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살무늬토기의 추억-김훈

몸의 저 깊은 오지에서 나의 몸과는 무관하게 살아 있는 짐승이 어두움의 벽을 향해 내지르는 발길질처럼 구역질은 난데없는 복받침의 파장으로 창자를 거꾸로 타고 올라와 목젖을 눌렀고, 출동대기하던 간밤에 먹은 라면과 김치가 창자를 따라 내려가면서 삭는 냄새의 끄트머리가 구역질을 따라서 목젖을 넘어왔다. 입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구역질을 어금니를 응물어 몸 속으로 밀어넣으면 구역질은 몸의 어둡고 먼 곳으로 내려가서 희미하고도 둔중한 여운을 끌며 떠돌았다. (22)

살아서 우는 울음은 비통했지만, 내 겁많은 유년의 마음은 죽어버린 자들의 침묵에 절망했고, 살아가야 할 앞날을 절규하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울음에 오히려 안도했다. (26)

나는 내 속에서 돋아나는 그런 질문에 늘 대답하지 못한다. 삶 속의 어떤 사태는 설명이나 이유와는 애초에 무관한 것이어서 그 앞에 '왜'를 붙여서 의문문을 만들 수는 없을 터인데 아마도 '너는 왜 소방관이 되었는가?'라는 질문 따이가 그러하리라. 인간의 생애가 어떤 필연성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고는 이제, 말할 수 없다. 나는 사십이 넘은 것이다. 나는 단지 불을 꺼서 밥을 먹어왔고 자식을 길렀으며, 그리고 그것은 자랑일 리도 비애일 리도 없는, 필연일 수도 운명일 수도 없는 그저 그런 견딤의 세월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았고 편했다. (27)


혈통의 수만 년을 거슬러올라가 신석기의 어느 눈내리는 겨울날 돌도끼와 뼈화살을 들고 사냥감을 찾아 벌판을 헤미이던 내 아비의 아비의 아비.... 그 아비의 여섯살 무렵, 여섯살 난 아비가 농경을 갓 배운 그 아비의 수확으로 빗살무늬토기에 더운 밥을 담아먹을 때도 어깨의 뒷모습은 저러했을까. (31)

그 눈구멍을 통해 그것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보면 어린 파충류의 내면에는 깊이 모를 어두움이 바다처럼 고여 있을 것이었고, 그 바다의 어두움이 그것들의 눈구멍을 통해서 그처럼 깊고 날카로운 어둠의 빛을 쏘아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34)

아이들이 수족관 주인에게서 얻어듣고 온 사육법에 따르면, 뒤집혀 진 청거북을 바로 놓아주지 않으면 그것들은 끝끝내 제 몸을 뒤채이지 못하고 네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기력이 쇠진하여 죽는다는 것이었다. (36)

그것은 그 자신에게만  유효하거나 그 자신에게만 어떤 의미를 지닐 문양이었다. 나는 그의 전입신고를 받으면서 인간의 뱃가죽에는 자마다 해독되지 않는 파충류의 만다라가 새겨져 있으리라는 망상에 끄달렸고, 그 젊은 신입대원이 오히려 내 뱃가죽의 만다라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성기를 드러내보이고 있는 것처럼 난감했다. (37)

해풍이 부추기는 불구덩이 속에서 살려는 자들이 밤새 아우성쳤고 살리려는 자들이 밤새 갈팡질팡했지만, 불에 타 죽고 연기에 숨막혀 죽고 뛰어내리다가 떨어져 죽은 그 화재는 화재 자체가 불에 타 없어져버린 것처럼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었고, 손을 댄 근거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려지거나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죽고 타고 무너져버린 그 화재는 없었던 화재나 마찬가지였으며, 그 없었던 화재의 현장에는 죽은 자들의 살이 탄 냄새가, 양념을 하지 않고 불꽃에 구운 육류의 비리고 누린 냄새를 풍기며 오랫동안 배어있던 것이어서, 그 없었던 화재는 분명히 있었던 화재였다. (51,2)

접시 안 자갈돌 위에 올라앉아 몇 시간 동안이고 꼼짝않는 거북의 삶과 죽음을 아이들은 구분할 수 없었다. 우리는 거북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56)

