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칼 야스퍼스(1883-1969)

칼 야스퍼스는 1883년 2월 23일 올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김나지움을 다녔다.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 바꾸었다. 19세때 치료의 가망이 없는 폐병을 앓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병의 치료방법이 개선되었고, 이에 따라 죽음에의 위험이 줄어들었다. 야스퍼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향수병과 범죄에 대한 박사논문으로 의학공부를 마쳤다. 1909년부터 그는 그곳 대학의 정신병동에서 연구조교로 일했으며 이후에 곧 정신분석학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해 1922년에는 철학교수직에 임명된다. 그의 아내가 유태계 혈통이었고 그의 철학이 나치즘의 세계관에 배치되는 것이었던 까닭에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1933년 이후 그는 대학의 업무에서 배제되었고 1937년에는 강제퇴직을 당했으며 1938년에는 출판금지조치를 겪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재건에 참여한다. 1948년에는 바젤대학의 초빙을 받아들여 1969년 2월 26일 숨을 거둘 때까지 왕성한 출판활동을 벌였고 수많은 주요저작들을 집필한다.

야스퍼스는 마르틴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의 위대한 실존주의 철학자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그의 철학은 본질적인 점에서 하이데거의 그것과 차이를 보이는데, 그 가운데 특히 그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실존철학에서 이성의 철학과 정치학 쪽으로 전환하는 사유의 단계를 밟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의 철학함은 하이데거의 사유 안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인문주의의 자유로운 정신을 통해서 두드러진다. 그가 기여한 철학의 영역은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일반정신병리학>>이라는 책으로 그는 정신의학에 있어서의 일급의 지식이론적 저작 중 하나를 창조했다. 정신병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뇌생리학적이고 신경생리학적인 단초에만 일방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 공인된 그의 업적이다. 정신병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그는 자연과학의 인식모델에 정향되어 있는 방법들만큼이나 기술적인 이해의 심리학에 대한 정신과학적인 방법 또한 중요하다고 보았다.

지식이론에 있어서 야스퍼스는 (막스 베버를 추종하여) 이해-설명의 이분법에 대해 논의했고, 인문과학의 범위에 대한 시험적 숙고를 펼쳤다. 과학의 가치중립성과 가치의존성이란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상응하는 수준에서 논의했다. 과학, 철학, 그리고 종교를 구획짓는 경계에 대한 물음은 평생토록 그를 사로잡았으며, 그에 대한 숙고가 그의 작품 안에 많이 녹아들어 있다.

인간 실존의 의미에 대한 물음과 관련하여 야스퍼스는 철학적-인류학적 개념을 구상했는데, 이 개념 안에서는 인간 존재가 실현되는 서로 다른 층위가 구별된다. 객관적이며 경험적으로 연구가능한 층위(신체적, 오성적,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와, 대체불가능한 개체성과 자유의 비경험적이며 실존적인 층위.

각각의 고유하고도 대체불가능한 "실존" 및 "본래적 자기존재"의 실현에 대한 원리적 가능성으로서 야스퍼스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 현존의 한계상황(죽음, 고통, 전쟁, 죄)의 체험과 타인과의 소통이다.

문화철학과 역사철학에 대한 야스퍼스의 고유한 공헌은 인류사의 문화적 전환시대에 대한 테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야스퍼스가 기원전 200년에서 기원후 800년으로 상정하는 이 시기에 세계의 여러 지역(팔레스타인, 그리스, 이란, 중국, 그리고 인도)에서 각기 독립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인류의 계속적 발전을 특징짓는 문화적 가치와 전통들이 생겨났다.

종교철학과 형이상학에 있어서 야스퍼스의 초월 개념, 편재적 존재와 철학적 신앙에 대한 개념은 활발히 논의된 사상이다. 원칙적으로 대상화가 불가능한 초월자(절대적 존재, 편재하는 존재, 신)를 신앙적 유신론과 무신론 및 불가지론 사이의 중간입장과 관련지으려는 그의 시도는 계속해서 그의 종교철학적 이념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유발시켰다.

야스퍼스의 이성의 철학과 정치 철학에 대해서는 전인류가 정치적-실존적으로 한계상황에 처해 있다는 테제가 중심적인데, 이는 근대 기술의 발달에 따라 두 가지 파멸적인 가능성이 현실화 되었기 때문이다. a) 핵폭탄을 통한 인류의 자기파멸과 b) 전세계적인 전체주의의 확립. 그래서 야스퍼스는 자신의 철학함을 통해 인간적-정치적 목표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단순한 권력정치를 인간적이고 이성의 통제에 따르는 정치로 "전환"시키는 것,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정치적 질서의 표상으로서 자유롭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의 이념에 일관되게 정향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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