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정보 Hollowoom 2007. 5. 7. 21:00
에피쿠로스는 오랜 귀족 집안 출신이며, 사모스 섬-출생 10여년 전 그의 아버지가 옮겨 와 살고 있던-에서 태어났다. 그가 14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그를 데모크리투스의 제자Demokriteer였던 나우시파네스가 살던 테오스로 보냈다. 따라서 우리는 어딘가 데모크리투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자연철학은 이때의 교육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정당하게 추측해 볼 수 있다. 기원전 323년에 그는 전쟁에 복무하는 의무ephebendienst에 종사하기 위해 아테네로 갔다. 그런데 그 2년 동안 그는 [군복무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모든 중요한 철학의 조류와도 가까이 하게 되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사모스로 돌아왔을 때 그는그곳에는 더 이상 자신의 편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 출..
더 읽기
생활정보 Hollowoom 2007. 5. 5. 18:52
근대의 철학 프로그램은 확실성. 체계성. 백지상태라는 세 가지 기둥에 의존하여 을 주장해왔따. 이 프로그램은 300년 동안이나 유지되다가, 존 듀이와 리처드 로티에 이르러 장례식을 치루었다 .듀이와 로티의 추도사는 참으로 큰 의의를 지닌 것이었다. 문제의 이성적 해결을 위해서는 완전한 새출발이 필요하다는 믿음은 지난 300년 동안 한번도 들어 맞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출발이 전부이다. 이용가능한 모든 개념을 차별적이고 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일, 이용가능한 개념에 비추어서 경험을 우리의 출발점으로 삼는 일이 전부이다. 개념의 유산을 완전히 청산할 수는 있는 길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는 과제는, 물려받은 개념을 그 적용범위를 더욱 엄밀하게 한정하는 일이요, 그럼으로써..
생활정보 Hollowoom 2007. 5. 5. 18:46
낭만주의라는 19세기의 사조는 결코 이성주의와 절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낭만주의는 이성주의의 거울상이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적 본성에 기인하는 후회스러운 부산물인 감정적 경험을 댓가로, 형식적 합리성이며 논리적 계산능력을 인간본성의 지고한 소양의 수준으로 높힐 수 있었다. 반면에 워즈워드로부터 괴테에 이르는 낭만주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오직 계산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삶이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여겼고, 감정적 경험의 심연에 내맡겨진 삶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입장이 17세기의 이원론을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이원론을 수용하되 이성주의와는 정 반대편으로 기운 것에 불과하다. S. 242 낭만주의가 정말로 이원론의 바탕에..
생활정보 Hollowoom 2007. 5. 5. 18:40
늙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정신의 특권이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젊어지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한다. 마치 죽은 나무의 생가지처럼, 가능하기만 하다면 정신을 푸르고 무성하게 유지하도록 하자. 그러나 정신이 나를 배반하는 것이 두렵다. 정신은 육체와 혈육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이 스스로 필요해서 육체를 따를 때마다 정신은 나를 내버리곤 한다. 내가 정신을 육체로부터 떼어내서 정신에게 아무리 아부해도 허사이다. 나는 헛되이도 정신을 육체로부터 분리하여, 세네카와 카툴루스에게로, 여인들과 궁정무도회에로 내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의 친구인 육체가 복통을 앓으면 정신도 복통을 앓는 듯 하다. 정신에게만 고유한 활동은 있을 수 없다. 정신의 활동은 머리에서 감지되는 감기 기운과 비슷하다. 만일..
생활정보 Hollowoom 2007. 5. 2. 13:36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와 근대의 자연과학의 선구자이다. 기원전 384년 칼키디키 반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마케도니아 왕의 주치의였다. 17세 되던 해에 그는 플라톤에게 배우기 위해 아테네로 갔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스승이 죽기까지 20여년을 지냈다. 그후에는 아소스와 뮈틸리니에 잠깐씩 살았고, 그런 다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그는 2~3년간 알렉산더 왕자-후에는 온대륙을 호령하는 왕이 된-의 선생으로 일했다. 그후에는 다시 아테네로 가서 Lykeion이라는 학당을 세우고 철학을 가르쳤다. 63세의 나이로 아테네 외곽 에우뵈아에서 죽었다. 그의 생전에 출간된 저작 19개가 소실되었다. 그러나 106권의 책Corpus Aristotelicum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출간되어 우..
생활정보 Hollowoom 2007. 5. 1. 19:38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장석남
생활정보 Hollowoom 2007. 4. 30. 13:04
vergebliche Erwartung, wiederholte Erinnerung. Ich muss sagen koennen, "Dein Name ist mir entfallen."
생활정보 Hollowoom 2007. 4. 29. 17:26
목표에 도달하려는 욕망없이 멀리 내다볼 수 있는자, 이것이 현명한 자의 정의이다. 목표가 설정되는 순간 그것은 해체되며, 해체의 위험 때문에 시선을 거두는 자는 결국 시선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목표를 대체하는 것은 흔적인데, 흔적은 어디에건 새겨지기 마련이며, 다만 시선을 잃어버린 자만이 흔적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흔적들을 잘 보듬고 갈무리하는 자의 공부만이 전진하는 공부이며, 전진하지 못하는 공부는 추악하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완벽을 기하는 자의 공부는 시선을 잃어버린 자의 공부이며, 이것은 가장 위험한 자기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시 말해, 끝없는 퇴행인 것이다. 독서가 전략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공부의 본질이 전진에 있기 때문인데, 목표가 고정되거나 시선이 닫힐 경우 그러한 전진은 불가능해..
생활정보 Hollowoom 2007. 4. 29. 16:58
플라톤은 고대와 중세 문화를 특징짓는 동시에 기독교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사상가이다. 기원전 428년 아테네에서 오래된 전사귀족가문의 딸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약 2년간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남부이탈리아에서 지냈다. 그후 아테네에 Heros Akademos(Akademie)에 봉헌된 학당(Schule der Weisheit)을 세웠다. 이 도시에서 그는 기원전 348년 81세의 나이로 죽었다. 플라톤은 수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은 대화형식으로 된 것이다. (34 an der Zahl): 과 가 이에 속한다. 그의 사유는 신화적 세계상에 hineinreicht, 현실을 두 차원으로 나누는 데서 출발한다. 생성하는 시공간적 세계에 맞서 시간과 공간의 피안에 존재의 세계가 있는 것이다. 존..
생활정보 Hollowoom 2007. 4. 27. 20:12
사람들은 이 위대한 사상가의 이름을 보통-그리고 이는 매우 타당한데-가장 작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원소(Atome)에 대한 이론과 결부시킨다. 이 원소는 그 angenommenen 촘촘함 때문에 분리불가능하고, 성질을 가지지 않으며, 그 때문에 공간적이고 양적인 규정만을 받을 수 있다. 감각의 성질(색, 맛, 온도)들은 지각의 과정을 통해 발생하며, 원자 자체에는 아무런 성질 규정도 주어지지 않는다. 원자들은 서로 매우 상이한데, 특히 세 가지 관점에서 그러하다. 양과 형태(둥근 것, 각진 것, 구부러진 것)에 있어서, 나아가 그것들의 배열 순서에 관해서, 마지막으로 그것들의 위치와 관련해서. 데모크리투스는 이를 A와 N의 형태의 차이, AN과 NA의 배열상의 차이, Z와 N의 위치(Lage)상..