세상의 모든 죽음은 다른 어떤 죽음이나 삶과도 무관한 개별적이고도 고립된 죽음일 뿐이라는, 그래서 불구덩이를 쑤시고 돌아온 내 몸 안의 누린내 속에 엉겨들면서 자리잡으려는 소년의 죽음을 도려내야 한다는 조바심과, 그러나 그 소년의 죽음이 내 안에서 이미 죽은 것들, 죽으려 하는 것들과 어떤 희미한 관련이 있을 것이며 그 희미한 관련의 줄을 따라 가려는 안타까움이 내 마음 속에서 아무런 결론도 없는 싸움을 계속했다. (65,6)

몸의 깊은 곳으로부터, 먼 북소리와도 같은 은은한 성욕이 퍼져왔다. 헤매이던 먼 성욕은 여자의 고랑을 향하여 방향을 잡자 울음처럼 터져나오려 했다. 나는 여자를 오줌누듯 쪼그린 자세 그래도 두고 뒤에서 들러붙고 싶었다. (70)

수사는 다만 그 불가능을 입증하기 위하여 진행되었다. 바람 속에서 펄럭이는 불길이 세상의 형체와 세상의 질료를 바람 속으로 끌어들여 태워버린 뒤, 그 도괴와 추락, 사망과 인멸, 잿더미와 파편과 아우성은 돌이킬 수 없고 손댈 수 없으며, 분석할 수도 추궁할 수도 없는, 따지거나 지껄일 수 없는 기정사실로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손댈 수 없는 기정사실은 그 속을 들여다보려는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먼 곳을 표류했다. (74)

죽은 자의 살았을 적 마음에 관하여 누가 무슨 말을 지껄일 수 있을 것이며, 그 지껄임은 또 얼마나 무내용할 것인가. (75)

살아갈수록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 몽롱한 것들과 확실한 것들, 희뿌연 것들과 뚜렷한 것들은 뒤섞인다.
'살아갈수록'이라든지 '뒤섞인다' 같은 말들은 사실 무책임하고 부정확하다. 모호한 것들과 명석한 것들은 '살아갈수록'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뒤섞여 있는 것이며, '뒤섞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것들을 분별해서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79)

그의 말투는 몸 속 깊은 곳에 가두어져 있던 말의 토막들이 목구멍을 기습적으로 넘어오는 순간의 컥컥거림이었다. 그의 말투의 컥컥거림은 문법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지 않는, 그래서 말이 아니라 말하여지고 싶은 충동이나 복받침 혹은 말하여질 수 없는 단념이나 돌아섬 같은 것들이 아직 이목구비가 생겨나지 않은 시절의 파충류들처럼 쑥과 마늘의 동굴 속에 유배되어 있다가 끝끝내 말로 환생하지 못한 채로 불쑥불쑥 그의 목구멍을 넘어오는 것 같았고, 그의 말은 이해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기 중에 흩어져 죽기 위하여 그 동굴을 뛰쳐나오는 파충류들의 탈옥이었다. (80)

출발점과 종착점을 거꾸로 겨누며 서로 빨려들어가는 그 모순의 힘들은 분해되지 않는 순간들 속에서 교차했는데, 시간의 알맹이들은 그 상극의 두 작용을 끌어안고 팽팽함으로써 흔적이 없었고 가득 참으로써 적막하였다. (82)

한 바퀴의 회전, 한 틀의 엮임, 한 줄의 지속을 이루며 돌아가는 무한궤도 위에서 시간의 알맹이들은 궤도의 밑바닥을 향하여 폭포처럼 쏟아져내려갔다. 궤도가 비벼질 때, 시간의 들숨과 날숨은 그 숨결 위에 실리는 무거움을 버림으로써 그 무거움을 밀어젖힐 힘을 빨아당기는 것이었는데, 시간의 숨결 위에서 밀고 당겨지는 그 버림과 얻음은 흔적도 구획도 없었고, 공간을 통과하되 공간에 의하여 채색되지 않는 시간은 순결했고 무균했으며, 이윽고 한 바퀴의 회전이 끝날 때 시간의 알맹이들은 궤도의 위쪽으로 떠올라 한동안 허허로운 무위의 공간을 흘러갔으나 그 무위의 시간들은 궤도의 밑바닥에 깔리는 수고로움의 시간과 한 피대의 지속으로 엉기면서 수억만 개의 알맹이로 소리없이 명멸했다. (84)

