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오귀스트 콩트(1798-1857)
- 생활정보
- 2007. 7. 29. 14:39
콩트는 실증주의 사상의 선구자요 사회학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수학을 공부했고, 파리에서 가르쳤다. 그가 보기에 근대 시대에는 경험과 관찰에 의해 뒷받침되는 "실증철학"을 위한 자리가 많이 있었다. 정확한 자연과학적 방법을 신뢰했고, 형이상학적 사변과 완전히 결별했다. 모든 정확한 지식은 물리학에 근거하기 때문에 물리학적 철학이 사유가능하다.
이제 인간 사회의 발전과정을 정확하고 경험적인 방법으로 모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회생리학"을 통해 미래의 발전을 예측할 수도 있다. 자연현상은 유일한 실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사실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우리의 학문적 법칙은 사실들의 반복을 통해 생성된다. 발전하는 지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세계와 삶에 대한 권력을 더욱 많이 갖게 된다.
인간의 문화는 거대한 세 단계를 따라 진행된다. 신학적 시대에는 사람들이 사물들 뒤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 정신적 존재, 신, 그리고 악마와 인격적 신이 있다고 믿었다. 형이상학적 시대에 사람들은 종교의 내용을 영원한 이념과 본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이상학적 사변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시대에 이르러서야 인류는 성장하게 되어, 유년의 꿈과 사변에서 깨어났다.
이제 사람들은 현실로 눈을 돌렸고, 경험적인 확고한 기초 위에 서게 되었다. 종교와 형이상학은 내버려 두었다. 이제 그들에게 학문에 있어서는 "사실"만이 중요해졌고, 이로써 새로운 세계상이 생성되고 있었다. 상이한 정확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많은 학문들이 형성되었다. 가장 정확한 학문은 수학이며, 따라서 수학은 다른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었다.
물리학은 경험적 시험가능성을 수학적 측정과 결합시켰다. 천문학은 수학을 따르고, 화학은 경험적 연구를 수학과 결부시킨다. 살아있는 유기체를 다루는 생물학에서는 인식의 정확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인간 사회에 대한 학문(사회학)에 있어서는 이 정확성이 더 줄어들지만, 경험적으로 시험가능한 법칙들을 발견해 낼 수는 있다. 이 새로운 학문은 "사회물리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심리학은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과정의 기초 위에서 작용하며, "영혼" 따위는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연과학적이고 실험적인 심리학이 가능해져야 한다. 사회학은 인간 사회의 동력과 그 과정을 연구한다. 이제 인간의 삶 속에서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노력이 상정된다. 이 두 가지가 대략 같은 무게일 경우 사회가 잘 발전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노동과 비판적 이성을 통해 진보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성의 능력을 펼쳐야 하며, 이로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신학적 시대에는 물리적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했고, 주인과 노예로 구성된 사회가 존재했다. 신들은 이러한 지배를 정당화 해주었다. 형이상학적 시대에는 이른바 "자연법"이 신 대신 인간을 다스렸다. 이러한 개념 뒤에는 공직자와 법률가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들의 규범을 영원한 법에 관련시켰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시대에는 학문, 기술, 경제의 전문가들이 지배한다. 사회학자들과 기술관료들은 최고의 권위를 누린다. 그러나 또한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국가에는 인간성의 도덕적 규칙이 통용되고, 윤리학은 지식의 검열관으로 이해된다. 국가의 권력은 경제, 기업, 은행,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있다. 학자들과 관리들이 종래의 왕과 성직자, 귀족들을 대체한다. 이제 새로운 사회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성과 경험의 힘을 믿으며 이로써 끊임없이 그들의 삶의 조건과 기회들을 개선시켜간다. 자연과학적 세계상에서는 모든 것이 실험적 학문의 방법과 성과에 따라 구성된다. 그러나 후기철학에서는 생각을 바꾸어, 비판적 지성을 상대화했으며 인간 삶에 있어서 감정에 더 중요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신비적 종교적 저작들을 썼으며,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의 후예들>>을 읽었다. 이제 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절정에 달하는 종교의 품격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기독교의 인간적 가치들이 실현되는 새로운 실증적 종교가 시작되기를 꿈꾸었다.
사랑과 질서가 이 종교의 원리이며, 독단적 교리는 학문적 인식으로 대체된다.
인간성은 신성의 자리에 들어설만큼 위대한 본질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인간성과 우주를 경외해야 한다. 위대한 학자는 새로운 성자로 간주되었고, 죽은 친구들은 "수호천사"로 숭배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원이 지어지고, 결혼은 축복받는다. 콩트는 스스로를 새로운 세계종교의 거룩한 성직자라 여겼다. 실증주의가 모든 신앙고백을 대체해야 한다.
기독교 없이 학문적 전문가들과 보편적 인간성의 도덕을 가진 세계적인 보편주의Katholizismus가 추구되었다. 신화와 형이상학은 더 이상 살아있지 못했고, 순수한 학문적 종교가 인간 이성의 능력을 체험적 감정과 결합시킬 것이다. 이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따라서 심오한 신비가 학문을 보충해야 한다.
