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알베르 카뮈(1913-1960)
- 생활정보
- 2007. 8. 10. 22:28
이 실존주의 사상가는 알제리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그는 알제리에서 김나지움을 다녔으며, 이후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졸업 논문에서 플로티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 속에 나타난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관계를 다루었다. 이후에는 문학적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40년에 파리로 이주해 신문사 주필로, 나중에는 거대 출판사의 편집원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 그의 문학작품 <<이방인>>과 <<시지프스의 신화>>가 탄생했다.
전후에는 <<칼리귤라>>, <<페스트>>, <<정의로운 자들>>, 그리고 <<폭동 속의 인간>> 등이 탄생했다. 이 시기에 카뮈는 마르크스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이념에 가까워졌으나 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관용적이고 인간주의적인 무신론을 옹호했다. 그는 종교 없는 삶을 원했지만, 종교적 인간과 함께 더 정의로운 세계를 위해 함께 일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동베를린에서의 노동자 봉기와 헝가리에서 공산주의 지배를 반대하는 봉기에 참여했다. 1960년 파리 근교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했다. 이 사상가는 무엇보다 유럽 전체로 퍼져나간 그의 소설과 희곡을 통해 영향력을 얻었다. 이 작품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의 정신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에 카뮈는 감각적인 삶과 생각의 자유, 그리고 자연의 심오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을 표현해 내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고대의 문화와, 감각적 쾌락의 적절한 탐닉을 종용했던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열광했다. 그가 살았던 세계는 신과 악마가 전혀 없는 세계였고, 그에게는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의 무한함만으로 족했다. 경계없이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에게는 삶의 장엄함이요 위대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이 시기에 동료인간의 비참과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을 보았다. 그는 비참과 불의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인간의 현존을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가난은 수많은 사람들을 익명의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삶을 의미없게 만든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직시는 그로 하여금 역사의 흐름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이성은 우리에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되며, 우리는 그들의 비참함을 오랜 노력으로 줄여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 전체가 부조리하고 의미 없다고 해도, 이러한 부조리함은 정직한 이성에 의해 견뎌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불의에 대항하는 싸움은 부조리를 견딜 수 있게 하고 역사의 길을 공정한 것으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다.
신이 없다면 신의 세계계획이나 삶의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는 우리 삶의 부조리함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고통과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에 대항하는 싸움은 우리의 삶과 역사에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부여해준다. 우리에게는 종교적 신앙 없이도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일이 존재하며, 하늘에서의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도 약한 자를 위해 연대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신이나 신이 다스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어도 인간성은 존재한다. 분명히 더 약한 자들을 동정하며 이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신을 믿지 않는 도덕적인 성인"도 있는 것이다.
시지프스라는 고대의 신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 속에서 사회적으로 감각있는 인간은 그들의 작은 세계 속에서 불의에 대항해 싸운다. 그들은 비참함이란 돌덩이를 굴린다. 고통에 대한 항거는 그들의 삶에 의미를 준다. 실존적으로 사유하는 동시대인은 이 세계 속에서 강한 자들에게 낯설은 존재이고, 그는 그의 환경과 거대한 우주의 다정한 무관심 속에서 고통받는다. 그러나 사회의 지배자들은 약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없애고 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수없이 많은 낯선 생명을 죽이고 있다. 그들은 파괴적인 분노에 의해 충동질 당해 동료 인간들을 자신들의 광기의 제물로 만들며, 잠재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칼리귤라). 이러한 현존재의 부조리함을 인지한 사람은 모든 고통 가운데 가장 격렬한 고통을 겪는다.