저 보이지 않고 보여지지 않는 순환의 한 끄트머리에서 그 낯선 사내는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90)

오줌이 마렵듯이 확실하고 목을 죄듯이 절박한 것들이 어쩌자고 이 정체모를 신기루 위에 올라앉는 것인지, 그 신기루의 밑창이 빠지는 순간 그 위에 올라앉았던 모든 것들이 천길의 허당 아래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98)

호텔방 안에서 그 여자들을 기다리는 사내들의 발기된 성기가 왜 하필이면 아이가 나오는 살의 구멍 속으로 파고들게 되어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살의 구멍은 어쩌자고 하필 두 가랑이 사이에 위치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그런 답답함에 대답이 있기를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내를 받는 살의 통로와 아이를 내보내는 살의 통로가 따로따로였다면, 그리고 그 살의 위치가 두 가랑이 사이가 아니었다면, 호텔을 향해 점는 언덕길을 걸어가는 그 여자들의 직립이각보행이 조금은 덜 답답할 것이었다. (108,9)

철민아 하는 수 없다. 인간만이 인간에게로 접근하는 법이다. ... 철민아 본래 대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결국 대답할 수 없다. 철민아 너는 알겠느냐? (120)

그리고 또 짐작하건대 그가 소방서에 들어오기 전에 포크레인이나 불도저를 운전해서 밥을 먹을 때, 자신의 손바닥과 발바닥을 통해 몸 속을 드나들던 삶과 시간의 그 공유할 수 없는 직접성과 그것을 밥으로 치환시키는 이 세상의 질서 사이에서 두 발로 설 자리를 잃었거나, 아니면 그 안개 같았을 직접성의 바다 위에서 세상의 질서를 수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간이 세상에 대하여 가하는 그 수락할 수 없는 변별작용을 부수려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항명을 자신의 내부에 이무기처럼 키우게 된 것이나 아니었을까. (128)

먼 눈은 그 먼 눈을 들여다보려는 성한 눈을 눈멀게 하는 것이어서, 먼 눈 앞에서 성한 눈의 '본다'는 동작은 '보고싶다'는 형용사가 동사의 포즈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꼴이었거나, 아니면 아직도 캄캄한 자궁 속에 갇혀 있는 동사의 태아가 자궁벽을 걷어차는 가위눌린 발길질에 불과했다. (134)

가위눌리는 나는 그 가위눌림이 꿈이며 헛것이라고 내 안에서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그 목소리가 가위눌린 목소리라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꿈 속에서, 꿈의 바깥을 서성거리며 이것은 꿈이다! 라고, 외쳐지지 않는 외침을 외치기 위해 목이 메어 컥컥거리는 또다른 나는 나도 결국은 꿈의 안쪽을 헤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60)

물줄기로 불붙는 수직벽의 거죽을 칠 때, 결국 마지막으로 의지할 것은 오랑우탄으로부터 유전된 이 사지육신의 전진과 후퇴, 더듬기와 기기, 수평이동과 수직이동밖에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 뚫고 들어간 수직의 안쪽에서  지켜내고 건져내야 할 것들을 확인한다는 것은 흔히 불가능하다는 운명을 생애 속에 수락할 수 있을 때까지, 아들아, 너는 그 여린 오줌줄기로 함부로 세상의 거죽을 때리지 말아라, 꿈속의 헛것들이 사라져가는 소실점을 바라보며 나는 어둠 속에서 그렇게 되뇌었다. (162,3)

책임과 관계의 연쇄고리들을 세울 근거와 꼬투리를 그렇게 물줄기로 부수고 쓸어내면서....
그런 의문은 너무나도 모호한 의문이어서 아무것도 묻지않는 의문이었고 아무런 대답도 예비되어 있지 않은 의문이었지만, ....
그러므로 나는 저 의문들과 무관하다. 무관하다기보다는 그 의문들은 나의 생애 속에 개입할 수 없는 의문들이었고, 감당되지 않는 의문들이었다. (170)

김복희의 가랑이 사이에서 팬티 위로 드러난 여성 성기의 윤곽은 좌우가 기하학적 대칭을 이루고 있었고, 가운데 부분에 패어진 골이 드러나보였다. 나는 암염소나 암소 혹은 암말 암코끼리 암늑대의 성기의 그 캄캄한 안쪽을 생각했다. (195)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