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데이비드 흄(1711-1776)

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는 1711년부터 1776년까지 살았다. 그는 경험주의적 세계관과 합리주의적 세계관 사이에서 중간 입장을 취하려 했고, 심리학적 물음들을 철학으로 편입시켰다. 이로써 그는 전통적 인식론에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의 관념의 기저에는 언제나 인상이 놓여 있지만, 이 인상은 결코 자극의 결과는 아니다. 감각경험은 우리에게 소재를 가져다 주며, 우리는 사유를 통해 이를 확장시킨다.

관념들의 결합은 사유된 것의 존재와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함과 지혜의 경험이 모든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 신의 관념을 형성한다. 사실들에 관계되는 원인과 결과는 경험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 원인에 대한 인식은 이성으로부터 나오지 않으며 항상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생겨난다. 우리는 인과 법칙을 상정하는 사유 습관을 통해 반복되는 경험의 내용을 결합시킨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자연현상들을 소수의 원인들에만 귀속시킨다.

인과성은 경험의 영역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들에서 초월적 현실을 추론해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끌어낼 수 없다. 종교적 진리는 결코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종교적 교리는 우리 감정의 욕구들로부터 심리학적 필연성과 함께 발생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무엇보다도 불안과 궁핍, 그리고 희망과 같은 감정의 결과이다.

흄은 모든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비판했고, 경험적인 토대 위에서 세우려 했다. 중세철학이 여지껏 "실체"라고 부른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통하여 통일된 단순한 표상의 묶음에 다름 아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심리적 욕구를 따른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이라 부른 것은 지속적인 표상들과 변화하는 감정들의 다발이다. 종래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이 심리학적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윤리학적으로 흄은 결정론자이다. 그가 보기에 모든 인간의 행위는 우리의 기질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순전한 사유 혹은 순수 이성으로부터는 어떠한 행위도 생겨나지 못한다. 이성은 우리에게 참된 것과 거짓된 것, 자연스러운 것과 타락한 것에 대해 가르쳐준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는 늘 우리의 성향과 감정, 그리고 정념에서 발생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회에서 정의와 약속에 대한 신뢰가 불의와 폭력을 이겨낼 것이라고 믿는다.

인식론에 있어서 흄은 온건한 회의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우리의 이성은 원칙적으로 오류를 저지르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통제를 통해 기만당할 위험을 줄일 수 있기는 하지만 외부세계에 대한 판단은 결코 확실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항상 관념이지, 관념 뒤에 있는 사물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외부세계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개연성에 이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이론적 회의주의의 입장이다.

항상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까닭에 우리는 실천적인 근거로 회의주의를 극복한다. 경험적 사태들에 대한 판단은 결코 확실하지 않다. 개념적 관계(논리와 수학)에 대한 판단만이 확실하지만, 이 판단들은 경험적 사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학문에 있어서  형이상학과 확고한 신앙을 위한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우리의 인식의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 근거지움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표상과 판단이 사유에 독립적인 사물에 관계한다는 것을 우리는 정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표상의 객관성에 대한 믿음이 성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식론은 인지심리학을 통해 보충된다. 외부세계의 실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인상들 및 인상들과 표상들의 결합이 강렬하고 생생한 까닭에 생겨난 것이다. 실재에 대한 모든 주장은 우리의 표상과 관련해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경험에 독립적으로 실재에 대한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신의 존재 혹은 초월적 존재에 대해 확실히 단언할 수 없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판단은 그저 우리의 믿음을 표현할 뿐이다. 경험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사물은 표상의 복합체이며, 이는 (표상들의) 연합과 인상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은 의식 내용들이 상대적으로 지속하는 복합체, 표상들의 묶음에 다름 아니다. 또한 자연의 인과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우리의 표상들이 연합한 것에 근거한다.

우리의 인위적인 덕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통찰에 기반한다. 그러나 모든 덕은 우리의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공감과 관련되어 있다. 유용성에 대해 숙고하는 것만으로는 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국가질서는 공공복리와 개인의 복지를 위한 관심 속에 있는 것이다. 강한 자들은 국가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관철시키며, 법은 재산과 계약을 보장한다. 그러나 국가 안에 절대적인 권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권위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으로 시민들이 부여한 것이다.

신에 대한 믿음은 불안과 궁핍과 희망의 감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으며, 신의 존재를 학적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다. 다수의 신들에 대한 경외는 유일신 사상보다 인간에게 더 많은 관용을 갖게 한다. 악의 존재에 대한 물음도 종교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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