"신 없이 지은 죄"는 부조리에 속한다. 무의미한 현존 속에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분명한 규칙이 있다. 이러한 규칙들은 신의 계율에 속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인간적 본성의 필요에 의해 이성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 거룩한 자"도 있으며, 그는 내적확신에 따라 이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존적으로 산다는 것은 부조리를 생각하고 견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의한 세계를 내적인 확신으로 거부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현존에 운명의 형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고난에는 끝이 없지만, 사악한 운명은 경멸함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그래서 무신론적 휴머니스트는 부조리를 경멸하며 동시에 그것을 존립시킨다. 그는 다만 인간, 그저 인간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 없는 인간은 지상에 충실하며, 저 천상의 감각세계로 도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중독된 가슴을 치료하기 위해 참여하며, 이로써 이 세계의 불의는 줄어들게 된다. 그는 종교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했으며, 이로써 아이들의 고통이 줄어들고 범죄자들의 사형집행이 줄어들었다. 섬세한 실존주의자는 자기 자신만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굴욕당한 자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열정적으로 애쓴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참여했으며, 이러한 참여는 그의 무의미한 현존에 시간적으로 제한된 의미를 주었다.
형이상학적 반란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인간적 조건에 대항해 항의하지만, 사회적 반란에 있어서는 불의한 상황을 줄이거나 없애려 한다. 내면적 세계의 삶의 의미에 대한 거부로서 허무주의는 인간 존재의 파손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을 싫어하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그 때문에 다른 세계 질서를 창조했다. 그는 인간에게 살아가고 죽는 법, 신처럼 되고자 하는 바램을 거부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역사의 주인과 심판자는 거의 항상 신들에게 보조를 맞춘다.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신 없는 인간성의 형식을 감지하게 할 수 있다.
실존적으로 사유하는 동시대인들은 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억압의 불의를 견딘다. 그들은 고통받는 자, 묶여있는 자의 비명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신으로부터 도래한 것이 아닌 "인간의 나라"을 믿는다. 이러한 가능적 세계에 대한 희망의 힘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 가며, 이 나라는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지상에서의 이 나라에서 고통은 사랑과 결합되며, 역사 속에서 파괴가 끝까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카뮈는 자신의 이념으로 넓은 영향력을 획득했으며, 전후의 여러 세대들에게 정신적으로 각인되었고 이들이 정치적으로 섬세한 감각을 갖게 했다.
전후에는 <<칼리귤라>>, <<페스트>>, <<정의로운 자들>>, 그리고 <<폭동 속의 인간>> 등이 탄생했다. 이 시기에 카뮈는 마르크스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이념에 가까워졌으나 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관용적이고 인간주의적인 무신론을 옹호했다. 그는 종교 없는 삶을 원했지만, 종교적 인간과 함께 더 정의로운 세계를 위해 함께 일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동베를린에서의 노동자 봉기와 헝가리에서 공산주의 지배를 반대하는 봉기에 참여했다. 1960년 파리 근교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했다. 이 사상가는 무엇보다 유럽 전체로 퍼져나간 그의 소설과 희곡을 통해 영향력을 얻었다. 이 작품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비판적 지식인들의 정신적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에 카뮈는 감각적인 삶과 생각의 자유, 그리고 자연의 심오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을 표현해 내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고대의 문화와, 감각적 쾌락의 적절한 탐닉을 종용했던 에피쿠로스의 철학에 열광했다. 그가 살았던 세계는 신과 악마가 전혀 없는 세계였고, 그에게는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의 무한함만으로 족했다. 경계없이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에게는 삶의 장엄함이요 위대함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이 시기에 동료인간의 비참과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을 보았다. 그는 비참과 불의에 대항해 싸우는 것은 인간의 현존을 위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가난은 수많은 사람들을 익명의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삶을 의미없게 만든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직시는 그로 하여금 역사의 흐름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이성은 우리에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되며, 우리는 그들의 비참함을 오랜 노력으로 줄여갈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 전체가 부조리하고 의미 없다고 해도, 이러한 부조리함은 정직한 이성에 의해 견뎌내어져야 한다. 다시 말해 불의에 대항하는 싸움은 부조리를 견딜 수 있게 하고 역사의 길을 공정한 것으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다.
