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살로모 이븐 가비롤(11세기)
- 생활정보
- 2007. 8. 14. 15:12
이 사상가는 스페인의 말라가 출신이며 11세기에 살았다. 히브리어로 여러 저작을 집필했으며, 학술시와 철학적 저작들도 썼다. 아랍어로 된 다른 책들도 있으며, 이것들은 후에 히브리어로 번역되었다. "왕관"과 "삶의 원천"에서 그는 종교의 문제와 씨름한다. 후자의 책은 12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기독교 교부철학자들은 이 사상가를 아방스브롤이라 불렀다.
가비롤은 합리적 적합성에 근거하며 낡은 권위를 끌어들이지 않는 하나의 철학적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종교의 교리들은 여기서 전혀 생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사상의 자유를 너무 제한하기 때문이다. 학문은 세 부분, 물질과 형식에 대한 이론,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이론, 마지막으로 제일 존재에 대한 이론으로 구성된다. 신의 의지는 가장 높은 존재와 사물의 세계를 중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구성요소들은 물질과 형식이다. 가비롤은 아랍의 사유전통에서 배웠던 바대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론을 신플라톤적인 세계해석과 결합시켰다. 가장 높은 신적 존재와 물질 세계 사이에는 수많은 정신적 존재와 매개존재가 존재한다. 낯은 본질의 존재는 항상 더 높은 존재와 유일한 최고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온다. 여기서 가비롤은 플로티누스의 유출론을 따르고 있다.
물질은 보편적인 것이고 비규정적인 것이며, 형식을 통해서 자신의 형상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형식은 물질보다 상위에 있다. 현실적인 것은 항상 가능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물질을 통해 모든 사물이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형식들의 교체 속으로 지속하는 것이 등장한다. 물질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이요, 형식은 사물의 질적인 다양성을 창조한다. 정신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와 유비적으로 축조된다. 정신적 실체는 보편적이고 지성적인 물질과 형식으로 소급된다.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실체는 물질과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것들은 보편적 물질 속에 그 공통성의 근거를 갖는다. 사물의 모든 형식은 보편적 형식으로 돌아간다. 이 물질은 더 이상 형식에 종속되지 않는데, 순수한 물질은 항상 잠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형식도 다만 하나의 가능한 존재일 뿐이다. 물질과의 결합을 통해서 비로소 실재적인 존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적) 이념의 세계는 원칙적으로 지상의 물질 세계와는 다른 자질을 갖는다.
정신적 존재의 지성적 물질과 지상의 물체의 정신적 존재는 다만 이름이 같을 뿐이다. 물질은 통일체를 형성하고 모든 가능한 것을 묶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을 담지하는 통일적 근원이다. 물질과 형식으로 구성된 세계에는 절대적 존재로서 세계 밖에 있는 창조신이 맞서 있다. 그러나 형식은 수동적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생성의 통일적 원리이다.
그래서 형식은 물질을 규정하는 힘이다. 그렇지만 가비롤은 자신의 저작에서 몇 가지 모순을 품고 있어야 했다. 세계의 전체성에서 물질은 형식에 종속되어 있는데, 개별적 사물과 물질 속에는 형식이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 속에서의 운동은 이를 통해 성립하는데, 더 높은 힘의 실체가 빛을 뿜어내고, 이로부터 더 낮은 존재들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완전성은 더 낮은 존재와 물질들에서 분명히 줄어든다.
신은 인격적 세계창조자로 이해된다. 그는 물질 뿐 아니라 형식에도 대립해 있다. 그는 무로부터 모든 실재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존재는 무로부터 발생했고, 신은 자신의 의지로 의식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창조했다. 따라서 신의 의지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고, 그는 모든 것을 관통하며 모든 형식을 포괄한다. 그는, 그의 책 제목이 말해주는 바처럼 "삶의 원천"이다. 신의 의지는 형식과 물질을 창조했고 이들을 서로 결합시켰다.
신은 최고의 통일이며, 그에게는 어떤 속성도 부가될 수 없다. 물질은 신성의 정적인 본질로부터 생성되고, 물질은 활동적인 신의 의지로부터 나온다. 신성과 보편적 질료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신성의 본질은 무한하며, 제한과 형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작용으로부터 우리는 다만 신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제일 질료 역시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아직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물질은 다시 신의 본질에 결합된다.
두 번째 저작 <<왕관>>에는 깊은 유태신앙의 경건함이 표현되어 있고, 창조신의 위대함에 대한 찬양이 나타난다. 그의 의지로부터 경이로운 우주가 생성되었기 때문에 그는 세계를 다스리는 자로 추앙된다. 세계는 경이롭게 질서지워져 있지만, 창조신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뿐이다. 신의 지혜는 모든 삶의 원천이며, 이로부터 모든 인간의 의지가 흘러나온다. 인간의 의지는 창조신의 의지에 참여한다. 과거는 절대적인 것과 결합되며, 시간적인 것은 영원한 것과, 철학은 신비와 결합된다.
