것으로 전환하려 할 때, 이러한 이행을 규정하는 규칙은 없다. 리오타르에 따르면 철학도 하나의 체계에 종속되어서는 안되며, 따라서 총체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철학의 과제는 숨겨져 있는 규칙을 추적하고 "갈등"을 진행시키는 것이다.

그의 이해에 따르면 철학함이라 정치적으로 참견하는 것에 속하는데, "갈등" 역시 사회문제이자 정의에 관한 문제이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주의와 폭력"이라는 마르크스주의 단체에 속해있었다. 리오타르에게는 보편 이념을 위해 참여하는 것이 지식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에 반대하는 이질적 사유범주들 간의 차이와 구별을 유지하는 "철학적 정치학"이 중요한 것이었다. 정의를 근거로 정치학은 "갈등"을 우대해야 하고, 하나의 정당의 우월적 지배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1989년 이후 리오타르는 자본주의가 전세계를 규정하는 경제체계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의 관심사는 이러한 틀 내에서 차이화하는 구조들을 균질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지속을 배려하는 것이다.

리오타르의 철학적 방법은 자신의 글쓰기의 넓은 폭 안에서 철학사의 중요한 텍스트를 다시 읽고, 이 텍스트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어내려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의 사상은 종종 그러한 재독서에서 발생하며, 재독서를 통해 부분적으로 그는 철학적 전통에 대한 강력한 비판에 성공한다. 예를 들어 그는 하이데거가 존재망각의 역사에 대한 비판가로서 나치의 야욕에 대해 항의를 제기하거나 망각의 위험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특징을 가진 유태적 사유를 제거할 수 없는 처지였다고 타당한 비판을 제기했다.

에드문트 후설과 모리스 메를로-퐁티, 그리고 임마누엘 칸트에 대해 검토하면서 리오타르는 일반적 지각이론이나 예술이론으로 확장되는 자신의 고유한 미학적 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때 숭고의 문제가 그의 사유의 중심을 차지한다. 나아가 리오타르는 항상 개별적 예술가의 창조행위와 이론적 토대에 대해 몰두했다. 예를 들면 1985년 파리 퐁피두 센터의 거대한 예술전시회 <<레 임마테리오>>를 기획했다. 이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동시대의 예술을 그 정신적 조건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예술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활동성은 정의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은 "갈등"뿐이라는 확신에 의해 담지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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