신이 없다면 신의 세계계획이나 삶의 목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럴 경우 우리는 우리 삶의 부조리함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고통과 억압받는 자들의 고통에 대항하는 싸움은 우리의 삶과 역사에 하나의 명확한 의미를 부여해준다. 우리에게는 종교적 신앙 없이도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일이 존재하며, 하늘에서의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도 약한 자를 위해 연대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신이나 신이 다스리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어도 인간성은 존재한다. 분명히 더 약한 자들을 동정하며 이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신을 믿지 않는 도덕적인 성인"도 있는 것이다.
시지프스라는 고대의 신에 대한 신화적 이미지 속에서 사회적으로 감각있는 인간은 그들의 작은 세계 속에서 불의에 대항해 싸운다. 그들은 비참함이란 돌덩이를 굴린다. 고통에 대한 항거는 그들의 삶에 의미를 준다. 실존적으로 사유하는 동시대인은 이 세계 속에서 강한 자들에게 낯설은 존재이고, 그는 그의 환경과 거대한 우주의 다정한 무관심 속에서 고통받는다. 그러나 사회의 지배자들은 약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없애고 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수없이 많은 낯선 생명을 죽이고 있다. 그들은 파괴적인 분노에 의해 충동질 당해 동료 인간들을 자신들의 광기의 제물로 만들며, 잠재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칼리귤라). 이러한 현존재의 부조리함을 인지한 사람은 모든 고통 가운데 가장 격렬한 고통을 겪는다.
"신 없이 지은 죄"는 부조리에 속한다. 무의미한 현존 속에는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분명한 규칙이 있다. 이러한 규칙들은 신의 계율에 속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인간적 본성의 필요에 의해 이성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신을 믿지 않는 거룩한 자"도 있으며, 그는 내적확신에 따라 이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존적으로 산다는 것은 부조리를 생각하고 견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의한 세계를 내적인 확신으로 거부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현존에 운명의 형식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고난에는 끝이 없지만, 사악한 운명은 경멸함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 그래서 무신론적 휴머니스트는 부조리를 경멸하며 동시에 그것을 존립시킨다. 그는 다만 인간, 그저 인간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 없는 인간은 지상에 충실하며, 저 천상의 감각세계로 도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중독된 가슴을 치료하기 위해 참여하며, 이로써 이 세계의 불의는 줄어들게 된다. 그는 종교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했으며, 이로써 아이들의 고통이 줄어들고 범죄자들의 사형집행이 줄어들었다. 섬세한 실존주의자는 자기 자신만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굴욕당한 자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열정적으로 애쓴다. 그래서 그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참여했으며, 이러한 참여는 그의 무의미한 현존에 시간적으로 제한된 의미를 주었다.
형이상학적 반란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인간적 조건에 대항해 항의하지만, 사회적 반란에 있어서는 불의한 상황을 줄이거나 없애려 한다. 내면적 세계의 삶의 의미에 대한 거부로서 허무주의는 인간 존재의 파손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을 싫어하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그 때문에 다른 세계 질서를 창조했다. 그는 인간에게 살아가고 죽는 법, 신처럼 되고자 하는 바램을 거부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역사의 주인과 심판자는 거의 항상 신들에게 보조를 맞춘다.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동시대인들에게 신 없는 인간성의 형식을 감지하게 할 수 있다.
실존적으로 사유하는 동시대인들은 망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억압의 불의를 견딘다. 그들은 고통받는 자, 묶여있는 자의 비명을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신으로부터 도래한 것이 아닌 "인간의 나라"을 믿는다. 이러한 가능적 세계에 대한 희망의 힘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일구어 가며, 이 나라는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지상에서의 이 나라에서 고통은 사랑과 결합되며, 역사 속에서 파괴가 끝까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카뮈는 자신의 이념으로 넓은 영향력을 획득했으며, 전후의 여러 세대들에게 정신적으로 각인되었고 이들이 정치적으로 섬세한 감각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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