이로써 이 사상가는 신플라톤주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유모델을 유태 신앙과 결합시킨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 교부철학의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은 그의 저작을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
가비롤은 합리적 적합성에 근거하며 낡은 권위를 끌어들이지 않는 하나의 철학적 체계를 세우고자 했다. 종교의 교리들은 여기서 전혀 생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사상의 자유를 너무 제한하기 때문이다. 학문은 세 부분, 물질과 형식에 대한 이론,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이론, 마지막으로 제일 존재에 대한 이론으로 구성된다. 신의 의지는 가장 높은 존재와 사물의 세계를 중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구성요소들은 물질과 형식이다. 가비롤은 아랍의 사유전통에서 배웠던 바대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론을 신플라톤적인 세계해석과 결합시켰다. 가장 높은 신적 존재와 물질 세계 사이에는 수많은 정신적 존재와 매개존재가 존재한다. 낯은 본질의 존재는 항상 더 높은 존재와 유일한 최고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온다. 여기서 가비롤은 플로티누스의 유출론을 따르고 있다.
물질은 보편적인 것이고 비규정적인 것이며, 형식을 통해서 자신의 형상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형식은 물질보다 상위에 있다. 현실적인 것은 항상 가능적인 것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물질을 통해 모든 사물이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형식들의 교체 속으로 지속하는 것이 등장한다. 물질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이요, 형식은 사물의 질적인 다양성을 창조한다. 정신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와 유비적으로 축조된다. 정신적 실체는 보편적이고 지성적인 물질과 형식으로 소급된다.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실체는 물질과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것들은 보편적 물질 속에 그 공통성의 근거를 갖는다. 사물의 모든 형식은 보편적 형식으로 돌아간다. 이 물질은 더 이상 형식에 종속되지 않는데, 순수한 물질은 항상 잠재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형식도 다만 하나의 가능한 존재일 뿐이다. 물질과의 결합을 통해서 비로소 실재적인 존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플라톤적) 이념의 세계는 원칙적으로 지상의 물질 세계와는 다른 자질을 갖는다.
정신적 존재의 지성적 물질과 지상의 물체의 정신적 존재는 다만 이름이 같을 뿐이다. 물질은 통일체를 형성하고 모든 가능한 것을 묶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을 담지하는 통일적 근원이다. 물질과 형식으로 구성된 세계에는 절대적 존재로서 세계 밖에 있는 창조신이 맞서 있다. 그러나 형식은 수동적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생성의 통일적 원리이다.
그래서 형식은 물질을 규정하는 힘이다. 그렇지만 가비롤은 자신의 저작에서 몇 가지 모순을 품고 있어야 했다. 세계의 전체성에서 물질은 형식에 종속되어 있는데, 개별적 사물과 물질 속에는 형식이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세계 속에서의 운동은 이를 통해 성립하는데, 더 높은 힘의 실체가 빛을 뿜어내고, 이로부터 더 낮은 존재들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완전성은 더 낮은 존재와 물질들에서 분명히 줄어든다.
신은 인격적 세계창조자로 이해된다. 그는 물질 뿐 아니라 형식에도 대립해 있다. 그는 무로부터 모든 실재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존재는 무로부터 발생했고, 신은 자신의 의지로 의식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창조했다. 따라서 신의 의지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고, 그는 모든 것을 관통하며 모든 형식을 포괄한다. 그는, 그의 책 제목이 말해주는 바처럼 "삶의 원천"이다. 신의 의지는 형식과 물질을 창조했고 이들을 서로 결합시켰다.
신은 최고의 통일이며, 그에게는 어떤 속성도 부가될 수 없다. 물질은 신성의 정적인 본질로부터 생성되고, 물질은 활동적인 신의 의지로부터 나온다. 신성과 보편적 질료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신성의 본질은 무한하며, 제한과 형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작용으로부터 우리는 다만 신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제일 질료 역시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은 아직 형식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물질은 다시 신의 본질에 결합된다.
두 번째 저작 <<왕관>>에는 깊은 유태신앙의 경건함이 표현되어 있고, 창조신의 위대함에 대한 찬양이 나타난다. 그의 의지로부터 경이로운 우주가 생성되었기 때문에 그는 세계를 다스리는 자로 추앙된다. 세계는 경이롭게 질서지워져 있지만, 창조신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뿐이다. 신의 지혜는 모든 삶의 원천이며, 이로부터 모든 인간의 의지가 흘러나온다. 인간의 의지는 창조신의 의지에 참여한다. 과거는 절대적인 것과 결합되며, 시간적인 것은 영원한 것과, 철학은 신비와 결합된다.
이로써 이 사상가는 신플라톤주의적이고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유모델을 유태 신앙과 결합시킨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 교부철학의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은 그의 저작을 계승, 발전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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