실증주의는 독일이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헤겔적 몽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 세계, 삶,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정확한 방법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특히 자연과학자들이 이러한 모델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고, 20세기에 그것은 신실증주의로 지속되었다.
이제 인간 사회의 발전과정을 정확하고 경험적인 방법으로 모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회생리학"을 통해 미래의 발전을 예측할 수도 있다. 자연현상은 유일한 실재이며, 따라서 우리는 사실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 우리의 학문적 법칙은 사실들의 반복을 통해 생성된다. 발전하는 지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세계와 삶에 대한 권력을 더욱 많이 갖게 된다.
인간의 문화는 거대한 세 단계를 따라 진행된다. 신학적 시대에는 사람들이 사물들 뒤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힘, 정신적 존재, 신, 그리고 악마와 인격적 신이 있다고 믿었다. 형이상학적 시대에 사람들은 종교의 내용을 영원한 이념과 본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형이상학적 사변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시대에 이르러서야 인류는 성장하게 되어, 유년의 꿈과 사변에서 깨어났다.
이제 사람들은 현실로 눈을 돌렸고, 경험적인 확고한 기초 위에 서게 되었다. 종교와 형이상학은 내버려 두었다. 이제 그들에게 학문에 있어서는 "사실"만이 중요해졌고, 이로써 새로운 세계상이 생성되고 있었다. 상이한 정확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많은 학문들이 형성되었다. 가장 정확한 학문은 수학이며, 따라서 수학은 다른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었다.
물리학은 경험적 시험가능성을 수학적 측정과 결합시켰다. 천문학은 수학을 따르고, 화학은 경험적 연구를 수학과 결부시킨다. 살아있는 유기체를 다루는 생물학에서는 인식의 정확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인간 사회에 대한 학문(사회학)에 있어서는 이 정확성이 더 줄어들지만, 경험적으로 시험가능한 법칙들을 발견해 낼 수는 있다. 이 새로운 학문은 "사회물리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심리학은 물리학적, 화학적, 생물학적 과정의 기초 위에서 작용하며, "영혼" 따위는 이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연과학적이고 실험적인 심리학이 가능해져야 한다. 사회학은 인간 사회의 동력과 그 과정을 연구한다. 이제 인간의 삶 속에서 한편으로는 이기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타적인 노력이 상정된다. 이 두 가지가 대략 같은 무게일 경우 사회가 잘 발전할 수 있다.
모든 사회는 노동과 비판적 이성을 통해 진보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성의 능력을 펼쳐야 하며, 이로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신학적 시대에는 물리적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했고, 주인과 노예로 구성된 사회가 존재했다. 신들은 이러한 지배를 정당화 해주었다. 형이상학적 시대에는 이른바 "자연법"이 신 대신 인간을 다스렸다. 이러한 개념 뒤에는 공직자와 법률가들이 있었고, 그들은 그들의 규범을 영원한 법에 관련시켰다.
그러나 실증주의적 시대에는 학문, 기술, 경제의 전문가들이 지배한다. 사회학자들과 기술관료들은 최고의 권위를 누린다. 그러나 또한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국가에는 인간성의 도덕적 규칙이 통용되고, 윤리학은 지식의 검열관으로 이해된다. 국가의 권력은 경제, 기업, 은행, 그리고 자본가들에게 있다. 학자들과 관리들이 종래의 왕과 성직자, 귀족들을 대체한다. 이제 새로운 사회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성과 경험의 힘을 믿으며 이로써 끊임없이 그들의 삶의 조건과 기회들을 개선시켜간다. 자연과학적 세계상에서는 모든 것이 실험적 학문의 방법과 성과에 따라 구성된다. 그러나 후기철학에서는 생각을 바꾸어, 비판적 지성을 상대화했으며 인간 삶에 있어서 감정에 더 중요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신비적 종교적 저작들을 썼으며,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의 후예들>>을 읽었다. 이제 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서 절정에 달하는 종교의 품격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기독교의 인간적 가치들이 실현되는 새로운 실증적 종교가 시작되기를 꿈꾸었다.
사랑과 질서가 이 종교의 원리이며, 독단적 교리는 학문적 인식으로 대체된다.
인간성은 신성의 자리에 들어설만큼 위대한 본질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인간성과 우주를 경외해야 한다. 위대한 학자는 새로운 성자로 간주되었고, 죽은 친구들은 "수호천사"로 숭배될 수 있었다. 새로운 사원이 지어지고, 결혼은 축복받는다. 콩트는 스스로를 새로운 세계종교의 거룩한 성직자라 여겼다. 실증주의가 모든 신앙고백을 대체해야 한다.
기독교 없이 학문적 전문가들과 보편적 인간성의 도덕을 가진 세계적인 보편주의Katholizismus가 추구되었다. 신화와 형이상학은 더 이상 살아있지 못했고, 순수한 학문적 종교가 인간 이성의 능력을 체험적 감정과 결합시킬 것이다. 이성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따라서 심오한 신비가 학문을 보충해야 한다.
실증주의는 독일이상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헤겔적 몽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한다. 세계, 삶, 그리고 인간의 내면세계를 연구하기 위한 정확한 방법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특히 자연과학자들이 이러한 모델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고, 20세기에 그것은 신실증주의로 지속되었다.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