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제스 벤 마이몬(1135-1204)

이 창조적 사상가는 1135년에서 1204년까지 살았으며, 마이무니 혹은 람반이라고 불리었다. 또한 그는 기독교적 스콜라 철학에 강한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끼친 영향이 컸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유태인의 계시종교와 결합시키려 했다. 이때 그는 학문적으로 증명가능한 것과 신적인 계시 사시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었다. 그는 스페인의 코르도바 출신이지만 나중에는 황제의 주치의로 이집트에 살았다.

"신앙의 억압"에 대한 그의 저작에서 그는 자유롭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무하메드의 예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유태인들은 자신들의 신의 계명에 따라 살아야 하지만, 그 때문에 죽을 필요는 없다. 그는 의학적이고 철학적이며 율법서적인 저작들을 썼다. 세계 속의 악(병)은 신이 의도한 조화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의사는 병과 싸우고 신의 의도를 실현시키는 데 힘을 보태어야 하는 과제를 갖는다.

히브리어로 씌어진 <<미쉬네 토라>>에서 벤 마이몬은 유태교의 교리를 학적인 인식들과 결합시키려 노력했다. 그는 종교적인 삶과 세속의 삶에 대한 모든 규정들을 체계적으로 요약했다. 그러나 학문적 입장에서 보기에 더 이상 옹호될 수 없는 모든 것은 제거했다. 그래서 그는 점성술적 교리와 악마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모제스 벤 마이몬은 당시의 자연과학적이고 의학적 이론들을 서술했다.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근본물음들과 씨름했으며, 이를 윤리학의 문제들과 결부시켰다. 우리가 우주를 완전한 경이로움 속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만 창조신에 대한 사랑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자아가 거대한 우주에 맞서 있을 때 우리 안에는 깊은 외경의 감정이 솟아오른다. 가장 높은 신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우리 인간을 위한 심오한 신의 사랑을 알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벤 마이몬도 윤리적인 것과 오성적인 것으로 덕을 구분한다. <<결단력 없는 자들의 지도자>>라는 책은 아랍어로 씌어졌으며, 후에 히브리어로 번역되었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한 권의 라틴어 번역본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저작에서는 발전해가는 지식과 종교의 교리 간의 관계가 주요 주제였다. 저자는 유태교의 교리가 정당하다는 것으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방법을 가지고 성서의 교리들이 지혜로운 것이며, 전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종교의 교리를 더욱 명료하게 서술하는 것이 철학의 과제였다. 이를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가장 적합했던 반면, 플라톤의 그것은 "모호한" 것이었다. 신의 창조와 Thronwagen의 교리는 성서의 비밀에 속했다. 신의 현존은 학문의 인식을 통해 증명가능하며, 그의 속성들도 포괄적으로 서술될 수 있다. 성서에는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으며, 그것은 학자들만이 알 수 있다.

신의 개념은 우리에게 부정적 규정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것이며, 인간주의적 이미지로부터 정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은 현존한다 라고 말하면, 우리는 그의 비현존을 부인하게 된다(이중적 부정). 그렇지만 신성의본질을 우리로서는 학적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부분적 정의조차도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신성에 대해서는 관계를 이야기할 수 없는데, 신은 공간이나 시간에 묶여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에 대해  그가 무엇이 아니라고만 말할 수 있다(부정신학). 절대적 일자와 다수의 피조물 사이에는 어떤 논리적 결합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서 신에 대해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나-너). 인간세계의 최종목적은 도덕적으로 완전해지고 창조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창조신은 세계의 외부에 존재하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학문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계를 연구하는 것만이 허락된다.

우리가 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힘이 작용한 결과들이다. 그는 존재의 가장 높고 궁극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인간에게 윤리적인 작용도 가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신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가장 높은 도덕적 완전화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물주의 거대한 세계계획에서 우리 인간은 도덕법칙을 읽어낼 수 있다. 종교 안에서 우리는 우리 삶에 대한 신의 섭리를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사유에서 유추하여 신의 사유를 표상한다. 신은 자유로운 의지로 활동한다. 그렇지만 세계가 영원한지 혹은 신에 의해 시간 속에서 무로부터 창조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철학의 도구로는 결정할 수 없다.

마이모니데스는 유태교를 그 안에서 종교적 믿음과 지식이 서로를 보충하는 합리적 체계로 이해했다. 반성되지 않은 믿음은 참된 인식의 전단계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의 임무는 철학적 통찰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래서 신비주의와 카발라는 무시되는데, 이것들 안에서 인간은 합리적 사유로부터 발걸음을 돌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이모니데스는 철학과 자연과학의 인식에 대해서 유태교를 개방시켰다. 이 점에 있어서는 기독교의 사상가들이 곧 그를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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